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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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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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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3일 00시 49분 등록

바람이 세지더니 봄 시샘 추위가 이 숲에도 닥쳤습니다. 하지만 숲을 걸어보니 이 정도 추위로는 마당에 매화 필 날을 늦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난해 숲 안쪽 키 큰 나무들 아래 심어둔 산마늘이 눈 속에서도 나 살아있었어!’라고 외치듯 어느새 제 연하디 연한 새 촉을 삐죽 내밀고 있었습니다. 두릅의 겨울눈도 곧 터질 듯 부풀어올라 있고, 생강나무 꽃눈은 혼인 당일 새색시 볼처럼 예뻐 보였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나무와 풀 모두 숲의 제 자리, 저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서 박동수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숲이 아주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숲에는 제 자리 아닌 곳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나 풀이 없습니다. 제 자리가 아닌 곳에서는 싹을 틔우기도 어렵지만, 싹을 틔웠다 해도 저다운 결실을 맺기까지 삶을 잇기조차 힘든 곳이 숲입니다. 언젠가의 편지에 썼듯, 갈대나 버드나무를 물이 부족한 산정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직장인들이 품은 현재 또는 장래와 관련한 불편과 불안의 대부분은 아마 지금 처한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맞는가, 혹은 내가 이 자리를 지킨다면 마침내 나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에서 연유할 것입니다. 물론 각자 처한 곳의 사람이나 문화 따위가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그 궁극은 결국 내가 있을 곳이 맞나 하는 문제로 귀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회의가 깊고 그로 인해 새로운 삶에 대한 모색 또한 치열해서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 결심했거나 결심하려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자연이 내 남은 생의 무릎을 꿇어 나의 모든 것을 묻을 곳인가를 되묻고 또 되물어 스스로에게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막이 고향인 선인장은 뙤약볕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사막의 환경을 벗어나서 살 수 없습니다. 물이 과하면 선인장은 속절없이 썩어 들어가고, 마침내 삶을 송두리째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 조직의 삶이 단순히 지나치게 각박하고 스스로를 메마르게 한다 하여 단지 피난처로써 자연을 선택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자연에서 조차 메마른 삶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불만족의 반복과 메마름의 재생산을 맛볼 가능성이 무척 큽니다.

 

도시의 부자연한 삶이 뼛속까지 불편한 사람. 경쟁중심적인 삶의 흐름이 치 떨리게 맞지 않는 사람. 그곳에서는 더 이상 한 웅큼 빛조차 발견하기 어려운 사람…. 이런 조건은 어쩌면 새로운 곳을 모색하기 위한 필요조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릇 무릎을 꿇어 자신의 나머지를 바칠 곳으로 자연을 선택하기 위해 충분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란 도시나 조직에서의 불편과 불화와 절망을 이미 적당히 삭여낼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불편과 불화와 절망 속에서 자신을 도피시키려는 수준의 고민을 넘어, 자연 속에는 새로운 불편과 불화와 절망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알고 기꺼이 그것과 함께 살아야 할 어떤 이유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불편 없고 갈등 없고 이따금 절망 없는 이승은 없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한 껴안고 살아야 하는, 생명 모두에게 주어진 형벌입니다. 따라서 무릇 무릎 꿇을 곳을 자연으로 정하려는 사람은 이 형벌을 인정하는 일에서 출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자연에서 다시 시작하려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한 뒤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이후 한두 번은 꼭 닥쳐올 어둠 속에서도 그것이 북두의 별이 되고 나침반이 되고, 등불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에는 일반적으로 자연에서 다시 시작하려 하는 사람들이 품은 그 답의 큰 범주와 스펙트럼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개구리 입 떨어진 뒤에 뵙겠습니다.

IP *.20.20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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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꾸
2011.03.03 11:04:02 *.35.145.55
그렇군요...
요기에서 적합하지 못하면 조기에서도 맞출 수 없다.
슬픈 진리이군요
도피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저에게는 그것도 나를 위한 위로가 되더군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처럼
모든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것처럼
모든 곳에서 모든이에게 사랑스럽워야만 해야하는 것은 아닌것처럼
정을 붙일 수 없는 왜 곳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나 하는 곳에서
저는 물러서고 싶으니 말이예요...    
친구가 많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때는 망설여지고
함께하자고 할 때도 조금은 주춤하게 되는 것 처럼요

내가 들어서도 순하게 자리를 내어주고
내가 살아보고자 행복하고자 발버둥을 치더라도 부끄럽지 않은곳을요..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그게 진리라고...
이곳에서 힘들면 저곳에서도 힘들것이라고 .... 
갈곳이 없어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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