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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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5월의 어느 날, 깡마른 옥스퍼드 의대생 로저 배니스터(Roger Bannister)는 1마일(1.609km) 경주를 위해 출발선에 섰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리학자는 물론이고 운동선수들조차 4분 내에 1마일을 완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니스터는 3분 59초 4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최근 들어 그의 기록은 20세기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과라고 평가 받기까지 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장애물을 넘어선 배니스터의 이야기는 ‘신념의 힘’과 ‘체계적인 훈련의 중요성’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각인시켰습니다. 그런데 정작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배니스터가 세상을 놀라게 한 후 겨우 몇 주 만에 호주의 육상 선수인 존 랜디(John Landy)도 4분 벽을 넘어서는 쾌거를 달성한 것입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로부터 3년 동안 17명이나 되는 선수들이 4분의 벽을 넘어섰습니다. 인간의 한계라고까지 인식되던 4분의 벽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일과 두려움이란 단어는 마치 한 쌍인 듯 어울립니다. 무지는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며 두려움을 키웁니다. 내면 어딘가에서 끝도 없이 솟구치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은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주변의 반대에 외롭게 마주서는 용기는 말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처음’의 의미가 빛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배니스터는 스스로의 마음 속에 목표와 희망이라는 불을 밝히고 불가능이라는 마음의 벽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그 사이를 조금씩, 그렇지만 아주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벽을 무너뜨렸지요. 그에 비하면 다른 선수들은 눈앞에 우뚝 서있던 거대한 장애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말입니다. 이처럼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에는 그 결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혹자는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을 수도 있겠지만, 1등이 넘어선 장애물이 2등을 위한 디딤돌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2등을 견인하기에 1등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니까요.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습니다. 기록적인 한파는 제 개인 사정과 맞물리면서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 들었습니다. 기다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 자신에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떠나려는 겨울에게 작별을 고하듯 힘든 현실을 넘어서려 합니다. 배니스터가 다른 선수들에게 그러했듯 내일의 나에게 인생의 디딤돌 하나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여러분은 어떤가요? 혹시 저처럼 모진 겨울 바람처럼 아픈 무언가와 마주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혹시 그렇다면 저와 함께 작은 디딤돌 하나를 스스로에게 만들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봄이 정말 코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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