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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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삶을 다시 시작한 이후 나는 해마다 나무를 심었습니다. 밭에도 심고 숲 언저리에도 심고 마당에도 심었습니다. 밭과 숲에는
농사로 심은 나무가 대부분이지만, 마당에는 나무를 벗으로 심었습니다.
첫 해는 소나무와 주목, 그리고 배롱나무와 매실나무, 자두나무를
심었습니다. 두 번째 해인 지난해에는 마당에 보리수나무와 홍매화, 그리고
음나무와 대추나무를 더했습니다. 올해는 미선나무 몇 그루와 모란과 목련을 조금 심어 꽃 욕심을 더했습니다.
자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품은 나의 세 번째 욕심은
바로 나무에 대한 욕심입니다. 삶은 자칫 세월을 흩어버려서 돌아보면 남는 것이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나무는 반드시 세월을 품어둡니다. 나의 세 번째 욕심은 그렇게
조금 먼 시간을 품는 욕심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시간 동안도 기쁨을 얻지만 내가 죽어 육신이 사라진
시간에도 이곳 오두막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씨앗을 뿌려두는 조금 먼 욕심입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나무는 깊은 기품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 미래의 시간,
나의 마당에 나는 없겠지만 발길 닿을 누군가가 그 나무들 아래에서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욕심이 나의 세 번째 욕심인 셈입니다.
우리가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면 가능한 제법
먼 곳을 향한 욕심 하나 정도도 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귀촌을 감행한 어떤
분은 몇 년 동안 굴러다니는 돌맹이로 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일년이 가고 이년이 가면서 그가 매일
조금씩 쌓은 돌 더미는 점점 돌탑의 형상으로 커져갔습니다. 그가 매일 조금씩 열을 지어 쌓은 돌은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돌 담장으로 변했습니다. 이제는 어느 지자체에서 그에게 땅을 줄 테니 자신의
지자체로 거처를 옮기고 돌 담도 옮기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간의 흐름은 겁나게 빠르다 느껴지지만, 매일 해와 달의 길이만 바라보면서 자족하며 사는 자연에서의 세월은 더욱 빠르게 흐릅니다. 어~ 하면 일년이고 다시 어~ 하면
이년이 흘러 있어 놀라곤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은 돌맹이를 주워 모으던, 나무를 심던, 세월을 저장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루하루 혹은 계절마다
가만가만 해두는 욕심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자연에서 제대로 사는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먼저 자연에는
한방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당을 가꾸는 욕심이 되었든 아니면 담장을 가꾸는
욕심이 되었든, 아니면 어느 자갈밭에 매년 조금씩 묘목을 심어 가꾸는 욕심이 되었든 시간을 흩어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을 수 있는 욕심 하나는 꼭 품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분명 살아서 누리는 기쁨이면서
또한 죽어서도 다음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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