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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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육에 대하여
차렷!
*
햇볕이 따사로운 어느 날 선생님은 야외수업을 선택하셨습니다. 하품하던 고양이도 눈을 동그랗게 뜰 만한 이 소식에 아이들은 일제히 “야호”를 외칩니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책상과 잠시 이별하고 푸르른 잔디를 향해 달립니다. 100m 달리기 경주도 아닌데 너나 할 것 없이 마구 마구 달립니다.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한 아이가 멈춥니다. 다음 아이도 멈춥니다. 연이어 모든 아이들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멈추어 섭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모두 글을 읽을 줄 알고 내포된 의미를 알기 때문입니다.
“잔디를 밟지 마시오!”
한 아이의 순간의 멈춤에서 시작하여 몇 명은 서로 부딪히고 몇 명은 넘어져서 다치기도 합니다. 조금 까진 무릎을 대충 털고 아이들은 또다시 웃습니다. 널브려진 잔디들을 피해 까치발을 하고 아이들은 줄줄이 비엔나처럼 서 봅니다. 잔디를 밟은 꾸지람 몇 마디 듣고 하낫! 둘! 하낫! 둘! 구령을 맞춰가며 선생님을 따라 수업을 들을 잔디에 자리잡습니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날이다. 앞으로는 자유롭게 생각하는 교육을 할 테니까 모두들 편하게 공부해보도록 하자.”
“와~~~아!”
“선생님, 그럼 무슨 책 꺼낼까요?”
“새로운 교육이라고 했지 않니. 우리는 지난번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공부할 거야. 새로운 것! 그러니까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은 다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새로운 것을 시작해보자고.”
“선생님, 새로운 것은 지난번이랑 어떻게 다른데요?”
“음, 이제 너희들은 참고서가 필요없지. 그동안 참고서 본다고 수고가 많았단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군데씩 학원다니느라 힘들었지? 이젠 학원같은데는 안 가고, 학교에서 너희들이 집에 갈 때까지 모든 것을 다 가르쳐줄거야.”
“와~~~아”
“자, 그럼 공부를 시작해 볼까? 무엇부터 해볼까? 우리는 창조성을 키우는 자유로운 수업을 해야 해. 그래야 너희들이 창의력이 쑥쑥 큰단다. 자, 그럼 자유롭게 얘기해볼까?”
“선생님, 축구해요. 아니면 야구!”
“안돼, 그건 체육전담 선생님이 오시면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지금은 안돼”
“선생님, 그림 그려요, 만들기해요.”
“안돼! 지금은 미술시간이 아니야. 우리는 학교 교육과정과 과목별 수업 시간을 철저히 지켜야 해.”
“선생님, 바람이 불어요.”
“딴 데 한눈 팔면 못써. 여긴 야외니까 그런 거야. 새로운 교실인 거야. 적응을 해야지.”
“너희들이 다른 의견이 없으니까, 선생님이 오늘 공부할 과목을 정해야겠다. 자, 무엇을 할까. 그래, 이번 시간에는 수학을 공부하자.”
“앗, 선생님. 칠판이 없는데요”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선생님이 죽죽 이야기하면서 설명을 할 테니 너희들은 듣기만 해!”
“그런데 선생님, 왜 십자가가 더하기 기호가 됐어요?”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그런건 시험에 나오지 않아. 그것은 십자가가 아니야. 네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야. 십자가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돼. 그것은 더하기야. 더하기가 수를 더한다는 것만 기억해!”
“하지만 밖이 어두워지고 있는데요. 집에 갈 시간이 다 된 거 같은데요.”
“시작할 때 선생님이 얘기하지 않았나. 학원가는 대신 학교에서 주~욱 공부하게 될 거라고!”
“선생님!”
“더 이상 질문은 없다. 시험이 다가오고 있지 않니. 무조건 외워!”
“선생님,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새롭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도록 해 주었는데도 모르다니, 너희들은 새로운 교육이 필요없구나!”
“……”
“자, 하지만! 새로운 교육이니까 마지막으로 질문한번 들어볼까?”
*
그런데, 선생님! 이제 그만 쉬어 하면 안될까요?
***
새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2013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새로운 교육정책이 제시되었다. 5년 전에도, 그 5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 외형적인 것만을 바꾸려 시도하는 한 교육정책은 우리에게 영원한 폭탄이다.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을 본받자고 했다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우수성으로 와전되는 현실, 극성스런 한국적 교육열에 대한 새삼스런 긍지를 느끼며 더욱 극성스러워 지는 현실, 교육은 입시라는 대단한 명제를 만든 한국이란 나라의 현실, 교육이 미래의 힘이라 강조하며 현재와 미래 모두를 죽이는 현실.
이 현실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여, 부디, 제발, 어린 양들을 살려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