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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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사람과 함께 클래식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음악을 좋아해 자주 듣는다고 했습니다. 나 역시 아름다운 음악에 흠뻑 빠졌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행복했습니다. 그때 느낀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 장면과 느낌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마 그 사람도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얼굴이 행복 그 자체였으니까요.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서로 오고가는 눈빛에서 우리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을 동시에 행복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음악이라니!’, 나는 이 좋은 음악을 자주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저장해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홀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제 들었던 바로 그 곡이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그때만큼 음악이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감정도 그때 그 느낌에 못 미칩니다. ‘멜로디와 연주자 모두 그대로인데 어찌 된 것일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이 하나의 이유인 것 같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사람이 없습니다. 같은 음악도 누구와 듣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부재입니다. 나와 너,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우리’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날 우리는 어떤 음악을 들었어도 행복했을 겁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고, 음악은 우리 연결의 촉매제였습니다. 이제 이 장면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고, 그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없습니다. 똑 같은 상황을 만들어도 그 장면이 아니고,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그때의 음악이 아닙니다.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두 번은 없다’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 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두 번이 없어서 한 번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한 번이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사랑의 순간도 그럴 것이고, 삶의 어떤 장면도 그럴 겁니다. 쉼보르스카는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갖는 시어(詩語)의 세계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습니다. 그 어떤 바위도, 그리고 그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그 어떤 구름도. 그 어떤 날도,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그 어떤 밤도. 아니,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도.”
‘시처럼 산다’는 것은 두 번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루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일이든 두 번 오지 않음을 알고 그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볼 수 있는 심안을 기르고, 마음에 핀 심상을 자기답게 표현할 줄 알 때 삶은 시가 되고 우리는 삶의 시인이 됩니다.

* 비스바와 쉼보르스카 저, 최성은 역, 끝과 시작, 문학과 지성사, 2007년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 안내
구본형 소장의 신간 <깊은 인생(DEEP LIFE)>이 출간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따뜻한 축하와 관심을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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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을 동시에 행복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음악이라니!’, 나는 이 좋은 음악을 자주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저장해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홀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제 들었던 바로 그 곡이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그때만큼 음악이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감정도 그때 그 느낌에 못 미칩니다. ‘멜로디와 연주자 모두 그대로인데 어찌 된 것일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것이 하나의 이유인 것 같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사람이 없습니다. 같은 음악도 누구와 듣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부재입니다. 나와 너,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우리’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날 우리는 어떤 음악을 들었어도 행복했을 겁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고, 음악은 우리 연결의 촉매제였습니다. 이제 이 장면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고, 그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없습니다. 똑 같은 상황을 만들어도 그 장면이 아니고,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그때의 음악이 아닙니다.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두 번은 없다’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 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두 번이 없어서 한 번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한 번이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사랑의 순간도 그럴 것이고, 삶의 어떤 장면도 그럴 겁니다. 쉼보르스카는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갖는 시어(詩語)의 세계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습니다. 그 어떤 바위도, 그리고 그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그 어떤 구름도. 그 어떤 날도,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그 어떤 밤도. 아니,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도.”
‘시처럼 산다’는 것은 두 번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루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일이든 두 번 오지 않음을 알고 그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볼 수 있는 심안을 기르고, 마음에 핀 심상을 자기답게 표현할 줄 알 때 삶은 시가 되고 우리는 삶의 시인이 됩니다.

* 비스바와 쉼보르스카 저, 최성은 역, 끝과 시작, 문학과 지성사, 2007년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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