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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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농사철이 시작되자 올해도 마을 주민 몇몇으로부터 원성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백오산방의 개 ‘산’과 ‘바다’가 밭에 씨앗을 뿌리고 씌워놓은 비닐멀칭을 자꾸 찢는다는 항의였습니다. 개의 자유를 속박하고 묶어두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개가 해를 입히지 못할 만큼 작물의 키가 충분히 클 때 까지 ‘산’과 ‘바다’는 묶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더 영리하고 활동성이 많은 ‘바다’를 묶고 ‘산’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마당 공사 끝내는대로 네 집도 내려서 너도 묶을 것이다. 함부로 나돌아 다니면 동네 형님들이 너를 솥에 넣겠다고 하니까 당분간 자중하고 살아라!” 산이 눈을 껌벅거리다가 아랫마을로 시선을 돌립니다. 암캐는 대략 6개월에 한 번씩 발정을 합니다. 바다는 지금 발정중입니다. 공교롭게도 ‘바다’가 발정을 시작할 즈음 마을의 암캐 몇 마리도 함께 발정을 합니다. 덕분에 작년에는 마을의 네 집과 개 사돈을 맺었습니다. 인간과 달리 암캐는 발정기에만 수캐를 받아들이니 수캐인 ‘산’은 지금 물이 오를 만큼 올랐습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바다의 시선에서 나는 그의 깊은 갈망을 느꼈습니다.
산은 요 며칠 나 몰래 밤마다 마을로 내려갔다가 내가 일어나기 전인 새벽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산’에게 그렇게 곧 묶을 것이라 말한 뒤 읍내에 외출을 하고 돌아와 아궁이에 불을 때는데 ‘산’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녀석이 오늘은 일찍 순찰을 돌러 나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는데도 ‘산’이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하루이틀사흘 일주일이 되도록 ‘산’이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날이 더해질수록 걱정도 커졌습니다. 농작물에 해를 가하는 녀석들을 가마솥을 걸어 집어넣겠다던 동네 사람의 반 농담이 불길하게 되살아나기 까지 했습니다. 오며가며 백방으로 ‘산’을 수소문 했습니다.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는데, 5일 전에 대략 2km 떨어진 교량 근처에서 ‘산’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온갖 걱정이 생겨 해거름과 새벽마다 마당 근처를 서성이는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드디어 ‘산’을 보았다는 전갈이었습니다. 그곳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보았습니다. ‘산’이 보이지 않아 큰 소리로 ‘산아! 산아!’ 외쳤더니 잠시 뒤에 저 산 쪽의 동떨어진 축사에서 ‘산’이 뛰어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달려와 내 앞에 앉아서 연신 꼬리를 흔들어댑니다. 반가워하면서도 미안해 하는 눈치가 가득한 표정입니다. 축사 주인에게 사정을 들어보니 축사를 지키는 개 두 마리가 발정 중이라는 것입니다. ‘산’이 새로운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을 택해 가출을 선택한 것입니다. 나는 산을 그대로 두고 산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며 이렇게 주억였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어찌 죄일까? 오히려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죄지!’
*연재하는 주제는 계속될 것입니다만, ‘산’의 가출이 특별해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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