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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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동안 찬란했던 동창 앞마당의 매화는 이번 비바람에 속절없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대신 산벚나무들이 남쪽 숲속을 뭉게뭉게 꽃구름처럼 수놓고 있는 나날입니다. 화무십일홍. 저 벚꽃들도 이내 꽃눈처럼 흩어지며 곧 사라질 것입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슬픔은 사람의 일, 나무가 낙화를 슬퍼할 리 없습니다. 나무에게 낙화는 결실의 단초를 만들었다는 증거이므로 오히려 기쁜 일일 것입니다.
꽃 없는 나무와 풀이 없듯 사람 역시 누구나 제 꽃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자연에 들어 살고 싶은 사람도 꽃을 피우고 싶을까요? 그대가 그렇게 자연에 기대어 살고 싶은 이라면 그대가 피우고 싶은 꽃은 어떤 꽃일까요? 매화가 벌과 파리와 꽃등에를 부르는 꽃이라면 그대 꽃은 누구를 불러 꿀을 나눠주고 싶은 꽃일까요?
도시에서 피우는 꽃은 돈이거나 명예거나 권력이었던가요? 내게는 이제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단어들입니다. 자연에 기대어 살고 싶은 그대가 새로운 삶에서 피우고 싶은 꽃이 만약 여전히 그런 단어들로 표현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대가 그냥 도시에 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자연에 뿌리내리고 사는 삶이 피우는 꽃은 어쩌면 지금 한참 피어나는 참나무들의 꽃을 닮아야 마땅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대는 참나무의 열매를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가 도토리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들의 열매니까요. 그러면 그대는 참나무의 꽃을 기억하시는지요? 벚꽃의 만개보다 아주 조금 늦게 자신의 가지 끝에 수수한 연두색으로 꼬리모양 꽃을 피우는 참나무 꽃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화려함이 없는 그 꽃은 무심한 이들의 눈길을 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꽃은 숲의 겨울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도토리밤바구미나 다람쥐, 혹은 청설모나 어치같은 동물들을 매년 부양해 왔고,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흉년으로 힘겨운 민초들의 겨울도 구원했습니다.
그대가 자연에서 피우고 싶은 꽃, 그것을 그대의 꿈에 관한 욕심이라고 합시다. 모든 꽃은 숲을 살찌웁니다. 하지만 모든 꿈이 세상을 살찌우지는 못합니다. 그것이 숲과 사람 세상의 가장 큰 차이일 것입니다. 사람 세상에서 어떤 이는 화려하게 빛나고 싶어서 남의 꿈을 빼앗아 자신을 치장하거나 살찌우는 일이 많습니다. 또 지금 문명이 품은 꿈은 끝없이 발 아래 자연을 착취할 때 이룰 수 있는 꿈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남의 꿈을 빼앗아 빛나고 싶은 꿈이라면, 지금 문명의 방식을 그대로 이식하여 자연의 터전을 일구고 지켜내고 확장하고 싶은 꿈이라면 차라리 계속 도시에 살기를 권합니다. 자연에 들어 살고 싶은 사람들이 품으면 좋을 꿈에 관한 욕심은 오히려 지금 이 숲에서 만개를 준비하고 있는 참나무의 빛깔, 참나무의 결실을 닮은 꿈이어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미래를 구원할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안만은 부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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