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지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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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풀이 어느덧 저리 푸르러
동산 가득 나비가 날아다닌다
봄바람 잠든 나를 속여 깨우려
침상 위 옷깃을 불어 흔드네
깨고 보면 고요히 아무 일 없고
숲 속에 저녁 해만 비치고 있다
난간에 기대어 탄식하려다
고요히 어느새 기심 잊었네
이 시는 고려 때 최유청(崔惟淸 1095-1174)이 지은 '잡흥(雜興)' 이라는 연작시 중의 한 수입니다. 말도 해설도 필요 없는 시입니다. 시인은 무엇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을 번역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담박 알 수 있습니다. 말이 필요 없을 때 '통'했다 합니다. 이 순간 자연과의 일치를 깨지 않으려 시인은 탄식조차도 아낍니다.
언젠가 토마스 칼라일과 랠프 에머슨이 처음 만났을 때의 일화가 재미있습니다. 그들은 30분 가량 아무 말도 않고 앉아 있다가 오늘은 퍽 재미나게 놀았다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는군요 . 참 싱겁고 이상한 이야기지요? 그러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어는 부질없는 군더더기 일 뿐이지요.
우리는 침묵을 못 견뎌 합니다. 끊임없이 잡담을 하며 서로의 동질화와 평균화를 꾀합니다. 하이데거는 진정한 자신의 삶을 '본래적 삶'이라고 불렀습니다. 반면 세상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상적 삶을 '비본래적 삶'이라고 말하며, 이것을 '무너져 내림'으로 규정했지요. 그들이 말하는 대로 따라 말하고, 그들이 행동하는 대로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삶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지요.
오늘은 '시간 죽이기'에 지나지 않는 비본래적 삶에 잡답을 줄이기 위해 시를 하나 끌고 들어 와 보았습니다. 시는 최소한의 언어니까요. 그리고 침묵도 데리고 들어와 보았습니다. 침묵은 '아 !'하는 깨달음의 탄식조차 버거워 하니까요. 그저 오늘은 봄, 어두운 새벽의 침묵 속에서 내 본래적 삶이 무엇인지 느껴보려 합니다. 자기 경영은 때때로의 침묵, 바로 그때, 적합한 침묵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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