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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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 내 어찌 살아야 하는가
바이로차나 부다 vairocana budda 는 비로자나불의 산스크리트어다. 그는 형체 없이 광막한 우주를 비추는 대지혜의 빛을 뜻하는 부처의 다른 이름이다. 부처의 법신이라고도 하는데 그의 좌우로 보신의 노사나불, 화신의 석가모니불을 거느린다. 비유컨대 법신은 달이고 호수에 비춰진 달은 화신이요, 그 달을 비추는 호수는 부처의 보신이다. 경주 기림사에서 만난 해박한 보살 아주머니가 말해 주었다. 그리하여 기림사에는 불상을 모신 대웅전은 없고 그 빛을 모신 대적광전이 있다.
변하지 않고 만물을 비추는 법신으로부터 그 빛이 변화하여 만들어진 부처의 화신, 그리고 보신이라… 인간의 상황과 목적에 맞게 변하여진 신, 신은 과연 변한 것인가? 변하지 않은 것인가? 변하지 않는 신을 인간이 변화시킨 것인가? “불변은 변화의 탈시간화된 개념이고 변화는 불변의 시간화된 개념”이라 하는데 불변과 변화의 개념이 겨울 끝 경주, 포근하게 내려앉은 햇살 아래, 만물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빛나는 ‘현실’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그날 밤, 변하였는가? 우리는 지난 1년을 놓고 서로에게 갈구하며 물었다. 변화를 물었는지 불변을 물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변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아니었겠고 변하였다면 변하지 않고 천 년을 서 있는 감은사터 탑의 첨단 앞에 무참할 터였다.
오어사에는 천 년 전 신라사람 원효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가 쓰던 삿갓인지 아닌지 알 길은 없지만 그의 것이라 주장하며 해진 채 후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있다. 원효는 그 삿갓을 쓰고 요석공주의 침실로 들었을까, 그 삿갓을 쓰고 천촌만락을 돌아다니며 노래하고 춤추었을까, 그의 파계 이후 함께 하였을 것이라 추측되는 그 삿갓을 쓰고 가난한 사람, 어린아이까지 부처를 알고 염불할 수 있게 했을 터인데 지금, 그 삿갓에 손을 대면 곧 모든 것이 바스라질 듯 하여 영원하지 않을 것을 영원으로 보존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만 눈물겨울 뿐이다.
변하여 질 것은 변하게 내버려 두고 변화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목숨 걸며 지키자는 생각은 하루 달리 올라서는 빌딩들과 상전벽해의 변화 앞에서 진부한가? 변화는 불변이라는 역설이 홈플러스 바로 옆 조봇하게 앉은 천년 전 세계의 큰 무덤을 휑하니 지나간다.
후퇴 없는 시간에 대해 변화는 진리다. 그렇다면 세상에 모든 멈춰버린 것들은 변화에 대한 부조리인가? 괴로운 질문에 답답하던 차에 내 스승은 와병 중 홀연히 나타나 말하였다. “변화는 개혁의 시점을 묵과한 대가이며, 근본적 개혁을 피해간 적당주의에 대한 가혹한 단죄다. …(그리하여) 변화는 우리에게 결국 쓰러짐 없는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자발적 변화란 곧 자신을 변화로부터 지키기 위한 불변의지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베르 까뮈가 끼어든다.
“세계의 부조리가 어디 있는가? 이 눈부신 햇빛인가 아니면 햇빛이 없던 때의 추억인가? 기억 속에 이렇게도 많은 햇빛을 담고서 내가 어떻게 무의미에다 걸고 내기를 할 수 있었던가? 내 주변에서는 그래서 놀란다. 나도 때로 놀란다. 바로 그 태양이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그리고 빛이 너무나 강렬해지다 보면 우주와 형상들을 캄캄한 눈부심 속에 응고시키고 마는 것이라고 남들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달리 말할 수도 있을 테지만 내게는 언제나 진리의 빛이었던 이 희고 검은 빛 앞에서 나는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남들이 마구잡이로 논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는 이 부조리에 대하여 그냥 단순하게 내 생각을 밝혀 두고 싶다. 그래도 역시 부조리를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는 또다시 햇빛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스승과 카뮈의 화학적 결합으로 세계의 변화는 내 어깨와 척추에 내리쬐는 햇살에 속수무책이 되었다. 양동마을 서백당의 600년 향나무와 머리가 유난히 붉은 삼릉의 소나무, 아침 서광에 자지러지는 탑곡 마애불, 경주는 가는 곳마다 나에게 속삭인다. ‘누가 너를 빚어냈는지 알려 하지 마라. 너는 대지에 발붙이며 섰고 한계와 조건으로 살게 되었다. 피와 살이 없어진 뒤 무엇으로 되려는지 궁금해 하지 마라. 중요한 건 너의 머리에 햇살이 내리쬐고 너의 육근은 울퉁불퉁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기뻐하는 것, 늙어 흘러내리는 육에 기쁨을 선사하는 것, 유한한 육을 무한으로 확장하는 마음을 누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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