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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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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0일 06시 29분 등록

이제 나는 여섯 살이 되었다. 할머니에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것은 아마 내 생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할머니는 거의 매일 밤 등잔불을 밝혀놓고 책을 읽어주셨으며 사전공부를 계속 시키셨다. 나는 이제 B항목까지 진도가 나갔다. 그런데 사전의 한 페이지가 찢겨지고 없었다. 할머니는 그 페이지에는 별로 중요한 단어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번 개척촌에 갔을 때 할아버지는 도서관에서 사전 한 권을 샀다. 75센트나 했다. 할아버지는 전부터 이런 사전을 가지고 싶었노라고 하시면서 그 돈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그 안에 든 단어를 전혀 읽지 못하시기 때문에, 나는 할아버지가 다른 용도로 그 사전을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 나는 할아버지가 사전에 손대시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포리스트 카터가 쓴 자전적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체로키 인디언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포리스트의 할아버지는 그에게 ‘작은 나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작은 나무는 두 분에게서 체로키족의 삶의 방식과 철학, 그리고 그들의 지혜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서서히 체득하게 됩니다.

위 이야기에서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를 위해 사전을 구입했습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할아버지의 마음이 선명합니다.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에게 사전을 주거나 이것으로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전은 할아버지가 ‘작은 나무’에게 주는 선물이고, 할아버지는 인디언이 선물을 주는 방법을 따랐습니다. 포리스트는 이 방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디언은 절대 무슨 뜻을 달거나 이유를 붙여서 선물하지 않는다. 선물을 할 때는 그냥 상대방의 눈에 띄는 장소에 놔두고 가버린다.

선물을 받는 쪽은 자신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받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선물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하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에는 여백이 존재합니다. 어린 작은 나무의 시선으로 보고 겪은 것을 전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적당하게 비워진 이야기와 교감하다보면 어느새 정신이 평온해지고 마음은 맑아집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할 수 있지만 삶을 사는 건 간단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삶에 대한 여백이 있는 이야기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런 이야기가 복잡한 삶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본질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깊은 삶을 위해서는 여백이 필요합니다. 책과 나누는 대화에도 생각할 수 있는 여백과 음미할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고, 우리 사이에도 그런 여백이 필요합니다. 마음과 선물을 주고받을 때도 그렇고, 말과 글을 나눌 때도 여백이 필요합니다.

sw20110509.gif

* 포리스트 카터 저, 조경숙 역,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아름드리미디어, 2008년(4판)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IP *.49.2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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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11.05.10 09:02:37 *.10.140.89
이 책은 특별히 나하고도 인연이 깊은 책인데...
LittleTree라는 아이디로 중요한 대회에 나간 적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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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게
2011.05.11 11:48:15 *.143.199.187
제게도 소중한 책이라 반갑네요.
좋은사람들에게 꼭~ 권해주고싶은 책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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