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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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양립 불가능한 생각들이 심리적 대립을 일으킬 때, 적절한 조건 아래서 자신의 믿음에 맞추어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에 따라 믿음을 조정하는 행동의 원인을 형성한다.” – 레온 페스팅거, <인지 부조화 이론> 중에서 -
새로운 천 년을 앞두고 세상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Y2K라는 이름의 전산시스템 오류가 몰고 올 대재앙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게 있었지요. 바로 종말론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엔 제법 심각했습니다. 종말론을 앞세운 교회들이 여기저기 등장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니까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한낱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지금,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종말론은 시대를 초월한 문제인가 봅니다. 1950년대에 이미 비슷한 상황을 연구한 심리학자가 있었더군요.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믿음이 좌절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연구하기 위해 사난다라는 존재를 믿는 종말론 모임에 잠입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우주선이 내려와 소수의 믿는 사람들만 데려가고 세상은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말론들이 그렇듯 비슷한 최후를 맞이하게 됐지요. 예정된 시간에 우주선이 내려오지 않은 겁니다. 페스팅거는 굳게 믿고 있던 사실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엉뚱하게 흘러갔습니다.
모임의 중심이었던 매리언 키치는 ‘신이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심하고 홍수를 내리지 않았다’는 내용을 가능한 많은 매체에 전달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금세 새로운 메시지를 받아들였습니다. 자신들이 믿었던 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새로운 거짓말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은 거지요. 종말을 기다리는 동안 방송과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가능한 보안을 유지하려고 했던 그들은 태도를 바꿨습니다. <라이프>, <타임>, <뉴스위크>등의 유명 매체에 자발적으로 인터뷰를 요청하고 자신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페스팅거는 ‘사람들이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벌어진 상황에 따라 자신의 믿음을 적절히 수정한다’는 인지 부조화 이론의 토대를 발견했습니다. 그의 실험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엄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꾸준히 증명해나갔습니다.
조금 슬픈 일이지요? 우리가 굳건한 믿음을 토대로 행동하기보단 주어진 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믿음을 폐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마냥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요. 이론 자체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 뜨끔한 생각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 보니 때때로 닥쳐온 크고 작은 불운과 적당히 타협했던 기억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거창한 심리학 이론을 빌지 않더라도 무기력한 일상에 무릎 꿇기를 반복해온 책임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이제라도 진실을 알게 됐으니 앞으로는 넋 놓고 있다가 다시 급소를 가격당하는 일은 없어질까요?
지금 이순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꿈으로 현실을 빚어가고 있나요? 무기력한 현실을 보듬을 그럴듯한 거짓 믿음을 꾸며내고 있지는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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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천 년을 앞두고 세상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Y2K라는 이름의 전산시스템 오류가 몰고 올 대재앙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게 있었지요. 바로 종말론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엔 제법 심각했습니다. 종말론을 앞세운 교회들이 여기저기 등장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니까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한낱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지금,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종말론은 시대를 초월한 문제인가 봅니다. 1950년대에 이미 비슷한 상황을 연구한 심리학자가 있었더군요.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믿음이 좌절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연구하기 위해 사난다라는 존재를 믿는 종말론 모임에 잠입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우주선이 내려와 소수의 믿는 사람들만 데려가고 세상은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말론들이 그렇듯 비슷한 최후를 맞이하게 됐지요. 예정된 시간에 우주선이 내려오지 않은 겁니다. 페스팅거는 굳게 믿고 있던 사실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엉뚱하게 흘러갔습니다.
모임의 중심이었던 매리언 키치는 ‘신이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심하고 홍수를 내리지 않았다’는 내용을 가능한 많은 매체에 전달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금세 새로운 메시지를 받아들였습니다. 자신들이 믿었던 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새로운 거짓말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은 거지요. 종말을 기다리는 동안 방송과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가능한 보안을 유지하려고 했던 그들은 태도를 바꿨습니다. <라이프>, <타임>, <뉴스위크>등의 유명 매체에 자발적으로 인터뷰를 요청하고 자신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페스팅거는 ‘사람들이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벌어진 상황에 따라 자신의 믿음을 적절히 수정한다’는 인지 부조화 이론의 토대를 발견했습니다. 그의 실험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엄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꾸준히 증명해나갔습니다.
조금 슬픈 일이지요? 우리가 굳건한 믿음을 토대로 행동하기보단 주어진 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믿음을 폐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마냥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요. 이론 자체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 뜨끔한 생각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 보니 때때로 닥쳐온 크고 작은 불운과 적당히 타협했던 기억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거창한 심리학 이론을 빌지 않더라도 무기력한 일상에 무릎 꿇기를 반복해온 책임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이제라도 진실을 알게 됐으니 앞으로는 넋 놓고 있다가 다시 급소를 가격당하는 일은 없어질까요?
지금 이순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꿈으로 현실을 빚어가고 있나요? 무기력한 현실을 보듬을 그럴듯한 거짓 믿음을 꾸며내고 있지는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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