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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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했다. 빛이 보일 듯 하면 문은 닫히고 말았다. ‘혁명’을 바라며 꿈꾸고 살았지만 그 무엇도 바뀐 것은 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후퇴한 듯 보인다. 어두운 땅 밑을 뚫고 다니는 두더지는 결코 밝은 세상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에티카, 하나의 믿음이 필요하다. 이 말을 들으면 어리석은 자들은 웃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언가 다른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믿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도 일부를 이루고 있는 이 세계를.” - 질 들뢰즈, 시네마 II : 시간 - 이미지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히로세 준의 서문은 들뢰즈의 위 인용문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말한다. 어리석은 자들이 좌지우지하는 형편없는 영화같은 세상을 우리는 견뎌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이 ‘견디기 힘든’ 세상을 바꾸기 위한 그 어떠한 액션도 불가능하다는 ‘견디기 힘든’ 상황까지도 견뎌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렇다. 우리는 견뎌야 한다. (아니, 이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즐겨야 한다. 무엇보다 이 형편없는 세상을 즐길 수 있을 만한 그 무엇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직 즐기는 놈 만이 살아남는다. 김훈이 단언했듯이 “세상은 부서지지 않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럼 어떤가?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하리니... 내기에 지면 다시 한번 더 주사위를 던져 올리면 된다.
그것이 생이라면 뱀처럼 기면서 뒹굴면서 넘어가보자. 자, 삶이여, 다시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