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지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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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나이가 길을 가다 나귀를 타고 가는 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선녀가 내려온 듯 아름다워 그만 넋이 나가고 발길이 얼어붙었습니다. 마음 속 불길이 일어 그 즉석에서 시를 지어 그녀에게 보내 작업을 시작했지요.
마음은 미인따라 달려가는데
이 몸은 부질없이 문 기대섰소
수작을 거니 그녀가 '흥' 하고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노새는 짐무겁다 투덜대는데,
그대 마음 그 위에 더 얹었으니
이 쯤 되면 넋 놓은 놈이 미칠 지경에 이릅니다. 그저 '그 마음 내 이미 접수했노라'는 말로 믿어 의심치 않고,
기대고 있던 삽작문을 버리고 냅다 달려 여인에게 이르게 되지요.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 에 수록되어 있는 시라고 합니다. 딴 책을 보다 이 대목이 인용된 글을 읽게 되었는데, 흥겨워 하루 종일 웃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맞팔이 통해 사귀게 된 셈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품격과 향취가 요즘과 다를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작업이 시로 이루어졌고 답변도 시로 되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작업을 걸 때 훌륭한 작업자는 시인이 됩니다. 시를 짓는 것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말 가운데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것입니다. A4 1 장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140 자로 줄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140 자만 남기고 모두 걷어 내는 것입니다. 반대로 작업을 당한 이는 작업자가 말하고 싶었으나 절제하고 걷어 낸 나머지 말들을 찾아내 행간에 감추어진 뜻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다 말해 버려서 독자가 따로 찾을 것이 없다면 그것은 시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 주고받는 맛이 즐겁지 않겠습니까 ? 작업이 이루어지려면 주고받는 맛이 좋아야 합니다. 해 본 사람은 다 압니다.
자기경영은 복잡한 욕망 중에서 불필요한 것을 다 걷어내고 꼭 있어야할 것만 남겨 모든 에너지를 그곳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 나귀를 타고 선녀처럼 지나가는 바로 그녀에게 온 마음을 쏟는 것이지요. 그 사람에게서 눈을 떼면 안됩니다. 온통 붉은 마음만 남겨 두는 것입니다. 그때 자아에 대한 구애에 성공하게 됩니다. 나를 얻는 것, 이것이 자기경영입니다. 이때 그 삶은 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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