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지깽이
- 조회 수 4924
- 댓글 수 4
- 추천 수 0
한 사나이가 길을 가다 나귀를 타고 가는 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선녀가 내려온 듯 아름다워 그만 넋이 나가고 발길이 얼어붙었습니다. 마음 속 불길이 일어 그 즉석에서 시를 지어 그녀에게 보내 작업을 시작했지요.
마음은 미인따라 달려가는데
이 몸은 부질없이 문 기대섰소
수작을 거니 그녀가 '흥' 하고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노새는 짐무겁다 투덜대는데,
그대 마음 그 위에 더 얹었으니
이 쯤 되면 넋 놓은 놈이 미칠 지경에 이릅니다. 그저 '그 마음 내 이미 접수했노라'는 말로 믿어 의심치 않고,
기대고 있던 삽작문을 버리고 냅다 달려 여인에게 이르게 되지요.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 에 수록되어 있는 시라고 합니다. 딴 책을 보다 이 대목이 인용된 글을 읽게 되었는데, 흥겨워 하루 종일 웃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맞팔이 통해 사귀게 된 셈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품격과 향취가 요즘과 다를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작업이 시로 이루어졌고 답변도 시로 되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작업을 걸 때 훌륭한 작업자는 시인이 됩니다. 시를 짓는 것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말 가운데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것입니다. A4 1 장으로 말하고 싶은 것을 140 자로 줄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140 자만 남기고 모두 걷어 내는 것입니다. 반대로 작업을 당한 이는 작업자가 말하고 싶었으나 절제하고 걷어 낸 나머지 말들을 찾아내 행간에 감추어진 뜻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다 말해 버려서 독자가 따로 찾을 것이 없다면 그것은 시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 주고받는 맛이 즐겁지 않겠습니까 ? 작업이 이루어지려면 주고받는 맛이 좋아야 합니다. 해 본 사람은 다 압니다.
자기경영은 복잡한 욕망 중에서 불필요한 것을 다 걷어내고 꼭 있어야할 것만 남겨 모든 에너지를 그곳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 나귀를 타고 선녀처럼 지나가는 바로 그녀에게 온 마음을 쏟는 것이지요. 그 사람에게서 눈을 떼면 안됩니다. 온통 붉은 마음만 남겨 두는 것입니다. 그때 자아에 대한 구애에 성공하게 됩니다. 나를 얻는 것, 이것이 자기경영입니다. 이때 그 삶은 시가 됩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176 | 당신의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 | 문요한 | 2011.05.18 | 4071 |
3175 | 집 [2] | 김용규 | 2011.05.19 | 3127 |
3174 | 이는 사라지고 혀는 남는다 [3] | 부지깽이 | 2011.05.20 | 4396 |
3173 | 몰두하라.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5] | 신종윤 | 2011.05.23 | 4285 |
3172 |
소로우의 세 개의 의자 ![]() | 승완 | 2011.05.24 | 6643 |
3171 | 비싼 수업료 [1] | 문요한 | 2011.05.25 | 3284 |
3170 | 숲학교를 짓기 위한 첫 삽 뜨기 [6] | 김용규 | 2011.05.25 | 3217 |
3169 | 봄에 와서 봄에 떠난 사람 [12] [1] | 부지깽이 | 2011.05.27 | 5035 |
3168 | 믿음으로 예측을 뛰어넘다. [1] | 신종윤 | 2011.05.30 | 3803 |
3167 |
낙관주의와 현실주의를 함께 활용하라 ![]() | 승완 | 2011.05.31 | 4424 |
3166 |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 | 문요한 | 2011.06.01 | 4178 |
3165 | 정원 [3] | 김용규 | 2011.06.01 | 3206 |
» | 작업의 기술 [4] | 부지깽이 | 2011.06.03 | 4924 |
3163 |
‘소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 | 승완 | 2011.06.07 | 4398 |
3162 | 그 누구도 섬이 아니다 | 문요한 | 2011.06.08 | 3769 |
3161 | 오래된 것으로 승부하라! [3] | 김용규 | 2011.06.08 | 3655 |
3160 | 내 이름은 왕소군 | 부지깽이 | 2011.06.10 | 4536 |
3159 |
그대의 악덕이 그대의 미덕입니다 ![]() | 승완 | 2011.06.14 | 4328 |
3158 | 나쁜 보살핌 | 문요한 | 2011.06.15 | 4051 |
3157 | 그 셈법을 익혀야 살 수 있다 [2] | 김용규 | 2011.06.15 | 29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