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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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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8일 22시 59분 등록

그림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마!” 십 년 전쯤 홍익대학교 근처에서 기업을 경영할 때 그곳 어느 담장에 그림과 함께 커다랗게 새겨져 있던 문구입니다. 이따금 직원들과 식사를 하거나 손님을 만나러 나갈 때 그 담장을 지나쳤는데, 그때마다 나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 그림과 글씨를 새겨놓은 사람은 누구일까? 그가 담장에 이 그림을 새겨 넣으며 가졌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설명 없이도 그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괜스레 그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나는 결국 그를 만나지 못하고 산으로 왔습니다.

 

숲에 와서 살면서도 이따금 나는 면식 없는 그의 담장 그림과 문구를 떠올렸습니다. 철학을 담은 농사로 먹고 사는 것이 정말 힘들구나 느끼게 되었을 때 더욱 그랬습니다. 그림으로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면 그렇게 담장에 슬로건을 내걸었을까? 누군가가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여 그것으로 먹고 산다는 것이 마치 그림쟁이가 그림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구나 생각될 때 나는 그의 담장 그림과 글이 혈서로 쓴 다짐 같은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산 속으로 들어와 이 지역의 뜻 맞는 몇몇 분과 미래 농촌 사회의 방향에 대해 공감의 폭을 넓혀갈 즈음, 그래서 이 숲에 숲학교를 짓겠다는 꿈을 내비칠 즈음, 나는 오래된 것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땅에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는 농업 방식은 기껏 40년도 되지 않았으며 그 방식으로 농사지어서 먹고 살기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지 알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이제는 버려지다시피 한 오래된 가치를 현재적으로 되살려 그것으로 먹고 사는 방법을 찾아보지 않겠는가? 그렇게 설득하는 작업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해왔습니다.

 

제시한 대안은 숲이었고 자연의 원리를 차용한 방식의 농사였습니다. 숲은 인류보다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또한 앞으로 점점 더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는 가치를 지닐 것이다. 화석연료의 경제성이 떨어지면 화학비료나 농약, 일정 온도 유지를 위해 에너지 비용을 써야 하는 시설 농사 역시 경제성을 잃어갈 것이다. 우리처럼 숲에 둘러싸인 마을은 숲 그대로를 통해 소득을 얻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떻겠느냐는 설득을 해온 것입니다.

 

요즘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나는 하루를 마감하는 한 밤중이면 반드시 집 안의 모든 불을 끄고 마당으로 나가 밤 하늘의 별을 봅니다. 나의 오두막 주변을 별처럼 반짝이며 떠도는 반딧불이들의 향연을 봅니다. 오두막을 짓던 첫 해에 하루 서너 마리 밖에 보이지 않았던 반딧불이가 지난 해에는 수십 마리로 늘었습니다. 급기야 올해는 수백 마리로 늘었고 그 풍경이 오래된 유년의 추억을 불러 세우며 나 스스로를 감동시킵니다. 오두막 주변의 농토에 농약과 화학비료 농사를 짓는 면적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전라남도의 어느 곳은 반딧불이로, 다른 어떤 곳은 나비만으로 어마어마한 도시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오래된 것을 되살려 누군가의 가슴에 감동을 주는 일이 먹고 살 동력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마 이 경향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입니다. 홍익대 근처 담장에 다짐을 썼던 그가 그 목표를 이루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귀농이나 귀촌을 하는 사람이 오래된 것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마!’라고 쓴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나는 확신합니다.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으려는 이에게 나는 되살려 낼 오래된 미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바뀌지 않는 가치만큼 블루오션인 것이 없으니까요!

IP *.20.20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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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11.06.09 04:23:13 *.10.140.89
멋진 형님, 멋진 선생님, 멋진 농부, 멋진 개똥철학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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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정
2011.06.09 14:56:21 *.216.72.126
멋진 말씀이네요
'오래된 것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마'

블루오션의 가장 핵심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남들이 하지 않았다고 틈새 시장을 파고들라는 전문가들의 말보다 바뀌지 않는 가치가 더 근본적인 것 같네요.

멋진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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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맨
2011.06.15 05:40:31 *.184.19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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