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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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어려운 문제로 꼽히는 것은 시골에 아직까지 살아있는
공동체 문화와의 갈등입니다. 나의 경험으로는 아파트로 대별되는 도시의 정주문화에서는 이웃과 함께 생활을
나누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파트 철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으면 그 순간부터 타인이 자신의
생활과 엮일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골 생활은 다릅니다. 요즘처럼 풀이 무성한 때 같으면 마을 진입로에 풀을 벨 테니 집집마다 연장 들고 모이라는 방송이 나옵니다. 혹은 마을이 도시에 있는 기업과 자매결연을 맺는다고 모두 모이라는 방송이 나오기도 합니다. 농한기에는 부녀회에서 어르신들 모셔 음식을 대접한다고 모이는 때도 있습니다.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인 동계 역시 빠지기 어려운 행사입니다. 누군가 아파서 도시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면 단체로 문병을 가기도 합니다. 또 세상을 떠나시는 분이 있을 경우 마을 주민 전체가
장례에 참석하고 나처럼 젊은이는 상여를 메야 합니다.
번잡함이 싫어서 시골에서 새로 삶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혹은 도시의 개인주의적 삶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런 문화는 어쩌면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화는 보다 적극적으로 읽어보면 시골마을 사람들이 ‘혼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의
힘을 활용하며 살아온 오래된 지혜임을 알 수 있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즐거움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도시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정말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시골
사람들의 셈법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이웃 중에는 지은 농사를 수확할 때마다 최소한 한 포대씩 그
땀 흘려 얻은 농산물을 집에 가져다 놓고 가는 분이 있습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마루에 브로콜리가
한 포대 있기도 하고, 마늘이 한 접 있기도 합니다. 파나
깨소금, 인삼처럼 철마다 그 종류는 다르지만 어떤 메모도 없이 덩그러니 마루 한 켠에 놓여 있는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냥 얻어 먹을 수 없어 가져오신 분을 찾아나서 보았지만 처음에는 그 범인(?)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찌어찌 알아내어 셈을 해보려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면박만 당했습니다. 농사가 부실한 나는
드릴 농산물도 부실해서 결국 오가는 길에 고기를 끊어다가 드리거나 과일, 케이크 같은 것을 사다가 드리곤
했습니다. 훈훈한 인심으로 느낄 수 있는 관계지만, 도시생활에
지나치게 익숙한 사람의 경우 번거로움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골에 이렇게 훈훈한 셈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인심은 참 야박하다 싶은 측면도 있습니다. 옆에서 보게 된
예로 마을에 농로를 넓혀 포장을 하려고 하는데, 자신의 땅이 포함되는 두 농가 사이에 기껏 두 평 정도의
땅을 부담하지 않겠다고 얼굴을 붉히고 그 때문에 포장이 몇 달 동안 지연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돈으로
쳐봤자 30만원 정도 밖에 안 되는 땅인데, 함께 수십 년을
살아온 이웃이면서도 그렇게 첨예하게 맞서는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좋은 인심을 보여주면서 한편 너무 야박한 측면을 보여주는
이 역설적 셈법에 대해 나름대로 그 이유를 찾아 정리해 두었지만 이유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중요한 부분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내가 조금 더 손해를 보며 살겠다는 마음이면 됩니다. 자연에서 다시 시작하면서 꼭 지니고 시작해야 할 마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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