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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1년 6월 24일 07시 45분 등록

   1571년 38살의 나이에, 생일날이기도 한 2월의 마지막 날에, 미셀 드 몽테뉴는 법원의 공적 업무에 넌더리가 나서 고향의 품으로 은퇴했다. 이제 그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허락한 절반이상 남은 삶을 조용히 모든 근심을 털어내고 살아가리라. 운명이 허락한다면 이 안식처, 조상이 남긴 이 즐거운 은거지에서 삶을 마치리라. 자유와 평온과 여유로움에 이 은거지를 바치리라.

  이 구절은 자신이 은거한 중세의 성탑 안에 미쉘 드 몽테뉴가 은퇴를 자축하며 써 둔 글입니다. 그는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보르도 고등법원에서 참사관으로 13년간 근무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는 법과 정치에 신물이 났고. 원래 그것을 좋아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연한 슬픈 사건이 그를 행동하게 했습니다. 절친한 친구 보에티가 32살의 나이에 장질환으로 갑자기 죽어 버린 것입니다. 친구의 죽음은 몽테뉴를 더욱 우울하게 했습니다. 그는 결국 38살에 사표를 내고 옛집으로 은둔했습니다.

  그의 옛집은 보르도 동쪽 50 키로 쯤에 위치한 포도밭 언덕 위의 중세의 고성이었습니다. 그는 이 성의 둥근 탑을 개조했지요. 1층에 작은 예배실을 꾸몄습니다. 예배당 위에는 침실을 두었습니다. 예배당과 침실 사이에는 소리관을 파두어 신장결석으로 꼼짝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에도 예배실의 미사를 들을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침실 위에는 서제가 있습니다. 책상 하나와 벽전체를 두른 반원형 책장을 만들어 두었지요. 그리고 모든 책을 그곳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완벽한 은둔처가 마련된 것입니다.

  스스로의 말을 빌리면, 몽테뉴는 덤벙대고 수다스럽고 지극히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집중하지 못하고 지루한 것을 견디지 못했지요. 말을 타고 시골길을 끝없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늘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포도밭 위의 시골 중세의 탑에 은거해 살 수 있게 되었을까요 ? 어떤 우연이 그의 손을 잡고 운명으로 이끌었을까요 ? 어쩌면 중년의 위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는 이 나이면 벌써 중년의 시작이니까요) 친구 보에티의 요절이 삶을 되돌아보게 했을 것입니다. 그는 갑자기 철학자가 되었으며, 자기 탐구에 열을 올리게 되었지요.

  그는 새롭게 찾은 인생으로 글을 쓰고 싶어 했습니다. 무슨 글을 쓸까 ? 한 번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최초의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써야할 지 몰랐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것도 쓸 것이 없었다. 나는 공허한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주제로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나는 다른 문제들 보다 나 자신을 연구했다. 이것이 내 형이상학이고 내 물리학이다"

   결국 그동안의 철학적 과제였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과제는 몽테뉴에게는 '너의 자서전을 써라' 라는 말로 이해되었지요. 그의 두꺼운 '수상록'은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수상록의 원제목인 essai는 프랑스어로 '시도(試圖)'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수상록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시도를 한 셈입니다. 그러므로 수상록 속의 글들은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고 폭로적인 호소들이 많습니다. 몽테뉴에게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즐거움에 있었으니까요. 수상록이 무려 1200 쪽에 달하는 이유도 자신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계속 수정하고 보완해 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정말로 진실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믿고 인정하도록 만든 것에 불과하다"

   자기경영은 '나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들을 듣게 되지만,  결국 자신 앞에 다가서는 모험을 거부하지 않고 즐기는 것입니다.  당신은 언제 새로운 모험을 떠날 예정인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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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권양우
2011.06.24 09:51:01 *.223.104.12
캐나다에 유학을 가 있는 아들이 요즘 제 마음을 많이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덕분에 최근에는 아침, 저녁으로 상당시간 서로 전화통화를 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인간에게 큰 깨우침을 주는 것은 '죽음'인 것 같습니다.
아들이 친하게 지내던 한살 터울의 유학생 형, 그 어머니가 암 진단 2개월만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것을 곁에서 지켜 본 아들이 삶의 이유와 삶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듯도 합니다.
여름방학이 되어 곧 한국에 들어와 2개월을 함께 지내게 됩니다.
함께 지내는 동안 후회하지 않도록 아들과 어미로서 깊이 깊이 교감하고 추억을 많이 쌓고자 합니다.
제가 영원히 언제까지나 그 아이 곁에 머물며 그 녀석을 지킬 수는 없기에,
그 아이의 기억 속에서 힘과 용기와 지혜로 작용해 줄 사랑을 많이 심겠습니다.
선생님의 오늘 글이 '현재를 살아라'로 절실히 들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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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11.06.25 04:50:24 *.10.140.89
덤벙대고 수다스럽고 지극히 사교적이고(이건 좀 아니 것 같음) 외향적인 몽테뉴가 철학에 빠져들었다는 것이 나를 들뜨게 만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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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11.07.04 00:53:33 *.131.128.27
음...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 실린 몽테뉴 챕터와 표현까지 똑같아요. 인용 출처를 밝히시고 쓰면 더 좋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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