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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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일 09시 26분 등록

설레는 가슴을 안고 퇴근 준비를 하던 불금(불타는 금요일) 오후 5. 낯선 문자 한 통이 배달되었다. ‘아무개의 아내입니다. 저희 남편이 병으로 2 14일 새벽에 소천하였습니다. 모모병원 3영안실이며 내일 발인입니다.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의 얼굴이 언뜻 스쳐갔다. 아무개는 작년 여름 모 회사의 영업이사 포지션에 지원했던 박본부장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달부터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외국에 나갔나 보다 생각했는데 이런 비보가! 떨리는 손으로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영정 사진 옆에는 파리한 얼굴의 그의 아내가 서 있었다. 아내는 내 이름과 소속을 듣더니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은지 아빠가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많이 도와주셨다구요. 선생님께 연락이 올 때 마다 아이처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은지 아빠가 편히 갈 겁니다.”

 

박본부장은 작년 여름 다니던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상사는 네가 나가줘야겠다라고 했고 그는 군말 없이 짐을 쌌다. 그것이 서로에게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필리핀에서 몇 달 머물며 영어 공부를 했다. 직장 생활 내내 발목을 잡던 영어만 잡으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던 중에 헤드헌터인 필자와 연락이 닿았고 신생회사의 영업이사 포지션에 지원해 최선을 다해 인터뷰에 임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후 그는 열심히 새로운 인생을 준비했다. (필자는 가끔 이런저런 포지션으로 그에게 전화를 하곤 했는데 그는 정말 반가워했다.) 그러던 지난 1월 중순, 그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검사 결과는 위암 말기. 그는 제대로 된 항암치료도 받지 못하고 한 달 만에 세상을 뜬 것이다.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현직을 떠난 사람의 가는 길이 그러하듯 그의 것도 쓸쓸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딸인 듯싶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만약 그가 어느 조직에 몸담고 있었다면 장례식장이 이리 쓸쓸하지 않았을 텐데, 그 포지션에 합격했다면 산업재해로 처리되어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텐데 싶었다. 그러자 또 한 명의 세일즈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필자가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할 때 소속 영업팀의 팀장이었다. 곱슬머리에 검은 얼굴, 작은 키에 깡마른 몸,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그의 왼손엔 언제나 담배가, 오른손엔 자판기 커피가 들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FM이라고 불렀다. 작은 일도 원리원칙에 입각해 처리하는 그를 답답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한 회사에서 20년간 일하며 조직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서울에서 일하다 강원도로, 경상도로, 충청도로 옮겨가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았고, 팀장으로 일하다 팀원으로 좌천되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그는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조기퇴직 프로그램으로 회사를 떠났다.

 

이후 그로부터 간간히 문자가 왔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거나, 터키와 그리스로 사모님과 여행을 간다는 내용이었다. FM은 조직을 떠나서도 FM이구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업팀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가 집에 혼자 있다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다는 것이었다. 동료는 지금 가봐야 알아보지 못할 테니 깨어나면 가자고 했다. 나도 그러마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혼수상태 기간은 길어졌고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병문안은 미루어졌다. 그때 그의 부고가 전해졌다. 그의 영정 사전 앞에서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낙타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주인이 부리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이제 좀 쉬게 되었는데 이리 되어버린 그가 불쌍해서 울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긴 시간을 견디어 왔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던 그가 애처로워 울었다.

 

두 세일즈맨의 죽음을 지켜보며 나는 직장인의 숙명을 연민하게 되었다. 자신의 시간을 송두리째 저당 잡힌 대가로 밥벌이를 하며 평생을 보내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 맞이하고 마는 그들이 측은했다. 병든 몸으로 조직을 나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마지막을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이 가여웠다. 직장인은 무엇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일과 삶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스승 구본형에게 물어 보았다. 그는 시튼의 『동물기』의 일화 하나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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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의 큰 시장 그늘진 구석에 포타 라모라는 나이든 인디언이 앉아 있었다. 그는 그 앞에 20줄의 양파를 매달아놓았다. 시카고에서 온 어떤 미국인이 노인에게 와서 물었다.

양파 한 줄에 얼마요?”

“10센트입니다.”

두 줄은 얼마요?”

“20센트입니다.”

세 줄은 얼마요?”

“30센트

세 줄을 사도 깎아주지 않는군요. 세 줄을 25센트에 주실래요?”

안 됩니다.”

그럼 20줄 전부를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20줄 전부를 팔지 않을 것입니다.”
안 판다니요? 당신은 양파를 팔기 위해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붉은 서라피 모포를 좋아합니다. 나는 햇빛을 사랑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는 페드로와 루이스가 와서 브에노스디아스라고 인사하고, 담배를 피우며 아이들과 곡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기서 친구들을 만나면 즐겁습니다. 이게 바로 내 삶입니다. 그 삶을 살기 위해서 여기 이렇게 하루 종일 앉아 양파를 파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이 양파를 몽땅 다 팔아버린다면 내 하루도 그걸로 끝나고 말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

 

효율우선주의와 금전만능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포타 라모와 같은 직장인이 있을까? 현장에서 만나는 직장인들 중에는 자신의 삶을 남김없이 팔아, 다 먹지도 못하는 밥을 벌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마시멜로 이야기를 맹신한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아껴두면 나중엔 그것들을 더 많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작 뚜껑을 열었을 때는 대부분이 녹아 없어지고 곰팡이 슬어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수 있다. 그러니 마시멜로를 아껴두지 마라. 필요한 시점에 한 개씩 먹어라. 마시멜로의 유통기한을 당신이 어찌 알겠는가?

 

또한 직업을 구할 때는 삶과 공존할 수 있는 직업을 구하라.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다. 일만 좇다 정작 중요한 것을 잃는 인생은 후회만 남을 뿐이다. 구본형은 위대한 직업은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위대한 직업은 삶을 파괴하지 않는다. 직업을 통해 삶이 빛나게 된다. 당신의 직업은 어떠한가? 위대한 직업인가, 위험한 직업인가?

 

이미지 출처 http://www.erainbow.co.kr/letter/cartoon_view.asp?num=36&page=1  

 

* 필자 재키제동은 15년 간의 직장 경력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경력 계발에 대해 조언하는 커리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클린 캐네디의 삶의 주도성을 기반으로 김제동식 유머를 곁들인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을 담아 재키제동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블로그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http://blog.naver.com/jacki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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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3 17:16:02 *.37.122.77

가슴 아픈 이야기 입니다.

준비 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는 직장인의 운명이라니...

 

누님의 일이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로군요.

컨설턴트의 현실적인 조언이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현장에서 누님만의 이야기가 풀려 나오겠지요.

화팅!

 

퇴직 후엔 건강검진이 필수 사항이 되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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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4 14:50:29 *.252.144.139

경수가 야간근무 안 하는 보직으로 옮겨서 다행이다.

건강 잘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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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4 10:25:55 *.216.38.13

"위대한 직업은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위대한 직업은 삶을 파괴하지 않는다. 직업을 통해 삶이 빛나게 된다. 당신의 직업은 어떠한가? 위대한 직업인가, 위험한 직업인가?..."

 

쾅- 하고 와닿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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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4 14:51:22 *.252.144.139

감사해요, 선배님.

선배님 글도 열심히 읽고 있답니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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