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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4일 06시 11분 등록

떠나고 싶은 날 

 

 새벽 3. 눈을 뜬다. 과제 제출 날이 되면, 잠이 오질 않는다. 그렇다고 저녁 늦게 과제를 하기에는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다. 또 다른 생체시간이 생긴 것일까? 전날 흩어 놓은 단어들을 맞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몸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다시 들어가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곤히 자는 아내를 깨우기 싫어서 두 아들이 자는 곳으로 간다. 가운데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이불을 덮는다.

 

 아이들이 뒤척일 때마다 잠에게 깬다. 생각을 한다.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나갈지 고민을 하거나 꿈을 꾼다. 몸은 따뜻하고 편안한데, 정신은 허둥지둥 대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다시 눈을 뜨고는 책상 위에 앉는다. 꺼진 노트북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는다. 완성하지 못한 글이 뜰 것이다. 결국 저 글은 완성이 될까? 나는 이걸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이 과연 사람들에게 읽힐 것인가?

 

 과제를 제출하고 나서 지하철을 탄다. 앉자마자 눈을 감는다. 1시간 동안 선잠을 자고 눈을 뜨면 환승역에 도착한다. 일어나서 걸어간다. 그제서야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오늘도 지하철은 한강을 지나간다. 지하철이 다리 위에 올라서자 웅장한 소리가 들린다. 지하철도 잠시 동안 여유를 찾는다.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들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다시 살아난 느낌이다.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내 삶을 누군가 축복해주는 것 같다.

 

 지금 이대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 다시 지하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지상으로 쭉 달려가고 싶다. 끝없이 줄지어선 차들도, 화려한 조명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텅 빈 자연이 있는 곳이다. 행복해질 수 있고, 내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려 하는지 명상할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곳에서 침묵하고 가벼워져서 하늘에 떠 있고 싶다. 이번 주에 읽었던 <나만 위로할 것> 책에서 여행이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여행은 단순히 풍경과 문화를 접하는 게 아녜요. 여행은 인생의 커다란 한 부분이에요. 인생을 행복하게, 윤기 나게 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여행은 내 눈동자이고 피부이고 손가락이에요. 그리고, 여행은 즐거운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던 내 인생의 수레바퀴를 좀 더 풍요롭게 굴러가게 해주는 추억들이에요. (나만 위로할 것, 224p)

 

 기차는 지하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불안과 긴장 속에서 나의 수레바퀴를 돌려야 한다. 하지만, 지난 날 여행의 추억이 나를 다시 꿈꾸게 한다. 터키 야간 버스를 타면서 아침 햇살을 맞이한 순간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아름다운 노을 빛에 물들어 간 순간들이 내 인생의 수레바퀴를 튼튼하게 만들어 준다. 언젠가 다시 자유롭게 날아오를 날을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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