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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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내 집은 처음이지?”
노원은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김이상은 자신의 앞에 놓인 하얀 슬리퍼를 보았다. 정확히는 슬리퍼가 비치는 바닥을 보았다. 무엇인가 당연한 말을 해야 하는데 하기가 싫었다. 마블링이다. 마블링이라니… 이거 진짜 대리석이야? 왜 집 내장재로 이 따위를 써?
“집에 아무도 없어?”
“아, 혼자 살아. 나도 누군가를 들인 건 네가 처음이다.”
노원은 이렇게 말하고 뭐가 우스운지 씨익 웃었다.
“야 섬뜩해. 넌 꼭 그런 식으로 웃더라?”
김이상은 노원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쳤다.
“야, 너 가오 세워준 게 누군데 섭섭하게스리…”
“그래서 보답하러 온 거 아냐. 부탁할 거나 어서 말해봐.”
“…저녁 먹었어?”
“… …”
김이 대답하지 않자 노원은 부엌으로 향했다. 원이 무언가를 준비하는 동안 김은 거실을 두리번거렸다.
바닥의 양탄자가 발을 깊게 감쌌다.
무늬가 대칭이 아니다.
수제.
샹들리에.
빛 반사각도.
유리가 아니다. 크리스탈.
그리고 그림!
김은 난로 위에 걸린 스크린만한 그림을 노려보았다.
입을 앙 다문 해골 같은 형상의 얼굴.
그 앞에는 그림을 닮은 실제 사이즈의 두상 조각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눈을 감거나 뜬 모습. 김은 눈을 감은 여인의 두상 앞에 다가섰다. 잘 다듬어진 속눈썹.
바스키아 같은데... 진품인가?
“너네 아버지 뭐 하시냐?”
김이상은 결국 부엌문을 열었다. 이제 막 고기에 붓으로 소스를 바르던 노원은 빙긋 웃었다.
“죽었어.”
그리곤 오븐의 문을 열어 재운 고기를 밀어 넣었다. 김이상은 고기의 형체가 희한하다고 여겼지만 언급하진 않았다.
“뭐 하셨는데?”
“이것 저것.”
“사업하셨어?”
“아니.”
“그럼 물려받은 거냐?”
“뭐가 궁금한 건데?”
“…그냥… 이 정도로 먹고 살려면 뭘 해서 돈을 버나 해서.”
“이 정도?”
“자산 규모는 얼마나 되니?”
“… …”
노원은 오븐 장갑을 낀 채로 팔짱을 꼈다.
“자산이랄 것도 없는데. 그냥 근근이 먹고 사는 정도야.”
뭐라고? 김이상은 겨우 웃었다. 노원은 진지해 보였다. 김은 돌아서는 노원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니까 너는 이 집이 근근이 먹고 사는 수준이라 이거지? 이 집 시세로 하면 – “
“집이 큰 건 다 이유가 있어서고.”
“왜?”
“아, 이 집이 담이 가장 높더라고.”
노원은 김이상의 뒤로 찬장을 열어 샐러드볼 꺼냈다. 그리고 귓속말로 김에게 나직이 말했다.
“전에 전대통령이 살았던 집이래나. 그래서 샀어. 보안도 잘되고 이런 집이 –“
“네가 샀다고?”
“응.”
“네가 네 돈으로 샀다고?”
“응.”
“돈이 어디서 났는데?”
김이상은 눈을 희번뜩 떴다. 설마… 너, 돈 버는 재주도 있는 그런 놈이야? 정말 그런 거냐? 노원은 순진한 눈망울을 끔벅거렸다.
“너 돈 필요하니?”
노원은 샐러드볼에서 배추 한 잎을 꺼내 김의 입에 물렸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많이.”
“글쎄, 얼마나 가능한데?”
노원은 소리 내어 웃었다.
“야, 너 고서연이랑 잘 안됐냐?”
“… …”
“그 애가 돈이 더 좋대?”
“… …”
“잊어.” 노원이 말했다. “잊어 이 자식아. 그런 요망한 년은. 실속 없어.” 김이상은 침묵했다. 오븐이 열을 내고 풍미가 공기를 돌았다. 노원은 김을 한 번 쳐다보고 요리를 꺼내들었다. 그리곤 능숙한 솜씨로 고기를 얇게 베어 접시에 담았다. 김이 칼을 따라 피어올랐다.
“일단 먹자.”
“그게 뭔데…”
“Guess what.”
노원은 진심으로 즐거운 듯 밝게 웃었다.
“이제 네가 내 부탁을 들어줄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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