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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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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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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30일 03시 58분 등록

새, 좋아하세요? 전 조금 무섭습니다. 덩치 큰 남자가 새를 무서워한다고 말하려니 창피한 마음도 들지만, 사실입니다. 어쩌면 어렸을 때 보았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새’라는 영화가 한몫을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 아내가 저보다 더 새를 무서워한다는 겁니다. 최소한 ‘그게 뭐가 무섭느냐’는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런 저희 부부에게 작은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비둘기가 집을 지은 것이죠. 에어컨 실외기와 벽 사이의 좁은 공간이 아늑했던지 암수 한 쌍이 보금자리로 삼아버린 겁니다. 열심히 무언가를 물어 나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제법 그럴싸한 둥지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을 두드려 새를 쫓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던 저희 부부에겐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을 무릅쓰고 둥지를 고스란히 들어다가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빌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비둘기 부부는 마음에 드는 자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지,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둥지가 사라진 것을 의식해서인지 이번엔 더욱 단단하고 촘촘하게 엮어나갔습니다. 사실 한번에 가지 하나씩을 물어 날라 꼼꼼히 집을 짓는 그들의 노력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둘기와의 동거를 허락하겠다는 마음이 든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문제의 그 날, 다시 한번 둥지를 걷어낼 결심을 굳힌 저는 세차게 창문을 두드려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비장하게 베란다로 나섰지요. 혹시 새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기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조심스레 실외기 뒤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둥지 안에는 비둘기 알이 둘씩이나 그림처럼 예쁘게 놓여있었습니다. 극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단순한 나뭇가지 뭉치에 불과하던 둥지는 앞으로 태어날 새끼들과 비둘기 부부의 소중한 보금자리로 탈바꿈했습니다.

성실한 노력은 그 자체로 숭고합니다. 날개가 부러질 듯 수없이 오가며 나뭇가지를 물어 나른 비둘기들의 수고가 그렇지요. 그 땀의 결실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아름답습니다.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빚어진 새들의 둥지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의미가 더해지면 지루한 노동과 그에 따른 결실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합니다. 감동이 더해지는 것이지요. 새하얀 알이 더해지는 순간 평범한 비둘기 둥지가 ‘이야기’를 갖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뽀얀 비둘기의 알처럼 남루한 일상을 비범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우리는 ‘꿈’이라 부르는 것이겠지요.

알을 지키기 위해 비둘기 부부는 필사적입니다. 빨래라도 널기 위해 베란다로 나가면 혼비백산해서 도망치지만 그리 멀지 않은 하늘을 불안한 듯 날다가 쏜살같이 되돌아옵니다. 목숨을 걸고 알들을 지켜내려는 비둘기 부부의 모습이 어렵게 찾은 꿈을 다시 잃어버리지 말라고 저에게 이르는 가르침 같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합니다.

아내와 저의 비둘기 추방 작전은 일단 보류입니다. 비둘기 가족이 저희 베란다보다 더 좋은 보금자리를 발견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resize_DSC01844.JPG


IP *.88.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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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11.09.21 10:25:19 *.158.222.19
우와 멋진 글.. 가슴이 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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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2011.09.23 13:46:51 *.7.108.121

비둘기 알이 이렇게 생겼군요.
잘하면 새끼 비둘기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루한 노동의 결실에 의미가 결합되면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한다는 종윤님의 글이
사진 속의 생명을 품고 있는 뽀얀 비둘기알의 그 자체로 완전한 모습과 겹쳐 잔잔한 울림을 주네요.

좋은 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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