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완공예정인 숲학교에는 주차장을 포함하여 크게 여섯 가지 하드웨어가 구축될 예정입니다. 숲 가장자리 전망이 가장 빼어난 자리에는 숲학교와 카페를, 숲의 향기와 소리를 가득 느낄 수 있는 자리에는 농산촌체험관을, 체험관 주변에는 발효장독대를, 체험관과 숲학교를 잇는 숲길에는 숲생태탐방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탐방로 주변으로는 숲에서 캠핑의 맛을 누릴 수 있는 캠핑장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우리는 이 공간 전체를 ‘여우숲’이라 부를 예정입니다.

어떤 공간을 조성할 때 하드웨어 자체가 갖는 힘도 대단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소프트웨어입니다. 이 두 가지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과 소프트웨어가 정말 훌륭하다면 도모하는 바는 움막 같은 공간에서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짧은 나의 견해로는 대부분의 농∙산촌은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한 하드웨어인 곳이 많습니다. 농촌과 산촌이 빚어내는 경관도 그렇고, 오랫동안 지켜온 정주생활의 역상성과 문화도 그렇습니다. 또한 들과 산에는 도시사람들이 백화점에서 돈을 주고 사먹기도 어려운 아주 건강하고 싱싱한 나물과 열매가 지천인 곳이 많습니다. 예컨대 이 숲에는 요즘 한국의 바나나라 불리는 으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밤나무에서는 새벽마다 툭툭 밤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도토리 역시 묵을 쒀 먹을 수 있는 귀한 자연식품입니다. 조금 더 있으면 야생버섯과 토종 꿀을 얻게 되겠지요.

농∙산촌에 부족한 것은 이러한 천혜의 자원을 발굴하고 정렬해서 상품과 서비스로 바꿔낼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진 사람, 도시 사람들을 불러들여 그것을 나누며 체험하게 할 프로그램과 운영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식들 키워 모두 도시로 보내버린 농∙산촌은 이제 젊은 인력이 없고, 이 공동화 현상은 이미 농∙산촌의 깊은 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마을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고향을 지키겠다고 도시의 직장을 버리고 들어온 삼십 대 목수 형제 둘을 빼면 이곳에서는 내가 막내입니다. 다행한 것은 그래도 비교적 오십 대들이 여럿 있는 마을이라는 점입니다.

나는 이 오십 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칠십 대 이상 어른들의 귀하고 오래된 경험 자산을 창조적으로 이어받고 천혜의 자연자원과 자신들의 농업전문성을 상품과 서비스로 전환해낼 핵심 세대가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여우숲 프로젝트는 그래서 요즘 교육집중주간을 선포했습니다. 각종 체험시설과 교육장소인 하드웨어가 완성되어 도시 사람들을 불러오기 전에, 그것을 운영할 사람의 역량을 키우고 싶어서입니다.

이번에는 들나물과 산나물에 대한 교육을 1박2일간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들나물 산나물 전문가를 모시고, 마을에 방송을 해서 원하시는 분 누구나 강의를 들으실 수 있게 했습니다. 강의가 진행되는 내내 나는 참석자들의 표정과 반응에 주목했습니다. 도시에서 참석한 사람과 마을사람 모두 잔잔한 감동을 얻었습니다. 여든 살에 가까운 노인들부터 도시에서 갓 이사온 새댁까지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표정이 그토록 진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름 모르고 뜯어먹던 나물의 이름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가는 것, 그저 잡초인 줄 알았던 풀도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겨레의 풀이라는 점까지 당신들의 경험을 한 차원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공부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숲을 거닐다가 으름덩굴에 가득 달린 으름을 따먹으면서 도시인들은 신기함에 열광했고, 마을 분들은 오래된 추억을 되살리는 즐거움도 맛보았습니다. 나는 장차 여우숲이 담보할 살아있는, 차원이 다른 공부의 가치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