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지깽이
- 조회 수 559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신이라도 그대를 이기려면 교활한 망나니가 되어야 할꺼야. 영악하고 치밀한 사기꾼인 그대, 그대는 고향에서도 마음속 깊이 품은 계략과 속임수를 멈추지 않겠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딧세우스에게 이 전쟁의 스폰서였던 아테나 여신이 해준 칭찬의 말입니다. 여신은 손으로 오딧세우스의 어깨를 툭툭치며 다장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지요.
인류의 역사 속에는 거짓말을 칭찬하고, 그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특별한 매력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호머의 시대였습니다. 찬란한 크레테 문명이 지고, 그리스 본토에는 아카이아인들의 시대가 열렸는데, 예술은 빈약하고 행동은 신속하고 활발한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의 영웅 중의 하나가 바로 오딧세우스였습니다. 아카이아인들은 까닭 없는 살육과 약탈을 자행했고, 거짓말에 능란하고 뻔뻔스러웠습니다. 오딧세우스는 그 극치에 이른 대가였지요. 하는 말마다 것짓말이었고, 배신을 밥먹듯이 했었으니까요. 그리하여 그 시대의 아카이아인들은 오딧세우스를 부러워하고, 시인은 그를 가장 멋진 영웅으로 칭송했습니다. 이상한 시대였지요?
그래요. 이 시대는 신사적이고, 관대하고, 믿을 수 있고, 절제하고,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단순하고 용감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술고래에 거짓말을 하고 살인을 하고 배반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비겁하고 소심하고 나약한 인간이 나쁜 사람이었지요. 최고의 미덕은 용맹이고 무자비한 지능이며, 남자다움이었던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 인들에게 해적질은 생계의 수단이었으니까요.
니체가 나오기 한참 전에 이 미숙한 야만의 시대에 이미 니체주의자들이 그리스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트로이 전쟁은 조직화된 해적들끼리의 약탈과 전쟁과 세력다툼이었던 것이지요. 여기에 그들이 만들어낸 신들까지 편을 갈라 두 패로 나뉘어 쌈박질을 합니다. 이렇게 인류의 문명은 야만과 원시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문명은 원시를 품고 있는 것이지요.
반대로 원시와 야만 속에도 고귀한 것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전사들조차도 가족과 친족에게는 관대하고 자애로웠습니다. 오딧세우스는 아내와 자식의 얼굴과 어깨에 다정스레 입을 맞추었고, 하인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친절했습니다. 트로이 전쟁의 또 하나의 영웅 아가멤논은 하도 눈물이 많아 호메로스는 '그가 울면 바위 위에 시냇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고 노래했을 정도니까요.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우정이 너무 깊어, 우리의 마음이 아플 정도입니다. '모든 나그네와 거지들은 신들이 변장하고 찾아온 것'이기 때문에 아카이아인들은 그들을 친절하게 대했고, 숙식을 제공하고 선물까지 하기도 했지요.
3000년이 지나 우리는 가지가지의 문명들이 혼합된 글로벌 시대에 와 있습니다. 이 시대의 미덕은 무엇일까요? 여전히 거짓말과 배신일까요 ? 시인이 있어 이 시대의 영웅을 칭송한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 신이 있어 다정한 미소로 어깨를 툭치며, 우리 시대의 영웅에게 어떤 말로 칭찬을 할까요 ? 빛나는 햇살이 아름다운 가을 아침, 나는 문득 그것이 궁금합니다.
공지사항 : 10월 14-16일 2박 3일 동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소수의 인원들과 함께 구본형 소장이 직접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여기 링크(http://www.bhgoo.com/zbxe/dream)를 참고하여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257 |
피터 드러커, 완벽의 추구 ![]() | 승완 | 2011.10.25 | 4661 |
1256 |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 | 부지깽이 | 2011.10.21 | 7196 |
1255 | 그러니 모두 꽃을 피우자! | 김용규 | 2011.10.20 | 5177 |
1254 | 그게 나를 위해서였나요? | 문요한 | 2011.10.19 | 4473 |
1253 |
드러커의 학습법 ![]() | 승완 | 2011.10.18 | 4839 |
1252 |
예언가의 죽음 ![]() | 부지깽이 | 2011.10.14 | 6900 |
1251 | 밤 숲에서 실수 혹은 실패라는 놈을 생각하다 [2] | 김용규 | 2011.10.13 | 3437 |
1250 | 왜 내마음을 모를까? | 문요한 | 2011.10.12 | 4760 |
1249 |
만일 내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 승완 | 2011.10.11 | 5937 |
1248 |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은 조언하는 것 ![]() | 부지깽이 | 2011.10.07 | 5016 |
1247 | 농부는 복권을 사지 않는다. | 김용규 | 2011.10.06 | 4060 |
1246 | 나는 이제 인생을 믿기로 했다 [3] | 문요한 | 2011.10.05 | 3592 |
1245 |
정말로 의아한 일 ![]() | 승완 | 2011.10.04 | 4589 |
1244 | 아이야, 미안하다 | 신종윤 | 2011.10.04 | 4253 |
1243 |
신화 경영, 위대한 문명은 원시를 품고 있다 ![]() | 부지깽이 | 2011.09.30 | 5219 |
1242 | 이웃되기의 어려움 [2] | 김용규 | 2011.09.29 | 3311 |
1241 | 이루어질 일은 이루어진다 [17] | 문요한 | 2011.09.28 | 4766 |
1240 |
심신을 고양시키는 책 ![]() | 승완 | 2011.09.27 | 5476 |
» | 오딧세우스 - 시대는 어떤 영웅을 원할까 ? | 부지깽이 | 2011.09.23 | 5596 |
1238 |
차원이 다른 공부 ![]() | 김용규 | 2011.09.22 | 3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