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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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오산방 저 아래 논밭이었던 자리에 도시인들이 전원마을을
만들기 시작한지 3년이 되었습니다. 올해로 완공이 될 모양입니다. 초여름부터 조금씩 입주가 시작되더니 가을 문턱에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입주했습니다. 일부는 도시로부터 이곳으로 아예 삶의 터전을 옮기는 듯 하고, 일부는
주말 별장으로 사용을 하는 듯도 합니다. 조용하던 시골에 어린 아이들 뛰노는 소리도 들리고 사람도 붐비기
시작하는 풍경을 몇 개월째 산 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관심은 숲학교 마당과 숙소에 서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풍경이 저 마을이어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겠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들어서는 마을에 지어진 집이 비록 너무 획일적이고
조밀해서 오래된 풍경에 조화롭게 녹아 들지 못하는 모습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집 한 채 한 채
마다에는 자연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이루고 누리고 싶은 꿈이 담겨 있을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서
집집마다 텃밭도 만들 테고, 나무와 들풀도 심어가게 될 테니 이웃들이 시간 속에 땀을 녹여내면서 점점
더 자연스러운 경관이 만들어지겠구나 기대도 갖게 됩니다.
한편 숲 주변에 농사짓고 숲의 가르침을 들어 세상과 나누며
고요하고 충만한 삶을 살려고 들어온 내 입장에서는 새로 들어서는 이웃들이 자연을 아끼고 소박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그 이웃들이 도시에서 쌓은 재능이 새 활력이 필요한 기존 우리마을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나는 그런 기대를 함께 가꿀 수 있는 이웃을 사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 전조를 경험했습니다.
문제는 밤이었습니다. 올해
봄 나는 산방으로 오르는 길 입구 밭에 산마늘을 심어놓았습니다. 그 밭 가장자리에는 밭과 함께 사둔
네 그루의 밤나무가 있습니다. 요새 그곳을 지나노라면 후두둑 후두둑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옵니다. 3년 동안 나는 밤을 털지 않았습니다. 소유야 내가 했지만 전부터
이웃들이 밤을 주었던 나무고, 다람쥐나 밭 쥐 같은 생명들도 겨울 양식으로 쓰던 나무인데 그것을 몽땅
털어서 취하는 것이 야박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안개가 자욱한 어느 새벽에 함께 사는 개인 산과
바다가 그 산마늘 밭을 향해 맹렬히 짖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 산마늘 밭을 누비며
밤을 털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마주보면 무안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마루에 선 채로 손으로 마이크를 만들어서
산마늘이 다치니 나가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을 했습니다. 잠시 잠잠하더니 5분쯤 지나자 또 밤을 털기 시작했습니다. 노여워서 한달음에 내려가서
마늘이 심겨진 넓은 밭 이랑에 밤을 놓고 발로 짓이기며 밤을 까고 있는 그들을 제지했습니다. 제지에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태연히 밤을 까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보니 새로 들어선 마을의 60~70대 아주머니 두 분이었습니다. 밭이랑 두 개가 초토화되어
있었습니다. 가을을 맞아 휴면에 들어간 산마늘의 새싹이 상하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언성을 높여 화를
내고 간곡하게 당부도 했습니다. 밤나무도 내가 주인이고 이 밭의 산마늘은 나의 주력 농사이니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마시라 했습니다.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몰라서 그랬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출입 흔적이 확연한 밭 가장자리 두어 곳에 말뚝을 박아 줄을 쳤습니다. 미덥잖아 경고문도 붙여두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그때 그 아주머니가
다시 그 밭을 누비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더 간곡히 부탁을 해보자고 후다닥 차를 몰고 내려가자 뛰듯이
도망쳐서 마을의 어느 집으로 숨어버렸습니다. 화도 나고 슬픈 마음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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