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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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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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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4일 00시 23분 등록

인도의 수도, 뉴델리(New Delhi)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같은 나라라곤 하지만 제가 사는 케랄라(Kerala) 주(州)의 트리반드룸(Trivandrum)에서는 비행기로 다섯 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먼 곳입니다. 어지간한 동남아시아의 나라에 가는 것과 비슷한 거리지요. 두 도시는 그 사이에 놓인 거리만큼이나 서로 달라서 같은 나라라고 부르기가 어색할 지경입니다.

뉴델리 공항에 내려서 우리나라의 분당쯤에 해당하는 구르가온(Gurgaon) 지역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넓은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대형 쇼핑몰과 사무용 건물들의 위용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세련된 디자인과 그 엄청난 규모는 어느 대도시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이곳 사람들에겐 살짝 미안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도’의 모습과는 영 딴판입니다.

그런데 막상 차에서 내려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스며들면 이 거대한 도시의 우울한 속살을 목격하게 됩니다. 도시 구석구석은 가난의 흔적으로 넘쳐납니다. 누더기를 걸치고 다가와 구걸하는 어른들이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비슷한 행색의 아이들과 마주치면 머리 속은 하얗게 백지가 되어버립니다. 엄마가 이리저리 오가며 구걸하는 동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의 흙 바닥에서 발가벗은 채 기다리고 있는 갓난 아이까지 발견하고 보면 금새 눈가가 아려옵니다.

출장 마지막 날,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던 저는 한 아이와 마주쳤습니다. 이제 겨우 두세 살이나 됐음직한 꼬마는 잽싼 걸음으로 제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아이는 몸이 뒤로 젖혀지도록 고개를 들어 저를 올라다 보았습니다. 새까만 얼굴에 주먹만큼이나 크고 하얀 눈동자를 반짝이던 아이는 순식간에 제 다리에 덥석 매달렸습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공격에 저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아이가 바라는 것은 약간의 돈이었을 겁니다. 돈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률 높은 방법을 경험으로 익혔겠지요. 그런데 돈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에는 벌써 낌새를 차리고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모여들어 있었으니까요. 이 아이에게 돈을 주었다가는 주변의 아이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를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땡볕아래서 다리에 매달린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보니 땀 범벅이 됐습니다. 인내는 금새 바닥을 드러냈지요.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아이를 떼어낼 마음으로 팔뚝을 힘껏 잡았습니다. 그 순간,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아이의 팔에서 더위에 녹아 내린 엿가락 같은 끈적한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만큼 허둥지둥 그 자리를 빠져 나왔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그 느낌이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그 끈적한 느낌은 손이 아니라 마음에 남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케랄라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가 인도에서 가장 발전한 주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인도 내에서 유일하게 공산당이 집권하는 케랄라 주에서는 분배에 초점을 맞춘 정책들이 더 지지를 받습니다. 조그만 일이라도 골고루 나눠주고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지가 이곳에는 없습니다. 어설픈 경험으로 철 지난 이념 논쟁에 뛰어들고픈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변변한 쇼핑몰이나 근사한 빌딩 하나 없는 이곳 사람들의 자부심을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살기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더 나은 미래는 어떤 것일까요? 다리를 꼭 끌어안은 채 저를 올려다보던 아이의 미소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다음 번엔 망설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아이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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