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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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두 눈이 멀쩡한 친구들에게 그들이 보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실험을 해봅니다. 얼마 전, 친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마침 숲속을 오랫동안 산책하고 돌아온 참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별거 없어.” 내가 그런 대답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눈이 멀쩡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 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는 의아해합니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속을 거닐면서도 눈에 띄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나는 앞을 볼 수 없기에 다만 촉감만으로 흥미로운 일들을 수백 가지나 찾아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 나 역시 의아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녀가 어찌 이렇게 모든 것에 감탄하고, 그것들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 나오는 헬렌 켈러의 묘사를 읽으면 그 장면이 마치 사진을 보듯이 그려졌습니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글에서 그랬습니다.
그녀의 책이 출간됐을 때 어떤 사람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시각과 청각 이미지로 가득한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지적했다고 합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누군가 대신 쓴 게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색안경을 끼고 보니, 의심이 진짜 맞는 것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런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내가 나이애가라 폭포가 준 놀라움과 아름다움에 감동 받았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긴다. 그들은 묻곤 한다. ‘당신은 지금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음악 운운하는데 대체 그 모두가 당신에게 무슨 의미란 말입니까? 솔직히 일렁이는 파도를 볼 수 있는 것도 으르렁거리는 포효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요? 대체 당신이 무엇을 알 수 있다는 건지.’ 보고 또 들으면 다 안 것인가, 다 설명한 것인가. 사랑이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이고 또 선함이란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이나 나이애가라, 이 대자연의 그러함을 설명하기 어려운 건 피차 마찬가지 아닐까.”
정말로 의아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보고 들을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이 헬렌처럼 자신과 세상을 깊이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 말입니다. 말할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이 그녀처럼 생생하게 묘사 할 수 없다는 점 역시 의아한 일입니다. 삼중고(三重苦)를 겪지 않은 내가 그녀만큼 삶에 감탄하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의아한 일입니다.
“그저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데, 눈으로 직접 보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그런데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거의 보지 못하더군요. 세상을 가득 채운 색채와 율동의 파노라마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갖지 못한 것만 갈망하는 그런 존재가 아마 인간일 겁니다.”
* 헬렌 켈러, 이창식, 박에스더 공역, 산해, 2005년
*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헬렌 켈러가 쓴 두 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그녀가 50대 초반에 쓴 ‘내가 만일 사흘 동안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Three Days to See)’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생 시절인 20대 초반에 기록한 ‘내가 살아온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20대와 중년기의 헬렌 켈러를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내가 만일 사흘 동안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을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읽어보니 그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명문입니다. 모든 문장에 밑줄을 치고 싶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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