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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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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6일 00시 59분 등록

서울에서 회사 경영할 때 알게 된 한 다국적 기업의 마케팅 이사가 그랬습니다. 많은 농부들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람들이라고. 그는 십 수 년간 다국적 기업의 한국 지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던 사람인데, 그 경험을 살려 자기 사업을 해보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려고 했던 사업 영역은 지금은 대단히 각광받고 있는 유기농산물 판매 사업이었습니다. 일년 반 동안 그는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을 만났습니다. 자기 회사에 유기 농산물을 공급할 농민 생산자를 조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농민 공급자를 조직하는 데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전국 각지의 유기농산물 생산자들을 찾아 다녔는데 설득이 쉽지 않았습니다. 유기농을 하는 농부들에게 지금까지 판매해왔던 가격대비 20% 이상 높은 가격을 보장해 주겠다는 카드를 제시했지만 이상하게도 농부들은 그의 제안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농민들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 의사결정 체계를 가졌다고 결론 내렸고, 추구했던 사업을 접었다고 했습니다.

 

이만원에 팔 수 있는 배추를 이만사천원에 사주겠다는데, 그가 만난 농부들은 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아직 얼치기지만 농부가 되고 또 주변의 자존감 높은 농부들을 만나고 나서야 나는 그 까닭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런 것입니다. 누군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숲으로 찾아와서 당신의 숲과 농토를 팔아라! 주변 시세의 두 배 내지 세 배를 주겠다!!’ 라고 제안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요? 나는 결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먼저 이 숲과 농토를 단순히 돈으로만 환산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게 이 숲과 농토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이 숲과 농토를 사들여 무엇을 하려는 사람인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이 강한 농부들은 농사를 단순히 돈만을 위해 짓지 않습니다. 우리 마을의 진정한 농부들은 절대 복권을 사지 않습니다. 땅 일구고 씨 뿌려 싹이 트는 광경을 직접 바라보는 농부, 오뉴월 뙤약볕의 뜨거운 통증에 온 몸이 흘리는 땀으로 화답한 뒤에야 오직 하늘이 허락한 만큼의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삶의 진실임을 아는 농부, 자신의 농사가 누군가의 삶에 바쳐지는 과정임을 아는 농부, 그들에게 복권은 너무도 명백한 거짓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에게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 것은 복권이 아니라 차라리 보험을 드는 것과 같습니다.

 

자연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존감 가득한 삶을 살려 한다면 복권에 대한 충동을 버리고 오셔야 할 것입니다. 호도나무는 7년이 걸려야 첫 열매를 맺습니다. 인삼은 5년이 걸려야 제대로 약효를 냅니다. 세월을 심는 사람들이 농부입니다. 자연에 들어 살고자 한다면 그렇게 세월을 품는 마음을 가지고 오셔야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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