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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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실수 혹은 실패가 두려워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알고 있는 어떤 이는 그런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결혼생활과 가까운 지인의 결혼생활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는데 그 거울에 자신의 미래를 자주 비춰보게
된다고 합니다. 어떤 다른 이는 자연에 들어 사는 꿈을 가슴에 품었으면서도 수년 동안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할 뿐 여태 살고 싶지 않은 도시에서 늘 불만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주저함 역시 귀농 혹은
귀촌이라는 낯선 삶이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임을 나는 압니다.
이 숲은 지금 막 단풍이 들고 있습니다. 최근 며칠 밤 숲을 거닐었습니다. 보름 전후의 달은 숲의 밤을 미치도록
아름답게 적셔놓고 있습니다. 그 고요, 그 맑은 어둠이 멀리
부엉이 울음과 섞이면 숲을 걷는 내 가슴은 벌렁거립니다. 아, 어지러울
만큼 충만한 순간입니다. 어느새 떨어져 숲의 대지를 덮은 산벚나무 잎을 밟고 느릿한 걸음을 또 놓아봅니다. 메마르지 않아서 일까, 이른 낙엽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달 숲에 흐르는 고요를 때 이른 낙엽은 차마 헤치지 못합니다. 이
순간 달빛에 몸을 드러내고 있는 벗은 나무들의 가지를 나는 감히 아름다운 여인의 몸에 견줄 수가 없습니다. 번뇌가
일으키는 아우성조차 그저 몸으로 품고 새겨 나이테 하나를 더한 저 가지들의 성장은 차라리 숙연한 아름다움입니다.
밤 숲을 거닐고 있지만 나는 저 산벚나무의 성장이 여름내
감내한 상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동쪽으로 뻗었던 가지는 느티나무 그늘에 갇혀 시들었고 남으로 뻗었던
가지 한 두 개는 바람에 부러져 이미 오래 전 바닥을 뒹굴다가 썩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그저 서쪽
높다란 경사지에 참나무 틈새로 뻗었던 가지들만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내년에는 더 부지런히 자라야만 저곳에라도
하늘을 열고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실수 혹은 실패라는 놈이 주는 두려움에 갇혀
발을 딛지 못할 때, 나무들은 주저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이 열고 싶은 하늘을 바라보며 오직 지금 이순간을 살아낼 뿐입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뻗어내는
새 가지가 그렇게도 닿고 싶은 하늘에 닿을지 닿지 못할지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산벚나무가 가지 몇 개를
잃으며 나이테 하나를 더하듯 뻗은 가지들 중에 겨우 한 두 개만이 옹색하게 하늘을 연다고 해도, 혹은
그마저도 이루지 못하는 해가 있다고 해도 그들은 주저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잃어버리는 가지들이 있고, 그것이 발 아래로 떨어져
썩어져야, 그래야 비로소 다시 그것이 힘이 되어 더 단단하고 힘찬 줄기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 본래 실수이거나 실패라는 놈은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삶의 일부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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