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지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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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볼 수 없다는 것, 그러나 필연적으로 그 알 수 없음에 다가 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인간에게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했지요. 오래된 고대에는 미래란 한 때 운명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정해진 운명'이 무엇인지 신에게 물을 수 밖에 없었지요. 르네상스 때에 이르게 되면 그것은 가능성의 영역으로 인식되었으며, 계몽주의를 거쳐 혁명의 시대에 이르게 되면 미래는 인간의 무한함에 대한 슬로건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 미래는 예측이 가능한 기술적 진보에 의해 설계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문명 속의 원시는 여전히 우리의 무의식 속에 남아있어 갈 길을 모를 때 우리는 고대인들처럼 하늘에 길을 묻고 싶어 합니다.
(칼카스)
고대의 예언자들 중에서 트로이 전쟁 중 가장 유명한 그리스 쪽 예언자는 단연 칼카스 Calchas입니다. 그는 새가 나는 모습을 보고 점을 쳐 맞히는데 절묘했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뱀 한 마리가 제단 밑에서 기어 나와 새끼새 여덟마리를 잡아먹고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로 어미새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9년이 지나 10년 째에 트로이가 함락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한 사람입니다.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려면 반드시 아킬레우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예언한 것도 바로 이 사람이며, 트로이의 목마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칼카스였습니다.
(새를 잡아 먹는 뱀)
심지어 그는 자신의 죽음도 예언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예언자를 만나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지요. 그의 죽음과 얽힌 재미있는 예언 내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유명한 예언가 테이레시아스의 손자인 몹소스와 서로 내기를 하였습니다. 근처에 통통한 새끼 밴 암퇘지를 보자 몹소스는 칼카스에게 '언제 새끼를 몇 마리 낳게 될까요"' 라고 물었지요. 칼카스는 여덟마리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몹소스는 아홉 마리의 새끼를 낳을 것이고 그 아홉 마리는 다 수컷이며, 다음 날 여섯시에 낳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결국 몹소스가 맞았답니다. 내기에 진 칼카스는 슬픔에 잠겨 죽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웃음이 그를 죽였다고도 합니다. 칼카스는 아폴론의 과수원에 포도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다른 예언자가 '결코 그 포도나무에서 딴 포도로 담근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칼카스는 그 예언을 비웃었다지요. 포도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자, 칼카스는 그 포도 송이를 따서 포도주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웃 사람들과 그 예언자를 초대했지요. 칼카스가 포도주에 입을 대어 마시려고 하자, 그 예언자는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답니다. 칼카스는 웃기 시작했지요. 웃음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칼카스는 웃다가 숨이 막혀 결국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죽고 말았답니다. 예언의 실패는 예언자에게는 참을 수 없는 종말을 의미합니다.
자기 경영은 정상에서 잘 내려오는 것입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과정도 중요한 자기 경영의 주제지만, 절정의 자리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는 것 또한 인간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오르고 내려오는 삶의 추이들을 기쁨과 슬픔으로 온 몸으로 겪어 내되, 내려옴 또한 노을처럼 고귀한 행동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좋은 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의 끝, 그것이 클라이맥스에 못지않게 늘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이야기의 끝에 만족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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