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 조회 수 3417
- 댓글 수 2
- 추천 수 0
상강이 지났습니다. 이
숲에도 몇 차례 서리가 내렸습니다. 자연스레 대부분의 풀들이 속절없이 스러지고 있습니다. 나뭇잎들 역시 본래 제 빛깔로 물들어 탈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름철에
충분히 키를 키운 어떤 나무들은 이미 나목이 되어 첫눈을 맞을 준비도 끝내 놓았습니다. 이 즈음은 자연스레
숲 언저리에 핀 꽃향유나 까실쑥부쟁이, 개쑥부쟁이, 산국처럼
오직 늦된 녀석들의 꽃만이 찬란하여 사람과 날벌레들의 발길과 눈길을 사로잡는 시절입니다.
숲의 어떠한 생명도 겨울의 출입문인 입동을 앞두고 내리는
이 즈음의 서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느낍니다. 뱀도
동면의 준비를 미리 끝내어 어디론가 찾아들었고, 겨울을 견딜 양식을 이미 구해놓은 꿀벌들도 더는 바깥
출입을 하지 않습니다. 한 해를 살며 싹 틔우고 자라고 이 즈음을 겨냥해 꽃피웠던 수많은 들풀들도 이미
씨앗을 퍼트렸거나 퍼트릴 준비를 끝낸 시점이 이 즈음입니다.
냉이나 지칭개처럼 두 해를 사는 녀석들은 이미 싹을 틔워놓은
채로 겨울을 견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한편 쑥처럼 한 해를 살고 스러졌다가 다시 그 자리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며 여러 해를 사는 풀들 역시 어느새 새순을 돋우어 차디찬 겨울을 견뎌낼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렇게
두 해나 여러 해를 사는 풀들을 볼 때 마다 나는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저들이 하필 겨울을 앞두고
싹을 틔워 혹한을 견디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라리 보다 안전하게 온화한 봄날에 싹을 틔워 자라고 꽃피우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씨앗의 상태로 겨울을 건너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저들은
모르는 것일까?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377 | 삶의 여정: 호빗과 함께 돌아본 한 해 [1] | 어니언 | 2024.12.26 | 337 |
4376 | [수요편지] 능력의 범위 | 불씨 | 2025.01.08 | 403 |
4375 | [수요편지] 삶과 죽음, 그 사이 [1] | 불씨 | 2025.02.19 | 407 |
4374 | [수요편지] 발심 [2] | 불씨 | 2024.12.18 | 431 |
4373 | 엄마, 자신, 균형 [1] | 어니언 | 2024.12.05 | 453 |
4372 | [목요편지] 별이 가득한 축복의 밤 [3] | 어니언 | 2024.12.19 | 503 |
4371 | [목요편지] 육아의 쓸모 [2] | 어니언 | 2024.10.24 | 564 |
4370 | [수요편지] 언성 히어로 | 불씨 | 2024.10.30 | 664 |
4369 | [목요편지] 두 개의 시선 [1] | 어니언 | 2024.09.05 | 675 |
4368 | [수요편지] 내려놓아야 할 것들 [1] | 불씨 | 2024.10.23 | 692 |
4367 | [내 삶의 단어장] 크리스마스 씰,을 살 수 있나요? [1] | 에움길~ | 2024.08.20 | 696 |
4366 | 가족이 된다는 것 | 어니언 | 2024.10.31 | 698 |
4365 | [수요편지] 타르 한 통에 들어간 꿀 한 숟가락 | 불씨 | 2024.09.11 | 705 |
4364 | [수요편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1] | 불씨 | 2024.08.28 | 709 |
4363 | [수요편지] 레거시의 이유, 뉴페이스의 이유 | 불씨 | 2024.10.02 | 716 |
4362 | 관계라는 불씨 [2] | 어니언 | 2024.12.12 | 716 |
4361 | [목요편지] 장막을 들춰보면 | 어니언 | 2024.08.22 | 730 |
4360 | [수요편지] 문제의 정의 [1] | 불씨 | 2024.08.21 | 737 |
4359 | 며느리 개구리도 행복한 명절 | 어니언 | 2024.09.12 | 744 |
4358 | [수요편지] 행복 = 고통의 결핍? | 불씨 | 2024.07.10 | 7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