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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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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1일 04시 10분 등록

나는 소고기를 좋아해.”

 

김이 말했다.

 

정말 맛있어. 나는 정말 소고기를 좋아해. 그 중 꽃살, 꽃살, 꽃살!!! 입에서 살살 녹지. 그 마블링하며! 내가 꽃살을 고등학교 선배가 사줘서 처음 먹어봤어. 돈 많은 선배였는데그 엄마가 모피 코트에 아우디 끌었었지. 양조장 하던 집이었는데 그래서 교수집 애들보다 소탈하기도 했고. 그 선배가 그러는 거야. 꽃살 맛있다고 꽃살 시키라고. 그리곤 마구 시켜주는데진짜 맛있더라.

 

그리고 난 스테이크도 좋다. 굽기는 딱 미디엄-레어로. 절대 레어-미디엄이라고 하면 안되는 거 알지? 미디엄이라고 먼저 말해야 하는 거 알지? 그게 굽기가 55도씨에서 60도 정도로 굽는 거잖아? 그렇지? 난 그거 너무 좋아해. 가끔 이탈리안 레스토랑 같은데 가면 말야, 난 그게 너무 시키고 싶어. 그치만 비싸잖아? 특히 여자들 데리고 가면 돈은 내가 다 내야되는데 말야. 그런 고기 한 번 사면 너무 출혈이 크잖냐? 난 진짜 그거 일 년에 몇 번 못먹는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그거 좋아하는 거 깨닫기까지가 진짜 오래 걸렸다. 왜일까? 내 속에서 뭣이 그리도 인식을 억제하고 있던 걸까? 순두부찌개라고 하면, 그래. 그냥 한식집이나 분식집에 가서 그냥 시키면 되잖아. Routinely 시켜지잖아? 그러면 나는 순두부찌개를 좋아하는 구나 인식하기가 너무 쉬운데, 인식의 빈도 차이였을까? 모르겠어

 

나 말이야. 아니 우리 부모님 말이야. 우리 엄마. 진짜. 내가 대학 합격했을 때 말이야. 우리 부모님이 진짜 자랑스러워 하셨거든? 나 그 때 진짜 소고기 먹고 싶었다. 부모님이 뭐 먹고 싶냐고 해서, 내가 미쳤는지 소고기 먹고 싶다고 했거든? 그래서 우리 엄마가 정말 소고기 사오셨지. 그런데 엄마가 말야. 너어무 그걸 아까워하시는 거야. 그거 한 근을 사오시는데 한 번도 안사본 걸 사보려니 얼마나 비쌌는지, 그 고깃집이랑 실랑이를 하고 뻔한 동네를 몇 바퀴를 돌아서 할 수 없이 사오신 거였던 거야. 그리곤 기분이 나빠지셨지. 내가 소고기 하나 못사먹이는 구나 하셨던 거겠지. 그리곤 집에 와서 화를 삭히면서 먹어 먹어 많이 먹어둬 이러시는데너무 화가 나더라고. 나 진짜 너무 속상하고 섭섭하더라고.

 

우리집 소고기 못사먹는 집이었던 거야. 우리 집 그 정도도 안되었던 집인거야. 내가 진짜, 엄청 미친 놈이었고 insight가 없던 놈이었던 거지. 너무 화가 나더라. 다음 날로 비상금 털어서 그 고깃값! 다 갚아드렸어. 그리고 생각했어. , 고기. 그래 까짓꺼 그 소고기, 내가 사먹지. 내가 내 돈 내고 사먹어야지. 이 더러운 가난뱅이들에게 내가 얻어먹으려 든 내가 미친 놈이지. 그래서 당장 남은 돈으로 가서 혼자 소고기 사먹었다. 꽃살 시켜서 사먹는데진짜 맛있는거야. 너무 속상한거야. 나 진짜 너어무 비참한거야. 내 출신이란 게. 내 부모라는 게.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더 웃긴 건, 그 고깃값 돈으로 드리니까 좋아하시대? 젠장…”

 

김은 고기를 우걱우걱 삼켰다. 노원은 김의 빈 와인잔에 술을 반 이상 따랐다. “목막힌다, 마셔가면서 먹어.”

 

내가 인격이 거지같은 놈이지, 그렇지? 부모님이 가난한 거 알면 측은해서 더 열심히 돈 벌고 그래서 부모님 고기 사드리고 말야내 앞가림 내가 할 테니 부모님은 저 잊으시라고, 여동생이나 잘 보살피라고. 내가 앞으로 모실거라고 그래야 했던 거냐? 내가? 근데 세상엔 너어무 편한 인간들이 많다. 그냥 그런 걱정이란 게 있어야 할 이유조차 모르는 애들이 태반인데, 나는 왜 그래야 되냐? 넌 내가 세인트 김이 아니라고 나 욕할거냐 어? 내가 죄는 저지르지 않았으되 훌륭하지는 못한 놈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노원은 웃었다.

 

잡소리 말고 임마. 먹어 먹어. 네가 고기 좋아하니까 너무 좋다. 이거 세상에서 제일 비싼 고기야. 없어서 못먹는 거야. 너 이거 중국이나 가야 먹을 수 있다? 그것도 불법으로.”

 

뭔데 그래? 천연기념물이라도 되냐? 아르마딜로 같은거냐? 팬더?”

 

그것보다 더 귀한 거야. 맛있지 않냐?”

 

, 담백하네. 뭐 이상한 고기는 아닌 것 같은데. 에이 괜찮아 난, 비위 강해서 아무거나 잘 먹어.”

 

"야, 너 진짜 마음에 든다, ?"

 

"부탁이라는 게 뭔데 이렇게 잘 먹이고 시작하는 거냐? 겁나니까 빨리 말해봐라."

 

김이상의 재촉에 노원은 깍지 낀 손을 입가로 가져갔다. 아마도 웃고 있는 듯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봐. 정말 잘 이해해야 해.

 

사람들 중에는 살아가기 위해서 약간의 특수성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 가령, 그래. 글루텐. 글루텐이 든 음식을 먹으면 안되는 셀리악 병 환자들이라거나. ,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도 내게는 마찬가지야. 나는 이 고기를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REGNA라는 물질인데. 이 물질이 함유된 고기는 아쉽게도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가 않아. , 직접 사냥을 해야 하는 거야.”

 

사냥이라고?”

 

그래. 지금까지는 내가 사냥을 해왔어.”

 

그럼이젠 내가 대신 사냥해 주면 되는거야?”

 

그렇지. 그러면 아주 고맙겠어.”

 

“… …”

 

김이상은 입안의 고기를 천천히 음미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고기람?

 

천연 기념물이라면 잡기가 쉽지가 않을텐데 REGNA가 뭔가 하는 물질은 화학적으로 합성은 안되니? 비타민제처럼넌 천재니까 그런 거야 쉬울텐데.”

 

노원은 짧게 웃었다.

 

사냥에 핵심이 있어. 사냥. REGNA는 사냥을 한 개체에게서만 획득되거든.”

 

“REGNA, REGNA. 배운 기억이 없는데… 거꾸로 하면 ANGER?”

 

“… …”

 

“… (ANGER)를 사냥해 달라고?”

 

아니, 그저 합성어야. Alanine, Asparagine, Glycine – “

 

“아이 씨, 이거 도대체 뭐야. 나한테 뭘 먹인거지?”

 

김은 포크를 탕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노원은 김의 태도가 못마땅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

 

인육이야.”

 

장난할 기분 아냐.”

 

그러나 순간, 김이상은 거실에 늘어서 있던 두상들을 생각했다. 설마진짠가? 미식미식 위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노원은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자, 큰 소세지 무더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김은 용케 그 끝에 달린 손가락 5개를 알아 보았다.

 

아직 많아.”

 

김이상은 먹은 그대로 접시 위로 게워내었다.

 

“로마식이네. 게워내고 또 먹게.”

 

노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남이 해준 요리를 그렇게 토하면 -

 

못해, 난 못한다고! 나한테 살인을 하란 거야?”

 

김은 양변기를 잡고 거의 울듯이 소리쳤다. 노원을 팔짱을 낀 자세로 화장실 벽에 기대 섰다.

 

계약과 다른데? 그럼 파기되는 건가, 이 계약?”

 

“… 제발 다른 걸 부탁할 순 없어?”

 

노예 계약이 다 그렇지예전부터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는 노예는 죽거나 그랬었지 아마?”

 

김은 흐느낌을 멈췄다. 설마, 나도 죽이겠다는 건가?

 

왜 인육을 먹는 거야?”

 

맛있어.”

 

다른 고기도 많잖아?”

 

넌 특히 소고기를 좋아하잖아.”

 

하지만 소고기는 인륜에 어긋나지 않아!”

 

소도 죽고 싶어서 죽는 건 아니지. 포식자 피라미드일 뿐이야. 나는 순수하게 생존하기 위한 하나의 취향으로서 인육을 먹는 거라고.”

 

이게 이유냐? 네가 직접 논문을 발표하지 못하는 이유가! 너의 이 악취미 때문에?”

 

말 조심해. 악취미라니내 요리는 예술이야.”

 

어떻게 살인을 저질러왔지? 법망은 어떻게 빠져나갔고?”

 

이제 할 마음이 생긴 거야?

노원의 말에 김은 그대로 무릎을 꿇어 노원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것 말고도 시킬 일은 많을 거야. 나는 실수도 많고분명히 잡힐 거라고!”

 

김의 절규에 노원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 …”

 

김은 얼떨결에 살아난 사람처럼 안도했다. 아니, 이건 전략이다. 이 천재 자식의 전략. 사다리 전술! 가장 실현하기 어려운 바를 먼저 제시한 다음, 차선의 제안은 거부하지 못하게 만드는... 김은 노원의 다음 말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럼 고기 손질은 네가 해라. 그거라도 수고를 좀 덜어야지.”

 

"... ..."

 

"왜, 싫어?"

 

“…그래. 그거라면.”

 

저기 지하에도 하나 있으니까. 손질해봐.”

 

“… …”

 

김은 다시 변기통을 움켜 잡았다. 노원은 김을 발로 걷어찼다.

 

엄살 피우지 마. 오늘 중으로 해놓도록 해. 고기는 금방 상하니까.”

 

어떻게 하는데?”

 

.”

 

어떻게 잘??”

 

연장으로. 관절을 해체해.”

 

노원은 거실로 나가 TV를 틀었다. 마침 한 여대생의 실종 뉴스가 방송되었다. "재미 없게... 이 시간엔 드라마를 안해." 살인자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하품을 크게 했다.

 

모르겠으면 구글 찾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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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4 17:55:55 *.43.131.14

방금 컵라면 먹었는데 갑자기 속이 !

레몬 CSI 보는 듯 하네요. 영화같아요;. 레몬

동네를 몇 바퀴 돌며 사온 걸 '화를 삭히면서 먹어 먹어 많이 먹어' 하는 장면에서 뭔가 느껴지다가

손가락과 소시지에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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