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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1일 05시 44분 등록

난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번 주 토요일이었다. 일년 동안 보지 못했던 대학동기들을 만났다. 그들과 술을 마시면서 그 동안 긴장하며 살아온 시간들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너무 많이 풀어주었을까? 아니면, 나탈리 골드버그 말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만 된다면 얼마든지 파격적인 변신을 해도 좋다.’ 말이 떠올라서 그랬을까? 술독에 푹 빠졌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이 마냥 즐겁고 신이 났다. 띄엄띄엄 기억이 나는데, 길을 걸으면서 조르바처럼 춤도 춘 것 같았다. 진탕 취해서 버스에 올라탔고, 곧바로 잠이 들었다. 내려야 할 곳을 한참 지나서 정신이 들었다. 

 

기사 아저씨, 내려주세요

여긴 위험해요. 더 가서 내려 드릴께요

아이, 그냥 내려주세요

바로 앞이 종점이예요. 술 많이 드셨나 보네요

 

종점이라니,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는데. 오늘 제대로 망가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려서 걸었다. 한참 동안 걷다가 추워서 택시를 탔다. 아내가 걱정할 것 같아서 주머니에 핸드폰을 찾았다. 온 몸을 더듬어 봐도 만져지지 않았다.

 

아이쿠, 버스에 두고 내렸나 보네

 

일단 집에 가서 전화를 해봐야지 라는 생각에 택시에 내려서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었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잠들어 있었다.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기사 아저씨가 챙겨 놓겠지라는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여보, 일어나봐요. 핸드폰을 버스에 두고 내렸어, 당신이랑 종점에 가야 할 것 같아

 

아내는 짜증이 났지만, 오랜만에 남편 술 취한 모습을 봐서인지 그렇게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아내는 차 열쇠를 챙기고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오랜 만에 단 둘이 저녁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잃어버린 핸드폰 생각을 온데 간데 없어지고,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연애할 때, 아내의 운전 모습에 반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보통 여자들처럼 몸이 운전대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 떨어져 앉은 채 여유 있게 운전하는 모습이 마치 프로레이서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먼 곳이 아니면 가까운 곳은 아내가 운전한다.

12시를 넘긴 시간, 버스 종점에는 수 많은 차들이 잠들어 있었다. 조금 전 내렸던 버스를 찾기 위해 희미하게 불이 켜진 관리사무소 문을 두드렸다. 야근 당직을 하고 있는 관리인에게 사정 설명을 하자, 기사들은 다 퇴근하고 없다면서 버스열쇠가 보관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내는 차에 있고, 관리인과 나는 후레쉬를 들고 잠들어 있는 버스를 다시 깨웠다. 첫 번째, 두 번째 버스 안에도 핸드폰이 없었다. 이제 남은 차는 한 대뿐. 가슴이 조마조마 했다. 핸드폰이 보험에 들어있는지, 저장된 주소는 백업이 되어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저씨, 저처럼 이런 사람들이 많나요?”

연말 연초에 많이들 오지요. 하지만, 절반 정도는 못 찾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예요"

 

마지막 버스 문을 열었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조금 전 탔던 버스의 냄새가 났다. 앞에서 우측 세 번째 줄에 다가가자 관리인이 후레쉬를 비추면서 소리쳤다.

 

여기 있네요

 

나는 너무 기뻐서 관리인 아저씨를 포옹하고 말았다. 변경연 습관이 이제 몸에 배여 버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내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자, 아내도 나처럼 활짝 웃었다. 마치 황금보물을 찾은 사람처럼 서로 기뻐했다. 시동이 걸리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환하게 비추었다. 아마도 아이 놓고 처음 가져보는 둘 만의 심야데이트였다. 잔잔한 음악이 흐리고, 아내는 말문을 열었다.

 

여보, 변경연 일년 동안 어땠어요, 뭔가 달라진 게 있어요?”

, 글쎄…….이제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읽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것. 그리고…...”

일년 동안, 나 자신이 많이 위로 받았다는 것. 글을 쓰면서 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신화에 나오는 영웅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분명한 건 나의 이야기 써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예요.”

 오늘처럼, 당신과 잊지 못할 추억을 영원토록 간직할 수 있게 말이야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조금 전까지 뿌연 안개로 도로가 잘 보이지 않았었는데, 어느 새 안개가 걷히고 헤드라이트 불빛은 멀리 있는 곳까지 선명하게 비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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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1 06:34:03 *.9.188.193

ㅋㅋ 나사가 많이 풀렸었넹

지난번 재용이가 찾아준 내 핸드폰 생각이 나서 더 재미나게 읽었다.

한편으론 어ㅉ다가 이 작은 물건에 우리가 일희 일비 하게 되었나 생각도 들고...

덕분에 심야 데이트 잘 했구만?

변경연의 빅 허그도 재밌는 표현이고.

한주를 시작하는 아침 '빙그레 웃게 하는 글'이다 승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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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2 13:25:58 *.229.250.5

나사가 조금은 풀려야 하려는 이야기도 술술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 아닌가 싶구요.

함께 공감해셔서 고맙습니다. 아마도 즐거운 추억이

함께 연결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계속해서 재미있는 추억 만들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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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3 00:23:00 *.229.239.39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는 그런 날도 있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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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4 17:51:32 *.43.131.14

ㅋㅋㅋ 관리인 아저씨를 포옹하는 아저씨 엄청 사랑스러울 듯이요.

한젤리타는 빈 틈을 이렇게 칼럼으로 쓰지만 빈 틈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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