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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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의 맛
“일어나라고! 일어나!”
오른손에 잡고 있던 마우스를 교탁 위에다 빠르게, 연달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지난 주 화요일, 수요일에 지방에 있는 강모 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처음 맡은 장시간 강의였다.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이하 7H) 워크숍은 대부분 2박 3일 과정으로 24시간에서 28시간까지 한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예산에 맞추어 7H과정을 축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16시간 동안 학생들이 꿈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대인관계를 잘 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강의해야 했다.
강모 학교는 스승의 날을 발원한 곳으로 그 지방에서 명문고라고 했다. 1박2일 과정이기도 하고, 길게 강의하는 것이 처음이기에 부푼 마음과 잘 해보겠다는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강의를 준비했다. 강의는 준비부터 마무리까지가 모두 잘 이뤄져야 한다. 말하자면 기기 사용도 아주 매끄럽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맥북은 나를 배신했다. 벌써 두번째다. 맥북을 화형시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프닝이 강의의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던 터라 나는 비지땀을 흘렸다. 연결은 계속 안됐다. 강의 진행과 기타 행정적인 사항을 책임지는 CM(총괄)과 그 학교 정보처리 교사와 함께 내 컴퓨터와 화면이 연결되게 애썼지만 결국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다른 교사 노트북을 빌려와야 했다. 내 자료는 모두 깨졌다. 내 마음도 깨졌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깨졌는지 어쩐지도 모르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우리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주자고 했다. 컴퓨터가 잘 연결이 안돼서 서로 불편했는데, 잘 참고 넘어와줘서 고맙고, 또 이걸 극복하고 강의를 계속 해야 하는 나에게도힘을 주라고 했다. 아이들을 박수를 쳐줬다. 나는 그때 힘을 얻었다. 내 청중이 순수하고 착한 학생들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강의는 진행됐다. 프레젠테이션 효과가 엉켜 매끄럽게 하지는 못했지만 별 탈 없이 강의가 진행됐다. 일단 점심을 먹지 않았다. 오후 강의를 최대한 매끄럽게 하기 위해 PPT를 손보기 위해서였다.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떠나지 않는 나에게 학생들이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점심 안드세요?”
“어? 어. 오후 강의 자료 효과 보완 좀 하려고. 맛있게 먹고 와.”
“아, 그래도 점심 드시고 하셔야죠. 배고프시잖아요.”
몇 명의 학생이 내게 점심 안부를 물어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마웠다. 아이들이 참 순수하고, 의리있다고 여겨졌다. 오후 강의에는 사명서를 쓰고 비전맵을 그려야 한다. 끝을 생각하고 시작하라는 습관 2번을 가르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아이들이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시간이다. 아무도 답을 주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답을 내야 하는 시간이다. 제일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시간이다. 아이들에게 사명서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음악을 틀어줬다. 학생들은 한 명씩 자기 시작했다. 멀뚱멀뚱 뭘 써야 할지 몰라했다. 한 명 한 명 봐주기 위해 학생 옆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갔다. 사명서를 부랴부랴 정리하고 비전맵을 그렸다. 난리도 아니다. 아빠되기, 현모양처, 추어탕 집 사장을 끄적여 놓고 놀고 있다. 나는 점점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내면 안된다. 나는 강사니까. 순수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배신감이 밀려왔다. 아이들의 꿈이 하찮게 여겨졌다. 비전이 뭔지 모르는 학생들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첫 쨋날 강의를 우여곡절 끝에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CM이 우리를 위해 아구찜과 복요리를 잘하는 집을 알아두었다. 나는 그 CM이 마음에 들었다. 안정감을 주면서 강사들을 잘 보필한다. 저녁시간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강사들이 모두 힘들어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떠들기도 하고, 졸고 있는 건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결과물도 나오지 않는다는 게 대부분의 평가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까지 왔고, 뭘 강의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깊게 생각 할 수 없었다. 다음날 강의 자료를 PPT로 다 바꿔야 했기 때문에 나는 숙소에서 거의 밤을 새다시피 자료를 수정했다. 다음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시간관리’를 강의할 차례였다. 시간 관리는 곧 사건관리라고 하면서 무엇을 경험하며 살 것인가에 대해 열띠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씩 고개를 숙였다. 한 조에 6명씩 앉아 있는데 4명이 쓰러진 조가 있었다. 처음에 얼르고 달래며 깨웠다. 그런데 나의 한계에 도달했다. 나는 정말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그것도 마우스를 교탁위에 내리치면서 말이다.
“일어나라고! 일어나!”
학생들이 놀랬다. 엎드려 있던 애들이 일어났다. 나는 화를 냈다. 내가 수학 선생이었던 그때처럼 말이다.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나는 화를 내다가 점점 그들을 달랬다. 물론 열심히 듣는 친구들도 있다. 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데 첫째날 보다 더 심하게 학생들의 태도는 나태해지고 나빠졌다. 어떻게 했는지 시간관리 시간을 마쳤다. 화낸 이후로 자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다 등을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강의 시간 이제 남은 시간은 4시간이다. 4시간 동안 대인관계 리더십을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희안한 건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왔는데도 말똥말똥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활동을 시켰더니 열심히 한다. 이상할 정도로 아이들이 적극적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학생들이 성적은 별로 좋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없지만 대인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의리있고 순수한 게 맞았구나, 라고 말이다. 또 혼이 나면 서울 깍쟁이 학생들은 삐지거나, 오히려 눈도 안 마주치고 버팅기는데 이들은 달랐다. 열심히 참여하고, 졸지 않으려고 애썼다.
마지막 클로징을 할 때 나는 감정이 복받쳤다.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마도 학생들을 눈치 챘을거다.
“봄이다. 따뜻하고, 예쁜 꽃들이 많이 피는 봄! 너희들의 인생에 봄이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다. 인생이 늘 봄 같을 수 없고, 겨울도, 여름도, 그리고 가을도 올텐데 너희 삶에 봄이 자주 찾아와 따뜻하고, 싱그럽고, 활기차면 좋겠다. 그리고 내 삶에도 말이다.” 라고 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돌아오는 기차 안, 나는 내 꿈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전국에 있는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꿈을 말하고, 삶을 말하고 싶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고, 무엇보다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좋은 질문들을 하고 싶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나는 좋은 아내이자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비전에 좋은 아빠, 현모양처를 비웃었던 내게 놀라는 순간이었다. 나도 그것을 꿈꾸면서 아이들이 비전맵에 그것을 그렸을 때 나는 그걸 하찮게 여겼을까? 비전맵을 너무 거창하고 거룩하게만 생각했던 것 아닌가? 패러다임을 가르치고, 패러다임을 전환하자고 외치면서 정작 나는 비전과 꿈에 대해 유연하지 못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강의를 하면 할수록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를 성장하게 해주는 학생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피곤했다. 갑자기 들어온 다음날 양평 한화 콘도에서의 강의 또 준비해야 했다. 마음이 천근만근 몸은 만근십만근이다. 집에 도착해 씻고 다음날 강의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카톡 소리가 난다.
“띡!”
“선생님 덕분에 학교 계속 다녀야겠다는 생각했어요. 아까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감사합니다.”
강모고 복학생이다. 그녀석의 비전맵은 단 3줄 밖에 없었는데 그 중 한 줄이 이거였다.
‘3년 개근상 타기!’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은 날아갔다. 훨훨 하늘을 날았다. 이 맛이 내 꿈을 더 달콤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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