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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1일 12시 12분 등록

결혼식의 플랜B

 

 

 

점심 식사 다 잘 하셨지요? 저도 급식실에 방금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너무 정신이 없습니다급식을 먹고 와서 아이들은 동요를 듣고 있습니다. 동요 몇 곡 듣고 뽀로로를 한 두 편 보는 것이 우리의 점심식사 후 휴식입니다. 네이버 동요가 아니라 유행하는 가요를 더 좋아할라나? 교과부 좋은 시설 상을 받은 우리 학교는 교실마다 빔프로젝트가 설치되어 있어요. 음량이 장난 아니게 웅장합니다. 양치도 시켰어야 했는데 양치컵 가지고 오라는 말을 아직 안해서요. 오늘 못 시키네요. 세 아이는 양치를 흉내낼 수 있고 다른 아이는 혼자서 못뱉어서 엄마가 손으로 음식 찌꺼기를 빼내준다고 했습니다. 3월부터는 신화에 대해 쓰기로 했는데요안그래도 정신없는 사람인데 요즘 정신이 더 없어지는 것도 같습니다. 신화고 뭐시깽이고 집중이 안됩니다.  방금 초과근무를 9:30까지 달고 나니 급 피곤해질라 합니다. 목은 오전부터 잠겼습니다. 오늘은 쓸 것이 없다, 그런데도 칼럼을 써내는 건 마감의 마력이겠지요.   

 

혼수로 <천일간의 자기사랑> 초고와 마라톤 완주 메달을 드리겠다고 큰 소리 빵빵 쳤는데 말입니다. 그건 순진하거나 이상한 생각이고요. 누가 그런 걸 달랬어야 말이지요. 실제 혼수는 살림살이와 돈과 금붙이와 제대로 지은 한복과 이불, 양복 이런 것인가 봅니다. 주고 받는 현금과 어른들이 해오던 방식과 내가 하려는 방식 사이에서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 스스로 진동한다기 보담은 후줄후줄 합니다. 내가 이해하기로 예단은 신부 쪽에서(개인? 집안?) 신랑 집에 보내는 선물입니다. 예물은 신랑 집에서도 신부 주고, 신부 집에서도 신랑 집에 주는 건가 봅니다동방박사가 새로 태어난 아기예수님한테 들고 가는 선물이 예물의 예로 퍼뜩 떠오릅니다. 500 온 거 200 돌려보내고 300받았다는 건 신랑집에서 하는 말인 듯 하고요. 함에 넣어오는 귀걸이 목걸이 반지 세트, 반짝이는 거, 평생에 한 번 가져보는 고급 장신구들인가 봅니다. 왜 옷을 각자 안 사입고 상대편에서 주는 돈으로 한복이나 양복을 사 입는 걸까? 형제들한테 불하되는 옷 값들은 신부가 준 돈으로 나누는 건가? 신부는 왜 돈을 주는 걸까? 집을 마련하는 건 신랑 쪽이라고? 요즘 그런게 어디 있어? 골치가 아픕니다.  

 

엄마한테 돈을 받았습니다. 결혼식 때 쓸 것이 소소히 많이 들테니 갖고 있으라 했습니다. 가진 걸 모두 집에 부은 줄 알기 때문이겠지요. 그걸로 나는 예단? 을 드리고요, 그것도 엄마가 그 정도면 된다 하는 양을 드리고, 상담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상담도 글쓰기처럼 혼수라고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쓰면 잘 쓰는 돈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쓰면 닳아지는 살림살이를 욕심부려 사느라 부모님이 노가다를 해서 번 돈, 내가 멀리까지 출퇴근을 하면서 번 돈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요건 거짓말입니다. 욕심나는 살림살이가 있습니다. 많습니다. 공부방에는 잡동사니를 넣어둘 빨간 이케아 서랍장을 놓고, 밤에 밖에서 안보이게 커튼을 치고, 스탠드와 뱅갈고무나무를 하나 사고 싶어요. 웹써핑을 하면서 이것저것 사들이는 신부들을 보니 내 눈도 높아지고, 항목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것은 예단과 예물이고요, 그리고 뭐 놈의 정해진 관례가 그리 많은 건지요. 또 미묘하게 내가 대차대조표를 만들고, 뒷북을 동동동 깔짝이고 있는 게 피곤합니다. 스튜디오 촬영은 생략했어요. 사진찍기 부끄러워하는데 남 다 하니까 나도 따라하려니 그 시간 예약도 어렵고요. 나 아는 상식으로 결혼식 준비는 한 달이면 된다. 새 그릇, 새 가구, 새 옷 사느라 재미있겠지만 그건 결혼의 진정한 준비가 아니다. 잘 살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해라. 결혼식의 핵심은 두 사람이 이 사람을 사랑하고 함께 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거다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듯 합니다. 결혼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는 나는 몇 년 간 인공적으로 헤라여신을 활성화시키려 노력했습니다. 미래의 배우자에게 편지를 쓰라는 걸 어디서 읽었더랬죠. 헤라는 결혼의 여신인데 결혼식을 인생의 최고의 날로 생각을 한다고 하지요. 나는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웨딩드레스를 입을 생각만 해도 어색하고 끔찍해 죽겠습니다. 둘이서 손잡고 걸어 들어가겠다고 하면 결혼식에 대한 딸 아버지의 로망이 또 있을 테니 안되겠지요. 암튼 굳이 오픈 게임에 목숨 걸 이유가 없으니 은 간단히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린 안 그래도 리마인드 웨딩이나 재혼커플로 여겨질 나이고요.  

 

오늘은 직통을 갈아타지 않고 완행으로 죽 내려왔습니다. 10분 더 걸리더군요. 내일부터는 이렇게 계속 앉아올 작정입니다. 용산서 직통을 갈아타는 속도보다는 느리지만 단순한 길이 훨씬 내게 맞는 방식입니다. 캠벨의 <신화의 힘>을 읽었어요지난 주에는 조느라 그의 책이 읽히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결혼에 대한 그의 말을 밑줄 그으며 읽으며 내려왔습니다.

 

결혼을 결정하기 전 결혼은 영혼의 동질성을 가진 이와의 재회라는 그의 아리까리한 말 때문에고민했었죠. 영혼의 동질성을 90% 순도가 아니라 49:51의 비율로 다루기로 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55%는 비슷한 게 있는 것 같다 싶었어요. 오늘 비교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결혼은 사회적 계약이 아니라 영적 수련이라고 하는군요

 

캠벨 : 결혼에는 서로 전혀 다른 두 단계가 있어요. 첫번째 단계는 두 젊은이가 결혼하는 단계이지요 젊은이들은 이 자연의 충동을 좇아 생물학적인 성의 교합을 하고 자식을 낳습니다....하지만 이들은 자기네 관계를 아이들을 통한 관계로 해석하면서도 그것이 실수를 범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제대로 된 관계를 지닌 사람들이라면 자기네의 관계를 상호간의 인간적인 관계라는 측면에서 해석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요. 결혼은 관계지요. 우리는 대개 결혼을 통해서 한 두 가지씩은 희생을 시킵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됩니다. …결혼한 사람은 자신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지요.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젊은이의 결혼은 어느 대목에 이르면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드는데 이것이 내가 바로연금술적 단계라고 이름 붙인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이 단계에서 부부는 내가 앞서 말한 희생의 의미를 서로 아름답게 깨닫게 됩니다. 만약에 부부가 첫번째 단계에 머루고 있다면, 아이들이 집을 떠나는 것과 같이 해서 갈라서게 되지요. (신화의 힘. 32)

 

이것과 내가 겪고 있는 이 주의력결핍광잉행동 상태와는 뭔 상관이 있다는 걸까요? 그는 분명 신화가 가르쳐주기를, 결혼은 분리되어 있던 한 쌍의 재회라고 했거든요. 결혼은 두 사람 사이의 영적인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이라고도 했구요온당하게 산 사람, 이성을 웬만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마음의 소유자라면 온당한 상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대로 된 상대와 결혼해야 육화된 신의 이미지를 재건할 수 있다는 멋진 말도 했지요

 

그럼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요? 결혼식은 내적인 현실을 밖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의례라고 했는데 이건 뭐라는 건가요? '이 시각에도 현대판 오이디푸스의 화신과 <미녀와 야수>의 속편은 41번가와 5번가가 만나는 네 거리에서 교통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고 했죠. 그럼 나에게도 그런 건가? 뜻은 모르면서 형식만 남아서 이런 건가? 제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요. 혼잣말이 늘었습니다. 성당이나 교회에서 결혼하는 이들을 부러워했습니다. 나의 결혼의례도 내가 좋아하는 절에서 스승님을 모시고 꽃 일곱송이를 들고 손 잡고 들어가 법회 식으로 진행되길 원했어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담 중 선혜행자와 어떤 여인의 이야기를 스님이 해주시겠지요. 이야기 속 그 여인은 남자가 아직아직 부처가 되기 전에 다른 부처님께 꽃을 올리는 그의 태도에 반해서 청혼합니다. 이 꽃을 당신께 드릴 테니 이담 생 언젠가 나와 결혼해 달라구요. 이제는 외우고 있는 여러가지 곁다리 이야길를 듣고요. 그러길 원했어요. 그게 결혼 전체와 결혼식에 대한 나의 유일한 로망이었어요. 그게 어려워졌습니다. 예식장에서 그냥 해치우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에 오케이입니다. 그러면서 헛헛해졌습니다. 어떻게 그 형식 안에 내용을 담을 건지가 관건인 걸까요?

 

길수서연행님이 주신 시나 읽어봐야겠습니다. 수료여행 때 써 주신 시. 작년 레이스 기간에 국립도서관에서 깊은 인생의 저자조사를 하고 나서 서초경찰서 앞을 지나면서 내가 이 시를 소리 내어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올해는 꼭 봄밤 나무 아래서 이 시를 읽어볼 수 있기를.  

 

 

나무들의 결혼식

 

                                            정호승

 

내 한 평생 버리고 싶지 않은 소원이 있다면

나무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낭랑하게

축시 한번 낭송해보는 일이다.

 

내 한 평생 끝끝내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우수가 지난 나무들의 결혼식 날

몰래 보름달로 떠올라

밤새도록 나무들의 첫날밤을 엿보는 일이다.

 

그리하여 내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소원이 있다면

은은히 산사의 종소리가 울리는 봄날 새벽

눈이 맑은 큰스님을 모시고

나무들과 결혼한 번 해 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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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5 18:59:45 *.68.172.4

캠벨 부분을 보고 나도 다시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무같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 콩두 언니에게, 나무들의 결혼식이 최고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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