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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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삼 년째 여름휴가를 못갔다”고 투덜대는 남편과의 봄나들이이다. 금요일 하루 휴가를 냈다. 연구원을 한다는 구실 하에 일년이상을 함께한 여행이 없었다. 이제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1박2일 일정이다. 잠은 경북 영주에 있는 선비촌 내 인동 장씨 종택에서 자기로 했다. 서울 촌놈인 남편은 한옥에서의 잠자리를 불편해했다. 군불을 때는 자그만 황토방 이었다. 아이들과 네 식구가 돌아누울 자리도 없을 정도의 작은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 이번에 한옥에서 잠을 자자고 의기투합했다. 하룻밤 숙박비는 48,500원이다. 예약을 받는 직원이 "냉장고도 TV도 없습니다"한다. "네, 상관없습니다" 이 사실은 비밀에 부쳤다.
기차를 타고 갈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자동차로 움직였다. 귀챠니즘의 승리이다. 자동차운전을 하고 난 후부터는 기차나 고속버스를 여행하는 것이 잘 안 된다. 집에서 나와 지하까지만 가면 자동차로 움직일 수 있는데 시간에 맞춰 예약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출발을 해야 하는 데다 여행지에서 이동할 때의 불편함을 생각하면 결국에는 자동차 키를 잡게 된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금요일 아침을 먹고 간단하게 짐을 꾸려서 집을 나선다.
"어머니! 아범하고 바람 쐬러 다녀올께요" "어디로 가는데..." "네, 영주로 갈려고 합니다" "그래 그곳이 네 동서 고향이기도 하지..." "그래요? 왜 전 생각이 나지 않지요?" 내가 좀 그렇다. 하나밖에 없는 손아래 동서의 고향이 영주인지 몰랐을까. 무심도 하다. 시댁은 아들만 셋 있는데 바로 아래 동생은 결혼을 했고 막내는 미혼이다. 시어른들과 함께 사는 나는 사실 모시고 산다기보다 얹혀산다는 표현이 맞다. 우리집은 남편과 나 그리고 나의 아이들 모두를 어머니가 출근시키고 등교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동 시간대에 움직이는 우리식구는 아침이 매우 분주하다.
아이들은 이미 학교에 가고 없다. 나와 남편도 집을 나섰다. 일단 첫 운전은 남편이 한다. 길눈이 어두운 남편은 옆에 앉아서 도로표지판을 보면서 말로 설명해줘야 한다. "여기 사거리 말고 다음 사거리에서 우회전이야" "그래...여기 아니고 다음이야?" 코앞에 와서 다시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여기...여기서 우회전" 이런 형편이라 나는 운전을 하지 않고 조수석에 앉아도 딴청을 피울 수가 없다. 여주휴게소까지 길을 가르켜 주었다.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출발을 한다. "힘들면 내가 운전 좀 할까?" "아니 괜챦아" 일단 교차로가 없는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조금 편해진다. "이제부터 쭉 직진이야" 이러고 나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거나 아니면 졸거나 할 수가 있다. 아마 내가 졸고 있었던 게다. 단양휴게소라며 깨운다. 단양휴게소는 언덕 위에 있는가 보다. 한참을 돌아서 휴게소에 닿았다. 그는 남자화장실로 나는 여자화장실로 향한다. 볼일을 보고 양지바른 의자에 앉았다. 봄볕이 따사롭다. 일광욕이 필요한 식물처럼 나도 일광욕이 필요하다. 겨우내 따듯한 햇살에 굼주린 동물같이. 이제 기지개를 켜고 슬슬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그들처럼 나도 그렇다. 턱에 팔을 괴고 휴게소를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을 바라본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일광욕을 하고 있는 자리가 장애인 주차장 바로 앞이었나 보다. 스타렉스 차량 한대가 밀고 들어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남편은 말한다. "장애인 차량 맞나?" 본능의 발동이다. 누가 공무원 아니랄까 봐 장애인주차구역에 세워져 있는 차를 보면 반드시 확인한다. 얌체족이 장애인주차구역을 점령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가 보다. 나같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차량 운전석이 더 잘 보이는 위치에 앉아있던 내가 고개를 돌려서 확인해준다. 정확히 판별이 되진 앉지만 운전석 앞 왼편유리에 커다란 표지가 보인다. 아마 장애인표시이지 싶다. 그러고 있는 사이 주차된 차량의 문이 열렸다. 가녀린 남자 한 사람이 내릴 준비를 하느라 발이 먼저 차량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장애인 차량이 맞는 것 같아. 내리는 사람이 장애인 맞네..."나의 말에 남편의 시선이 그 차량에 탑승한 사람에게로 옮겨온다. 유관으로 보기에 모두 장애인이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배고프다. 출발하자..." 시계를 보니
이제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이제부터 목적지까지는 길이 복잡하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에 접어들면 나의 역할이 늘어난다. 이럴 때 나는 운전대를 잡는 선택을 한다. 조수석에서 길 안내를 하다가 어색한 분위기에 휩싸이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미리미리 차선을 변경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은 늦게 알려 주었다고 짜증을 내거나 빠른 동작이 되지 않는 탓에 끼어들기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구간에서도 가던 길을 그대로 가 버리는 사태를 만든다. 그러면 그 다음은 상상하는 대로다. '내가 운전을 하고 말지...' 생각한다. 하여튼 이제 내가 운전대를 잡았으니 편안하게 쉬라고 말해둔다. 내가 못미더운 남편은 실눈을 뜨고 보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보니 고개가 우로 졎혀져 있다. 완전히 잠 속으로 떨어진 것이 확실하다. 이제부터는 운전수 마음이다...야호! 를 외치며 봄기운을 만끽한다. 속도도 내어본다. 경제속도를 지키지 않는 나를 참아내지 못하는 남편이다.
금요일 오전의 지방도로는 오가는 차가 거의 없다. 우리의 행선지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유원지도 아니다. 요즘은 한옥마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유명관광지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내성천이 돌아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반남 박씨와 예안 김씨 집성촌이기도 한 무섬마을이 우리의 일차 목적지이다. 몇 해 전 한옥건축을 전공하는 이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우리나라에 하천이 돌아드는 마을(물돌이 동)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한곳이 영주 무섬마을이라고 했다. “댐 건설 때문에 마을이 수몰될지도 모르니 그전에 한번 꼭 가봐라”는 말을 듣고 마음에 두고 있던 곳이다. 내성천은 넓은 모래사장을 자랑한다. 지금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로 진입하는 콘크리트 다리가 있다. 삼십여년 전만해도 외나무다리 하나가 외지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었다고 했다. 수도교는 난간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폼새나는 튼튼한 다리가 마을과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닌지 혼자 생각해본다. 운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천으로 차가 곤두박질 칠 것 같다. 위태로워 보이는 다리가 운전자로 하여금 더욱 긴장하게 만들어서 아마 사고는 더 안 나겠지 싶다.
무섬마을의 외나무 다리는 이제 마을의 대표 상징물이 되었다. 수도교가 놓이기 전만해도 자동차의 출입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줄기에는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돌이 동을 만들어 낸 곳이 여럿 있다. 잘 아는 안동의 하회마을도 그 중 하나이다. 물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理'의 우리말 이름이다. 소백산에서 발원한 서천西川과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乃城川이 마을 뒷편에서 만나 350도 정도로 마을을 휘돌아나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리를 건너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웠다. 큼지막한 까치집을 이고 있는 소나무 곁이다.
"점심부터 먹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남편은 자신이 서있는 마을을 둘러본다. 어디에도 밥 먹을 곳 같은 데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밥을 먹나 싶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여기에는 법 먹을 만한 곳이 없는 것 같은데..." 한다. "아니야, 있어" 하며 앞장서서 성큼 걸어갔다. 마을에는 향토음식가가 운영하는 전통 골동반 음식점이 하나 있다. 영주시의 향토음식 지원화 사업장이기도 하다. 겉에서 보면 평범한 한옥이니 남편의 반응이 그럴 만도 하다. 도시에서 보는 커다란 간판도 없고 음식점이라고 해봐야 드나드는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밥을 줄 것 같아 보이지 않기는 하다. 골동반은 옛날 궁중에서 먹던 비빔밥이다. 특히 남은 음식은 해를 넘기지 않는다고 하여 음력 12월30일인 섣달그믐날 저녁에 남을 음식을 모두 비벼먹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고 한다.
점심시간임에도 밥을 먹는 객은 아무도 없다. 조심스럽게 주인을 불렀다. "안 계세요? 지금 밥 해주나요?" 안에서 인기척이 난다. 다행이다. 주방과 가까운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봄바람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바깥공기는 차다. 자리에 앉으면서 손을 방석 밑으로 넣어본다. 바닥이 따뜻하다. 좋다. 이 집의 메뉴판은 두 종류이다. 준비된 음식과 예약되는 음식이다. 준비된 음식은 골동반과 선비정식, 예약되는 음식은 삼계탕, 곰탕, 생신상이다. 선비정식을 주문했다. 물론 동동주도 빼놓을 수 없지. 잠시 후 상이 차려진다. 일단 수저가 맘에 든다. 각종 식중독균 및 몸에 해로운 균을 소독, 살균해준다는 방짜유기이다. 오색나물에 무우북어국, 청포묵무침. 맛있게 익은 김장김치, 조기구이, 버섯구이가 곁들여진 돼지고기볶음. 샐러드, 무우김치, 잡채, 장떡, 오징어젓갈, 이곳은 인공감미료를 쓰지 않는 집이다. 간장과 된장 고추장등 장류와 효소등으로 간을 한다. 오늘은 자반고등어찜이 없다. 지난번에는 있었는데...아쉽다. 돼지고기볶음도 고추장불고기식이 아니다. 고추장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간장으로 양념했다. 소고기 불고기를 연상하면 좋겠다.
잘 차려진 음식에 남편 표정이 급 밝아진다. 동동주까지 곁들였으니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우리 둘은 쉴 세 없이 젖가락 질을 한다. 동동주 안주 삼아 열심히 먹노라니 접시들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술동이도 비어간다. 낮술의 묘미는 경제적이라는 거다. 확실히 낮에 술을 마시면 취기가 빨리 오른다. 과학적인 근거는 잘 모르겠다. 굳이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 정당히 알싸한 취기와 봄볕의 어울어짐 속에 마을을 산보하기 시작했다. 오늘 이 마을에 외지인은 우리 둘 뿐인가 보다.
1666년 반남 박씨 휘 수가 이곳에 터를 닦은 후 예안 김씨와 혼인을 하면서 지금은 두 성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에는 'ㅁ'자 형태의 기와집을 포함해 50여채의 전통가옥이 있다. 그 중 12채는 빈집이다. 1970년대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마을로 통하는 유일한 다리는 외나무다리였다. 통나무를 절반으로 쪼개서 의자처럼 다리를 붙여서 놓은 다리이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면 외나무 다리는 쓸려 내려간다. 설치와 철거가 반복되는 다리이다. 예전에는 외나무다리로 가마 타고 시집오고 죽으면 상여가 나가던 다리였다. 물이 불어 다리가 없어지면 헤엄을 쳐서 건너나가기도 하고 한국전쟁때는 군용보트에 의존해서 강을 건너기도 했다고 한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강가로 갔다. 모래사장이 제법 넓다. 영주댐을 건설하면서 강바닥이 깊어져서 지금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10월 외나무다리 축제 때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오늘은 우리 둘 뿐이다. 외나무다리에 올라서본다. 내가 앞장을 섰다. 뒤따라 오던 남편은 물살이 깊어지는 것을 보더니 따라오지 않는다. 그만 돌아오라고 뒤에서 말을 하고는 자신은 오던 길을 되돌아 가버린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속으로 생각한다. 외나무다리는 두 사람이 함께 걸을 수는 없다. 한 사람도 두 발을 엇갈리며 걸어야 한다. 자칫 중심을 잡지 못하면 그대로 川(천)으로 들어가게 된다. 중간 정도에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예전 그림을 보면 사람은 다리위로 소는 다리 밑 물속으로 함께 건너오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덩치가 큰 소와 사람이 조화롭다. 건너마을 가까이 다다라서 뒤를 돌아보니 남편은 모래사장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우리밖에 없던 마을에 다른 한 쌍의 남녀가 나타났다. 그들도 외나무 다리를 막 건너려고 한다. 다리위에서 보는 마을은 더 한가로워 보인다. 강바람도 시원하다. 중심을 잡기 위해 다리를 내려다보면서 걷노라면 물살이 센 곳은 어지럼증이 생긴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고개를 들어 멀찍이 보이는 마을뒷산을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늘 이야기한다. "건너가봐야 아무것도 없어..." 맞다. 아무것도 없다. 그저 다리가 있고 그 위를 걸어보는 것뿐이다. 남편은 눈으로 보는 다리와 걸어보는 다리의 차이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늘 분주하게 움직이고 남편은 가장자리에 서성이는 모습이 우리 여행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말에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하나?"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찍어먹어 보자 주의이다. 그래야 그 느낌을 실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음은 목적지는 숙소이다. 영주 선비촌에 예약을 해 두었다. 선비촌은 영주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택을 한 곳으로 이주해 놓은 곳이다. 우리는 인동 장씨 종택을 선택했다. 본채와 문간체 헛간으로 이루어진 'ㅁ'자형 기와집이다. 좌측 언덕배기에는 사당이 있다. 16C중엽에 건립되었다. 숙박체험을 위해 화장실과 기름보일러는 설치가 되어있다. 헛간을 개조한 곳에 예약을 해 두었다. 세면장이 붙어 있는 독립된 곳이란 특징 때문에 선택했다. 모두 합해서 3평 규모이다. 매표소 옆 안내소에 들어서니 오른편 벽에 예약자이름을 기재해놓은 칠판이 보인다. 하얀 보드에 그날의 예약자명을 기재해놓은 판이다. 모두 비어 있고 나의 이름만 눈에 띈다. 안내원은 열쇠를 들고 선비촌 안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따라가다 보니 마을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집이다. 열쇠를 건네주며 안내원은 돌아갔다. 방에는 선비상위에 물주전자와 컵 두 개 낮은 사각휴지 한 통 수건 두 장이 놓여있다. 그 옆으로 반닫이가 있다. 반닫이 위에는 이불과 요 그리고 요 위에 까는 패드 한 장 베개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 옆으로 조금 높이가 높은 반닫이가 하나 더 있다. 작은 방에 반닫이 두 개와 선비상이 나란히 놓여 있고 맞은편 벽에는 통 대나무가 누운 상태로 매달려 있다. 옷걸이 용인듯하다. 여닫이 문과 마주하는 곳에 커다란 창문이 있는데 겨울이라 창문 위에 비닐로 덮개를 씌어서 네 귀퉁이 마무리를 잘 해 두었다. 찬 공기를 막기 위한 방편이지 싶다. 정지(부엌)로 통하는 문도 창문과 같은 방법으로 봉해둔 상태다. 보일러 온도를 조금 높이고 요를 깔고 누웠다. 낮술의 취기가 조금씩 올라온다. 한 숨 자고 부석사에 갈 생각이었다. 가방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고 요에 나란히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는지 남편 손에는 따끈한 방에 눌린 자욱이 발갛다. 정신 없이 잤나 보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되어간다. 한 시간 남짓 흘렀다. 서둘러 길을 나선다. 이번 여행의 주요 포인트중 하나는 부석사에서 소백준령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보는 것이다. 일기예보상에는
천천히 올라 무량수전에 다다랐다. 무량수전 문이 닫혀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문을 열어보니 열린다. 남편은 뒤에서 들어가지 말라고 눈짓을 주고 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수는 없지...나는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좌복을 깔고 절을 한다. 좌복을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마룻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마루바닥 나무결이 내 엉덩이와 맞닿는다. 차갑다. 시원하다. 좋다. 이 나무들의 나이는 몇 살이나 될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앉았다 갔을까. 잠시 눈을 감고 나무의 느낌과 그 위를 떠도는 공기의 느낌을 읽는다.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는다. 몇 해 전 이곳에 이렇게 앉아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곁에 사람이 있었다.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잠시 부처님 앞에 있다가 불전함에 용돈을 조금 넣어드리고 나왔다. 무량수전 뒷편 봉황산으로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가본다. 몇 명의 사람들이 경내를 둘러보는 것이 보인다. '부석사 배흘림 기둥에 서서'라는 책이 있듯이 우리는 무량수전에 바라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소백준령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는 눈짓을 계속 보내고 있지만 오늘만은 기필코 일몰을 보고 가리라 생각한다. 서서히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봉황산 부석사'라는 현판을 단 누각 법고에 스님이 나타난다. 아마 법고를 칠 모양이다. 법고는 북을 침으로써 세상의 짐승들 고통을 얼어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6시가 되니 스님이 법고를 치기 시작한다. 일몰과 어우러진 부석사 법고소리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잠시 듣고 있다가 휴대폰을 꺼내 녹취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스마트한 세상이다. 스마트한 휴대폰으로 고요한 산사에 정적을 깨는 법고소리 그리고 일몰. 무념의 상태가 된다. 법고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산을 내려오니 해가 거의 다 떨어졌다. 맛 집을 찾아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뿔싸. 선비촌은 깜깜한 정적이 감돈다. 안내소의 불빛만이 새어 나온다. 유리문으로 보이는 안내소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시냇물소리가 들린다. 그 위로 다리가 놓여있다. 다리를 건넌다. 오늘 이곳의 투숙객은 우리뿐이다. 불빛이 사라진 선비촌 골목마다 길가에 한지로 덮은 간접조명이 있기는 하다. 길가에 설치된 돌 모양 안에서 옅은 빛으로는 길을 찾기조차 쉽지 않다. 조금 무서워진다. 남편 팔짱을 끼고 바싹 붙어서 걷는다. 우리의 숙소로 들어가던 길가에 마굿간이 왼편에 있었다. 그리고 우회전 그리고 직진...가다 보니 멀리서 불빛이 보인다. 이곳 관리인이 우리숙소에는 불을 밝혀놓은 모양이다. 가까이가보니 대문에 LED등이 켜져 있다. 안채 입구에도 불을 밝혀놓았다. 오십여채 되는 기와집은 모두 캄캄하다. 마을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없다. 방에도 세면장에서 불을 켜 놓아주었다.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역시 관리를 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댓돌에 놓인 하얀 남자고무신을 신고 세면장으로 향했다.
간단히 얼굴과 발만 닦고 방으로 들어왔다. 깔아 놓은 이불 속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따뜻했다. 예전에는 이곳이 헛간으로 쓰이던 곳이다. 나란히 누웠다. 적막을 깨고 밖에서 무슨 소리인가 들린다. 아마도 바람소리겠지. TV를 좋아하는 남편은 심심한가 보다. 읽을 거리를 하나 줄까 물으니 싫다고 한다. “그럼 내가 읽어 줄까?” 좋다고 한다. 가지고 간 책은 세 권이다. 한 권은 월요일 과제물 제출해야 하는 순자荀子이다. 한 권은 시집. 나머지 한 권은 지인의 책이다. 세 권 모두 만만하지 않지만 그래도 읽어 주기에는 시집이 좋겠다 싶어서 “시 읽어 줄 께” 하고는 이성복시인의 “래여애반다라”를 꺼내 들었다. “선생시리즈”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점심시간에 이 시를 읽다가 울컥 눈물이 솟았던 시이다.
“종강하던 날 영문과 여학생이 준
사탕봉지에는 카드가 들어 있었다
선생님께서 그토록 열심히
가르쳐 주셨건만, 형편없는
시만 쓰고 졸업하게 되었군요
그래, 그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공부했지만,
되도 않은 시나 쓰면서
그게 바로 시라고 가르쳐왔으니
제사 때마다 나 글 잘 쓰게 해달라고
빌던 어머니 보시기에도,
지 애비 신문 났다고 무슨 경사
난 줄 아는 자식 놈들 보기에도
나는 부끄러운 시만 써왔으니,
오래도록 영문과 여학생의 말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이성복 선생2-
“재밌어?” “아니” 시 읽어 주기를 그만두었다. 요즘 대세인 김**강사의 강의를 듣자고 한다.
“그래”하고 유투브에서 강의를 찾았다. 한 시간 남짓한 강의를 골라서 틀어놓고 나는 엎드려서 강사를 보면서 남편은 누워서 눈을 감고 강의를 듣는다. 강의는 강사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몸짓과 말짓을 모두 들어야 하는데…그도 귀챦은 모양이다. 속사포같이 쏘아대는 강사의 강의가 끝났다. “어때?” “저 여자는 말이 너무 빨라”한다. 그리고는 나는 잔다. “불은 켜 놓아도 돼” 하더니 어느 샌가 코를 골기 시작한다. 아홉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 하루가 곤했나 보다.
이곳 선비촌은 영주에 산재해 있던 고택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곳이다. 소수서원 바로 옆에 위치해있는데 숙박체험을 위하여 내부를 조금 개조를 한 상태이다. 여름이나 겨울이면 학생들 캠프가 있어서 북적일 테지만 이날은 마을 전체가 우리 차지였다. 이른 아침에 잠이 깨었다. 새벽 4시 즈음이었는데 “꼬끼오”하는 장닭소리가 요란하다.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나는 시골에서 이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고 하니 이렇게 이른 새벽에 농촌의 일이 시작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있으려니 오리가 우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닭의 울음소리와 오리소리 새소리와 함께 여닫이 문을 열어 재치자 넓은 마당이, 밝아오는 하늘이 나를 반긴다. “참 좋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한 달에 한번 이렇게 여행할까?” “그래, 그러자” 잠시 후에 남편은 이야기한다. “4월은 건너뛰고 오월에 가자” “그래” “오월은 경주로 갈까?” “그래 오월은 경주로 가자”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카톡이 들어온다. “엄마! 저녁 먹고 와요?” “아니야. 이제 한 시간쯤이면 집에 도착해”
다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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