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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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두레반과 엄마콩나물시루
봄. 새로운 것이 싹 터 자라나고 들어오는 계절. 대청소를 하며 맞이하고픈 시즌. 올 봄은 신혼집 셋팅과 같이 오는 중이다.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한다. 일단 비운다. 우리는 새로 장만하는 물건보다 두 사람이 이미 갖고 있던 물건들을 모으는 것들이 더 많다. 내 살림은 결혼이 아니라 독립이 기점이다. 이미 시작되었다. 집에서 할머니두레반과 엄마콩나물시루, 어릴 적 일기장을 가져왔다. 3년 전 독립할 때 큰 냉장고와 세탁기 그리고 옷장들을 샀다. 언제까지 임시로 살 수 없어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의 부속품들을 그때 일부 샀었다. 기르고 싶던 화분을 입양하기 시작했다. 이사할 때 자취생 짐 수준인데도 3톤 트럭이 온 이유다. 화분은 쌓을 수도 쟁일수도 없어서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 그는 등산복을 넣어두는 5단 서랍장을 가지고 올 거라고 했다. 등산용품이 얼마나 되길래 5단 서랍장을? 나는 가지고 있는 사계절 모든 옷을 합쳐도 양말과 속옷 포함해서 주니어 옷장 하나면 된다. 그는 30장의 바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어머나! 예복을 고르러 갔던 아울렛 마당에서 내 청바지를 세 장 사면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바지를 사도 되나 무심히 그에게 물었다가 깜짝 놀랐다. 그가 가진 30장의 등산 바지가 무엇인가 말해줄 것 같아 귀기울인다.
살고 싶은 집의 그림을 나눴다. ‘깃들고 싶은 공간이다. 나다운 물건들은 제 자리를 가지고 있다. 군더더기가 없이 깨끗하고 단정하다. 텃밭과 정원이 있다, 냉장고와 식량창고에는 귀소본능을 유발하는 음식들이 쟁여져 있다. 우리집은 도서관, 산책을 나갈 공원, 달릴 로드 근처에 있고 밥이 식지 않을 거리에 지인이 살고 있어 부침개를 부쳐놓고, 수제비를 떠놓고 부르면 입은 옷 채로 온다.’ 이건 나의 그림이다.
‘마당 있는 집이다. 이 집은 산으로 가는 길에 닿아있다. 같은 집에 어머니와 동생 가족이 같이 살고 있다. 올해는 텃밭에 상추와 치커리를 많이 심었다. 아이들이 상추밭을 망쳐놓았다. 이번 주 삼겹살 파티에 쓸 거였다. 그 야채를 수확해서 1달에 한 번 지인들을 초대해 삼겹살을 먹는다’ 이건 그의 그림이다.
텃밭과 정원이 있는 집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본가 가족들과 모두 모여 살고 싶은 건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라 들었다. 그런데 그런 집은 서울이 아니라 전라도나 제주도, 또는 20년이나 30년 후에 있을 지 모른다고 우리는 우스개말을 했다. 화분에 심어진 청양고추 5포기, 집안에서 기르는 공기정화식물로도 베란다 텃밭과 정원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살고 싶은 집의 그림을 먼 미래로 미루지 않고 당장 가능한 만큼 사는 것, 이게 나의 방향이다.
우리집은 방이 2개다. 그 중 하나는 그의 물건, 한 방에는 내 물건들을 옮겨놓을 작정이다. 내 물건들이 들어갈 방은 ‘노는 방’이다. 햇볕이 잘 든다. 새벽푸른빛을 볼 수 있고, 식물들이 햇빛을 받으며 지낼 수 있다. 어릴 적부터의 편지, 일기장들, 책, 모닝페이지 노트들, 식물들이 있다. 그것들이 있어 내공간스러워졌다. 토끼의 간처럼 내 심장에 해당하는 것들이 왔기 때문이다. 그의 물건은 ‘잠방’에 둔다. 거긴 햇볕이 안든다. 야간근무를 하고 퇴근해서 자야 하기 때문에 암막커튼을 쳤다. 책장을 통째로 비워두었다. 순전히 여성 취향으로 꾸며진 방에 자기 공간이 하나도 없는 남자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해왔다. 몇 권의 책과 등산용품들이 그의 심장이리라.
내게는. 손으로 쓸어볼 수 있는 나무 무늬가 있고, 위에 유리가 깔려있지 않은 원목 테이블에 대한 로망이 있다. 스타벅스 큰나무 책상, 살롱9 통나무 테이블을 사랑한다. 그런 나무 탁자를 ‘존재의 테이블’로 쓸거라고 마음 먹었다. 거기서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뭔가를 쓰는 용도의 테이블. 그런데 신혼집에 원목으로 된 4인식탁을 들이려니 문제가 생겼다. 돈은 있다. 그 자리를 이미 다른 것이 차지하고 있다. 증조할머니두레반이다. 독립하면서 가지고 왔다. 이거하고 엄마의 콩나물시루하고 두 개를 실어왔고, 나머지는 다 새로 샀다. 문득 궁금하다. 왜 할머니두레반은 나에게 보물이 되었을까? 나는 왜 엄마가 이미 폐기한 것, 이미 20년 이상 아래채 창고에 있던 걸 낡은 밥상을 꺼내 먼지를 닦아 싸들고서 독립했을까?
증조할머니는 10살 때까지 우리와 같이 살았다. 연년생 동생이 있던 나는 돌 되기 전에 젖이 떨어졌고, 그 이후로는 엄마 곁에 가지 못했다. 엄마는 젖 먹일 때만 아이를 안거나 몸에 손을 대게 했는데 젖이 일찍 떨어진 나는 한 돌 이후로는 할머니한테 업히거나 돌봐졌다. 엄마는 바빴다. 의식주를 해결해준 것, 학비를 준 것은 엄마지만, 나를 업어주고, 재워주고 쓰다듬어주고 위로해준 것은 할머니리라. 독립을 하면서 나는 뭔가 의지가지가 필요했을 거고, 할머니 두레반을 꺼내서 싸들고 왔으리라. 거기서 밥을 먹고 거기서 책을 읽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동안 그렇게 했다. ‘할머니’라는 키워드는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힘들 때는 할미꽃잔에다 커피를 마신다. 그런데 새 식탁세트를 사려면 그걸 폐기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식탁이 있지만 나는 할머니두레반과 바꿀까 말까 갈등한다. 저걸 폐기한다는 건 내다버린다는 게 아니라 다시 부모님 집 창고로 돌린다는 의미다. 아버지는 40년 전에 헐어버린 살구나무 아래 디딜방아를 버리지 않고 창고에 모셔두는 분이다. 다시 아버지의 창고로 돌아갈거다. 가구 욕심이 그닥 많은 사람이 아니라서 하나를 사면 아마 마르고 닳도록 쓸거다. 나는 과연 할머니두레반을 포기하고 내 식탁을 가질 수 있을까? 계속 퇴행해서 할머니두레반에 머물 수는 없지 않을까? 할머니두레반은 할머니집으로 돌려드리고 이제 나의 식탁을 차려 내 식구들을 불러서 둘러앉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섭섭하다.
그도 할머니가 키웠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도 아이들 어릴 때부터 일을 하러 다녔다. 그의 할머니는 하루에 소주 1병과 담배 1갑, 그리고 카스테라 하나씩을 외상장부에 달고서라도 사다 드리는 외동아들의 손주 2명을 키웠다. 낮에 집에 있으면서 수제비를 떠 놓고, 부침개를 부치던 여자들이 자기 아이들을 불러서 수제비를 먹이고 부침개를 손으로 찢어 먹일 동안 그 형제들은 할머니 치마를 잡고 있었을 거다. 그와 나는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
엄마의 콩나물시루는 콩나물을 키우고 그리고 떡을 찌기도 했다. 엄마는 더 이상 저 시루에 떡을 찌지 않는다. 떡은 방앗간에서 한다. 나는 저 옹기에 부추를 심어서 베란다에서 기르려고 한다. 부추는 한 번 심으면 평생 주인과 같이 산다. 이건 마치 화로의 불을 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내게 엄마를 상징하는 것이 콩나물시루라는 게 재미있다. 그리고 종로5가의 개량종 부추가 아니라 엄마가 논둑에, 집 텃밭에서 40년 넘게 기르던 부추를 옮겨오고 싶다. 그 부추 옹기에 물을 주며 힘을 받을 것 같아서다.
콩두의 할머니 두레반이 난 왜 탐이 날까?
물욕을 왜 이런데서 부리는 걸까?
지난 주말 선비촌에 숙박하면서 우리가 묶었던 작은방. 세명이 바로 누우면 돌아눕기도 힘든 그 방 한구석에 선비상이 놓여있었다.
누군가의 손떼가 묻은 선비상. 그것을 갖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주변에서 물어보았었지.
저런 선비상은 어디서 살수 있어요?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와서 그런가...? 싶은 생각이야.
아버지의 보물입니다. 네 대답은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누군가의 보물을 탐내는 것은 아니지 싶어서 말이다. 이래저래 바쁜시간을 보내고 있을 콩두야
일년의 시간동안 젤로 힘들었을 사람중에 한명아닐까 해. 지나고보니 제일 많이 예뻐졌고 제일 수확이 큰 사람도 너다.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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