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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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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9일 07시 33분 등록

어떤 두 대상을 가르는 경계선(境界線)은 대개 전선(戰線)입니다. 나와 너의 구도는 아군 대 적군, 혹은 가해자 대 피해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 대 자연의 구도는 또 어떻습니까. 갑과 을의 관계로 보는 시선이 만연합니다. 전선으로써의 경계에는 대화가 없습니다. 주인과 노예 사이에는 명령과 복종이 있을 뿐입니다. 공감(compassion)이 없는 만큼 교감도 부족합니다. 전선에는 소통을 가장한 선전이 난무하고, 대립이 걷는 길은 단절 직전의 반목의 칼날입니다.

 

류시화 시인은 15년 만에 낸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에서 “삶에는 시로써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시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경계에서 드러나는 진실이고, 시인은 이것과 저것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 사람입니다. 시인의 눈에 ‘나’는 ‘너’와 연결되고 ‘너’는 ‘나’와 연결됩니다. 사랑이 시의 보편적인 모티프인 이유입니다. 사랑은 조화와 그 너머 하나 됨을 지향하는 마음이니까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는 것

그래서 그가 그 시를 잊었을 때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

- 류시화,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중에서

 

시인의 마음에는 칸막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의 세계는 은유의 세계입니다. 시인에게 ‘내 마음은 호수’이고, 그의 귀는 흔들리는 깃발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습니다. ‘돌’에서 ‘나의 상처’를 보고 꽃에서 ‘너의 상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시를 쓰든 안 쓰든 이미 시인입니다.

 

가령 옆집에 사는 다운증후군 아이는 인간으로서

어떤 결격사유가 있는가

그날은 그해의 가장 추운 날이었다

겨울이었고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보니

그 아이가 서 있었다

죽은 새 한 마리를 손에 들고

 

(...)

 

아이가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다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아이는 신발 한 짝을 내밀며 말했다

새가 춥지 않도록 그 안에 넣어서 묻어 달라고

한쪽 신발만 신은 채로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을 하고서

새를 묻기도 전에 눈이 쌓였다

- ‘직박구리의 죽음’ 중에서

 

우리도 시인처럼 경계를 지울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뭔가에 몰입할 때, 그리고 그것에 감동하는 순간, 나는 그 누군가이고 그 뭔가입니다. 내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순간 경계는 사라집니다. 아니, 원래 경계는 없었습니다. 국경은 나라가 그은 선일 뿐 본래 대지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다른 경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삶에는 시인의 눈으로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은유로 표현해야 전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운율에 실어야 잘 들리는 것이 있습니다.

시는 경계에 피는 꽃입니다.

 

sw20130319.jpg

류시화 저,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문학의숲,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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