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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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전화 가능?’ 으로 시작된 문자는 몇 번의 통화시도 후 결국 실패로 끝났다. 난 수업 다니느라 그랬고 카페 사장님은 손님 맞느라 그랬고 서로 돌아가며, 각자의 이유로 어쩔 수 없었다. 그날은 그러니까 목요일 오후였다.
밤늦게야 문자로 마무리된 용건은, 내가 힘들어 보이니 금요일 하루를 쉬고 토요일에 나오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뜻밖의 제안에 난 그저 멍하니 몇 초간 정지 상태였다. 잠시 후, 그래 맞아 이런 방법도 있었구나 세상에나 난 왜 생각도 못했지 그나저나 내일이 며칠이지 빠져도 되나 약속한 일은 없었나 이런 제안 배려 뽀너쓰 진짜 완전 낯설다 어머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네 이를 어째 그냥 받아도 되나 고마워라, 그랬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진 생각들 속에서 미안했지만 휴식을 선택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고 생각만으로도 좋았다. 혼자만의 시간이라니.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타이밍이란 시간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 맞다. 진짜 선물! 우선 실컷 잤다. 밥을 조금 먹었고 책을 읽다가 또 잤다. 그러기를 반복했다. 잠도, 밥도, 책도, 나른함도, 게으름도, 멍한 상태도 정말 좋았다.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거대한 사회현상을 한두 가지 이유로 설명하려는 건 무모한 시도다. 작게는 지난 대선 이후, 아주 많은 것들이 예측 가능해졌다. 세상은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신자유주의 어쩌고 속에서 나는, 우리 가족은, 크게 잘못한 것 없이도 기약 없이 힘들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실은 없다는 사실. 그래도 살아가야 하고 그러다 어느 날 홀연 죽을 것이라는 사실. 죽음, 말고는 확실한 삶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조금 슬펐다. 하지만 곧 좋아졌다.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즐기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경험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하루의 휴가가 그랬다. 눈물 나게 달콤했다. 이는 내가 지금껏 맛보지 못했던, 휴일 없이 달려왔기에 맛볼 수 있는 단맛이었다. 이 또한 내가 원하는 삶이다. 그러니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놀다 보니 쉬다 보니 내 안의 나를 만나서 내 얘기에 귀 기울이고 정신을 챙기게 되었단 얘기다. 눈 뜨면 또 미친 듯 정신줄 놓고 살아가게 될 테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잘 살고 있었다. 아니면? 그럼 할 수 없고!
달콤한 배려를 선물한 카페 대표 마담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더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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