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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5일 06시 28분 등록
 

떨림으로 오는 먼 그대  

  

   카파도키아는 실크로드의 중간 거점으로 대상들의 교역로였으며 초기 그리스도교가 자리를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로마 후기에 널리 전파된 그리스도교는 황제의 탄압을 받았고 이를 피해 도망친 그리스도교도들은 계곡에 숨어살았다. 그런데 7,8세기가 되자 아랍 이슬람 세력이 침입하였다. 이들의 침략을 피해 수도원공동체가 지하 도시로 옮겨가서 1000년동안 수도원활동을 하였다.

  카파도키아에는 많은‘ 지하도시가 산재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카이막클르’와 ‘데린쿠유’가 규모가 크다. 데린쿠유가 개방된 지하 도시로는 가장 크다고 한다. 지하 도시로 들어서자,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깊이 55미터, 지하 20층의 규모이지만 공개하고 있는 부분은 8층정도로 극히 일부이다. 단단하지 않은 암석이었기에 사람들은 일일이 손으로 쪼아가며 동굴을 만들었고, 그 형태는 개미집의 형태와 흡사하여 미로로 연결되어 있다. 함께 예배를 보았던 홀과 빵을 구웠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와인을 만들기 위한 물통도 갖추어져 있다. 인간의 삶이란 지하라고 해도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등 지상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곳에도 학교도 있고 지상 도시에서 갖추어진 모든 것들이 있다.

   좁은 통로를 지나자면 때로는 몸을 작게 움츠려야 하고, 때로는 앉은걸음으로 걸어야만 했다. 동굴을 탐험하는 것 같았다. 화살표표지가 있고 길목마다 전등불을 밝히고 있어 그 길을 잘 따라만 간다면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 것 같다. 확실한 것은 화살표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것이다. 길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삶의 길목 길목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고 방황할 때가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이 환히 등불을 밝히고서 가르쳐주지만 진리에 가까운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만양 엉뚱한 데로 가고 싶은 것이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갔더라면 좀더 나은 인생이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미 내 마음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것은 운명이요 우주의 에너지가 그쪽으로 나를 몰아준 것이다.

  적이 침략했을 때 두꺼운 원반형의 회전문으로 통로를 막았는데 안에서는 열 수 있지만 밖에서는 절대로 열 수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 우리의 것과 흡사한 절구도 보았다. 죄인을 묶어두는 기둥이 있다. 만약 밀고를 하거나 배신을 때리면 그 죄는 엄청나게 크겠지. 거의 사형감이 아닐까 싶다. 어두컴컴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지하도시에서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종교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간 그들의 신앙심은 고귀하다. 지하도시에서 그들은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구원해준다는 것을 굳게 믿었을까?

    인도의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신에게는 귀가 없었다. 신은 듣지를 못했다. 그러나 고통에 빠진 인간이 절규하자 신은 마지못해 억지로 인간의 불행을 들어줄 귀를 만들어 냈다.”

  신이란 인간의 뇌와 마음이 고안하고 창안한 것이기에 그에겐 본래 인간을 향해 어떤 마음도 열리지 않는 다는 의미일까? 신에게 바치는 기도는 나의 말 좀 들어달라는 애원이다.

   날마다 떠오르는 찬란한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지상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보지 못한 채 오로지 신앙심 하나로 버티어 낸 그들은 행복했을까? 어떤 이는 자신의 가슴에 살아있는 신에게 기도하면서 황홀감을 느꼈을 것이며, 어떤 이는 서러운 마음에 터져 나오는 슬픔과 한탄을 쏟아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요란하게 오는 존재도 아니요, 화려하게 오는 그런 존재도 아닐 것이다. 어느 시인은 ‘하느님은 한줄기 떨림이며, 조용한 눈물 한 방울이다’고 했다. 지하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겐 신은 기도 속에서 가녀린 떨림으로 다가오는 존재이며 조용히 눈물 한 방울 달고 오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나에게로 오는 신도 그런 신이었으면 좋겠다. 눈물 한 방울 달고 나서 내 얼굴의 눈물을 닦아 주는 신, 조용히 내 마음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그런 신이었으면 좋겠다. 

  낮게 엎드려 숨죽이며 살았던 지하도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은 진정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떨기 수풀’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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