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 조회 수 2329
- 댓글 수 4
- 추천 수 0
너의 미궁으로 들어가라
엄마가 와서 옆에서 주무시고 있다. 예단으로 보낼 시어머님 이부자리를 보려고 오셨다. 엄마는 서울은 그렇게 안한다는 데도, 경상도 식으로 여름 홑이불, 간절기 이불, 겨울 이불을 샀다. 그리고 내가 쓸 이부자리를 새 것으로 사주셨다. 평생 한 번은 이런 이불을 한다고 하면서. 엄마는 당신이 외할아버지한테 받은 혼수 이불 이야기를 하셨다. 옥양목 저고리를 반듯이 다려입었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제사를 지내고 식구들의 살림을 살았던 열일곱 소녀는 스물한 살에 혼인했다. 엄마의 된장 간장 김장은 열일곱부터 담기 시작한 것들이다. 그 딸을 시집보내려고 화전민 외할아버지가 이태 동안 목화 농사를 지었다. 그 솜을 가지고 같은 동리로 시집 가 살던 둘째 이모가 와서 꿰맸다. 혼수이불을 갖다 줄 때는 한 번도 안 쉬어야 잘 산다고 거의 15km를 한 참도 안쉬고 둘째이모부가 지게로 지어다 한 나절 걸어서 옮겨 주었다고 했다. 둘째이모부가 아들을 낳은 후라서 맏며느리로 시집가는 처제의 혼수이불 지게를 맡을 수 있었을 거다.
금붙이를 지녀야 잘 산다고 엄마는 그의 금목걸이를 만들어 오셨다. 그걸 수저세트를 넣어두었던 통에 넣어서 수건으로 똘똘 말아 싸서 오셨다. 손가방을 한번 내려놓지 못했을 거다. 금목걸이보다 엄마의 그 단도리에 눈과 마음이 더 갔다. 땅사는 마음으로 네 이불을 산다는 마음을 알 것 같다. 엄마는 '딸이 요거 하나라서요' 이불장수를 빙자해 간접적으로 애정을 드러내신다. 저게 엄마의 방식이다. 그의 어머니도 나를 불러 계를 해서 마련한 금을 주셨다. 쌍가락지와 팔찌를 만들라고 하셨다. 조선시대 같으면 손자볼 나이에 첫 혼인을 하는, 얼굴 꽃이 지기 시작하는 늙수그레 신부인 나는 짐작한다. 증여되는 것은 돈만이 아니겠다. 양가 어머니들이 주신 건 금만이 아니라 똥도 있을거다. 그는 내가 엄마와 맺은 관계를, 나는 그가 어머니와 맺은 관계를 싸서 각자에게로 온다. 그동안 엄마를 향했던 것들을 그를 향해 투사할 거고, 그는 나에게 보내겠지. 모든 걸 싸짊어지고 나는 그에게로 가고, 그는 내게로 오겠지. 혼인서약은 내가 사람과 맺은 가장 중요한 계약, 약속이다. 인제 부모님보다 우선순위가 높고 가까운 사람이 서로에게 생긴다. 꽃길과 후미진 오솔길을 같이 걷겠구나.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가 퇴근하고 바로 왔다. 나는 그의 옆이 아니라 엄마 옆에 앉았다.스물한살부터 40여년 남편과 같이 살고 같이 일하던 엄마는 식당에 혼자 앉아 있으니 불편해하셨다. 그가 부지런히 집게질을 해서 고기를 구워 잘라놓는다. 엄마하고 나는 핏빛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엄마는 유명한 맛집 식당에서 먹는 소고기보다 집에서 내 손으로 정성들여 차린 밥과 찌개가 있는 소박한 상차림을 원하셨다. 진짜 살림 시작한 뒤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엄마와 아주 오랜만에 같이 잔다. 답답한 걸 싫어하는 엄마가 가에 눕고 내가 안에 누웠다. 누우면 바로 잠드는 나는 엄마와 이야기할 틈 없이 자버렸다. 엄마가 내 손을 잡았던가? 그랬던 것 같다.
2013년 3월 25일. 제목 : 미궁 초입으로 무사히 왔다.
일행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총알을 가진 저격수가 매복해있다. 엄호를 받는다. 우리가가야 할 왼쪽은 산토리니처럼 흰색 건물이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언젠가 와본 적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들어가 있었지. 기어서, 허리를 구부려서, 뛰어서, 다리를 절며, 걸어서, 달려서 간다. 그런데 멈춘 이도 있었지. 돌처럼 몸을 말고 어떤 이는 웅크려 있거나 태아처럼 누워 있었지. 거긴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그림과 비슷했다.
일행은 열 명 안팎이다. 일행의 얼굴과 성별은 알아볼 수 없다. 내가 유심히 보고 있는 건 장애를 가진 아이 한 명이다. 열 한 살 남아다. 이름이 입에서 맴돈다. 태어날 때 탯줄이 목에 감겨 뇌에 산소 공급이 안된 시간이 길어서 장애를 입게 되었다. 장애등급 1급. 평생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의미. 그 아이가 오른쪽 건물에서 왼쪽 건물의 입구로 다 올 때까지 초긴장을 한다. 그 아이는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느릿느릿 웃으면서 걸어왔다.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우리 일행이 다 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구본형사부님이 건너와야 한다. 그가 우리를 엄호하던 대장이었다. 그런데 총 소리가 2방 들렸다. 너무 놀라서 심장 뛰는 소리가 깨어질 듯 들린다. 나는 알고 있었다. 총소리가 누구를 향한 것이었든, 그걸로 무슨 일이 일어났든 뒤돌아보지 말고 지체없이 그 미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걸, 그건 나의 길임을. 나는 미궁 입구를 쳐다본다. 두려움과 설레임이 같이 올라온다.
엄마는 누워있다. 아마도 나보다 잠이 일찍 깨었을 거다. 테레비도 안나오니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누워 계셨을 거다. 엄마는 꼼꼼해서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안심하지 못하는 성미다. 걱정거리가 있으면 꼬박꼬박 밤을 샌다. 태풍이 불면 아버지는 단도리를 해놓고 내일 할 일이 많으니 잠을 자두는 느긋한 성격이고 엄마는 전혀 못 잔다. 바람에 허옇게 낙과해서 고랑에 누운 사과를 보면서 속이 쓰라리다 했다. 강원도로 직장을 구해간 막내동생이 5천만원 전세방을 뺐는데 이틀이 지나도 송금을 안하면 잃어버렸나 도둑맞았나 걱정을 하면서 전전긍긍한다.
엄마는 신혼집으로 얻은 집을 처음 보신다.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옷장, 씽크대를 다 열어보셨단다. 살림살이 점검이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주말 동안 싹 버리고, 정리를 했다. 엄마맞이 대청소다. 수건은 다 헌거네 새 것 좀 보내 줄까? 김치 군둥내 나는 건 다 쏟아버려라, 너무 어둡지는 않나, 변기의 누렁 자국은 솔로 밀면 밀리는데 왜 안 밀었냐? (당신이 밀었다.) 거실이 너무 깜깜하다, 담에 집을 사서 이사갈 때는 낮에 가서 집을 보고 꼭 남향집에 살거라. 늦었어도 아이 하나나 둘이나 낳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뜻대로 되어야 말이지. 나는 '나도 그거 걱정되어서 저사람한테 아이 없으면 어떻게 할거냐 물었어요. 둘이서 재미있게 살면 된다고 해서 결혼해요.' 말했다. 인제 밥도 고슬고슬 잘 하고, 청소도 잘 하고, 빨래도 싹싹 해치우고, 쓰레기도 안 쌓아두니까 안심이 된다 하신다. 할머니두레반은 세워두고 네 식탁을 사라. 어느 집이나 겉보기에는 알 수 없는 걱정거리가 다 있다. 다 자기가 감당해야할 몫이다. 엄마는 지나가면서 이것저것 이르신다. 80 넘은 노할머니들이 관광버스 타고 오신댄다.
어제 나는 식물을 배송받았다. 뱅갈고무나무, 넉줄고사리, 분홍과 하양 제라늄, 꼬마 율마, 미스김라일락, 헤베 화분들을 빛 잘드는 방에 놓았다. 한라겹수국과 아레카야자, 오렌지자스민이 더 올거다. 크하하하하! 생각만으로도 입맛이 다셔지고 함박웃음이 난다. 우리집 현관에다가는 겨우내 품고 있던 관음죽과 무늬천리향을 내놓았다. 식물 배달을 왔던 이가 "과습이네요" 한다. 이해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데 내가 너희들한테 물을 퍼먹여 죽이는구나. 새로 들어온 것들을 요리조리 놓아보고, 돌려보면서, ‘드디어 식물이 왔다’ 며 그를 잡고, 엄마를 잡고 몇 번이고 재잘거리며 웃어대는 나를 보면서 둘 다 귀여워하는 눈치다.
아침에 엄마는 된장국을 끓여주고, 김치통을 싸들고, 출근하는 나를 따라 나서신다. 전철역까지 와서 헤어졌다. 나는 시칠리아 여행 때 사온 터키과자를 이제야 드렸다. 그 때는 내가 삐져 있어서 못드렸다. 엄마가 탄 전철을 보내고 나니 차비를 못 드렸다. 멀어지는 전철 꽁지를 물끄러미 본다.
이번 칼럼이 연구원 일정의 공식적인 마지막이다. 나는 근 한 달 동안 땡날림 허여멀건 북리뷰에 부실야매 칼럼을 냈다. 학교를 옮기고 나서, 이사를 하고 나서 복잡해졌다. 저 꿈을 꾸고 일어나 꿈이야기로 칼럼을 마무리할 작정을 했다. 꿈 속에서 저격수에게서 나를 엄호하던 대장이 뒤에 남았다. 그래도 가야 했다. 그게 대장도 바라는 일이었다고 느꼈다. 우주선을 성층권으로 쏘아 올린 엔진은 제 궤도에 이르면 분리된다. 꿈속의 죽음은 '성장'과 '개혁'을 의미한다고 했지. 총소리를 나는 그렇게 읽었지. 대장은 지금 급격하고 엄청난 성장 중이다. 내 꿈 속의 인물이나 사건은 모두 나의 것이기도 할테지. 그럼 나도 성장 중이다.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나 스승님 대장이 하라는 대로 하길 원하며 살아왔다. 꿈은 나에게 제안한다. 네가 의지하던 대장은 뒤에 남는다, 네 길을 네가 가라, 네 힘을 끌어내 쓰면서 스스로 가는 게 너에게 커다란 성장과 개혁이 될거다. 내 쪼대로 읽는다. 뭐 어때, 내 꿈이니 주인 맘대로 할란다. 나의 미궁이 연구원2년차 작가의 길인지, 결혼인지, 특수학교에서 새로 쓰기 시작하는 특수교사 이력인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이제 나의 미궁으로 들어가야 할 때다. ‘콩두씨를 사랑합니다. 언제나 언제나 언제까지나 우리가 옆에 함께 있습니다.’며 나를 안심하게 하는 여러 님들의 동행과 가호를 빈다. 첫 발 뗀다. 출발!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432 |
마음을 이어주는 이야기 ![]() | 한젤리타 | 2013.04.01 | 2727 |
3431 | 고대 히타이트인들은 기록의 달인 [3] | ![]() | 2013.04.01 | 4376 |
3430 | 안타까운 죽음들 [2] | 용용^^ | 2013.03.25 | 2191 |
» | 너의 미궁으로 들어가라 [4] | 콩두 | 2013.03.25 | 2329 |
3428 | 그냥쓰기#10_삶은 진행형일까. [1] | 서연 | 2013.03.25 | 2315 |
3427 | 인간은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1] | 학이시습 | 2013.03.25 | 2620 |
3426 |
닥치고 실행. ![]() | 샐리올리브 | 2013.03.25 | 2576 |
3425 | 청소년에게 진로란 | 세린 | 2013.03.25 | 2880 |
3424 | 떨림으로 오는 먼 그대 | ![]() | 2013.03.25 | 1906 |
3423 | 오늘 날이 밝았다. | 레몬 | 2013.03.25 | 2393 |
3422 | 뮤즈를 만나다. | 한젤리타 | 2013.03.24 | 2498 |
3421 | Climbing - 2. 유(柔)는 강(强)을 제압한다 [1] | 書元 | 2013.03.24 | 2028 |
3420 |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해결했는가? [6] | 레몬 | 2013.03.19 | 9169 |
3419 | 할머니두레반과 엄마콩나물시루 [4] | 콩두 | 2013.03.18 | 2418 |
3418 | 어느 중소 기업 사장님 과의 대화 [2] | 학이시습 | 2013.03.18 | 2841 |
3417 | 스스로가 미울 때는 떠나야 할 때 [6] | 용용^^ | 2013.03.18 | 2349 |
3416 |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 | 샐리올리브 | 2013.03.18 | 2335 |
3415 | 그냥쓰기#9_삼년만의 외출 [6] | 서연 | 2013.03.18 | 2401 |
3414 | 수학책을 쓰는 꿈 강사의 고민 [4] | 세린 | 2013.03.18 | 2365 |
3413 | 아내의 보물상자 [6] | 한젤리타 | 2013.03.18 | 24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