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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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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6일 06시 55분 등록

남자의 로망 중 하나로 오디오가 꼽힙니다.

전 클래식이나 경음악, 월드 뮤직을 좋아하는데 아이 동요를 듣는 휴대용 CD플레이어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집도 좁았고 아이는 어려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하랴는 열정이 타오르더군요.

중고사이트와 스피커, 오디오 쇼핑몰을 들락거렸습니다.

그런데 상승세를 탈것으로 예상했던 펀드는 반토막이 났습니다. 아이가 크며 이것저것 들어갈 돈이 많아졌구요.

괜찮은 컴퓨터용 스피커를 사려고 했으나 활용도가 떨어졌고, 중고 앰프를 사려니 그마저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때 번뜩 드는 아이디어가 있었으니 20여년 전 짠돌이 아버님이 큰 맘 먹고 사신 국산 오디오가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고장이나 서울 동생 방에서 TV 받침대로 쓰이는 오디오.

이 오디오는 CDP판을 플레이어에 넣고 TV를 연결하면 노래방 기기로도 쓸 수 있는 녀석입니다.

아버지는 친구도 많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손님들이 오시면 오디오는 노래방 기계가 되곤 했지요.

아무래도 아버지의 로망은 음악 감상 보다는 마음껏 노래 부르고 노는 것이었나 봅니다.

 

아버지께 이 오디오를 접수한다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십니다.

어차피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애물단지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우선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일단 CD플레이어는 동작을 안하고, 스피커는 유닛이 다 삭아 건드리면 '두두둑' 피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서비스센타를 찾아가 거금을 주고 CD 플레이어를 고쳤습니다. 아직까지 서비스센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오디오를 어렵게 집으로 옮기고 보니 이제는 스피커 소리가 안나 서비스센타 기사님을 불러 다시 수리하고 설치까지 새로 했습니다.

 

인켈 RV-6010R 앰프에, LDA-7500R 플레이어, EQ-6010C 이퀄라이져, 스피커

기사님이 말씀하시길 오래되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조합이라고 하셨습니다.

원목으로 CD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수리비가 좀 들었지만 뿌듯했죠.

 

 

s_오디오.JPG
 
 

오디오는 그 뒤로도 몇 번 기사님의 손길을 거쳤으나 센터 스피커는 먹통이 되었고 이퀄라이져도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저에게도 애물단지가 된 것입니다. 그래도 이 오디오를 보면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 버릴 수가 없습니다.

가끔은 잘 나오기도 하고요.

 

 

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친구들과 가족 동반으로 놀러가 술마시고 노래하며 노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저와는 다르게 당구에 카드게임이며, 바둑 등 잡기에 능하셨지요.

그런 아버지는 십여년 전 오십대 중반에 협심증으로 심장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그 뒤로는 뭔가 힘이 빠지신 듯 활기를 잃어버리셨습니다.

아직도 주무실 때 가슴이 허전해서 심장 위에 배개를 얹어야만 잠이 든다는 말씀을 들을 때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에게 이 오디오는 춤추고 노래하는 활기찬 아버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삶에 대한 열정과 쾌락으로 충만했을 아버지의 청춘이 떠오릅니다.

남자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강인함과 자신감을 아버지한테서 얻지요.

무의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에게 소속되고 싶은 강한 열망이 이 오디오를 통해 충족됩니다.

 

가족치료사 버트 헬링거는 "부모는 주고 자녀는 받는다"고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부모는 자녀에게 생명을 주었지요. 생명을 주었는데 무엇을 못 주겠습니까.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이든지 주게됩니다. 대개는 좋은 것을 남기려 하지요.

한 번 생은 너무 짧기 때문에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이것을 '유산'이라고 합니다.

자녀가 태어난 것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부모가 주는 것을 자식은 기쁘든 싫든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자녀의 책임입니다.

이 유산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저에게 남은 숙제인 것이지요.

 

나는 아버지의 오디오를 고쳐가며 음악을 들을 것입니다.

아무리 무거워도 이사다닐 때마다 이고 갈 것입니다.

아무리 시끄럽다고 끄라고해도  어떻게든 들을 것입니다.

가끔은 좋아하는 새음반도 사고 먼지도 닦으며 아버지를 느낄 것입니다.

아들에게 무엇을 줄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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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6, 2013 *.252.144.139

우리집에서 LP판 돌리는 고물 오디오 있었는데.

버리고 나니 아까운 생각이 드네.

스피커도 엄청 큰 거였는데.

LP도 몇 장 있었는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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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6, 2013 *.11.178.163
저희도 집에 그런 게 있어요. 아버지께서 남진 노래를 좋아하셔서. 한때는 제가 테이프 좀 들었는데, 지금은 따로 살고 있으니. 지금은 어머니께서 기독교방송 라디오만 계속 듣지요.

부모님께 받은 것중에는 흥겨운 노래와 장엄한 노래를 좋아하는 것도 포함시킬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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