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신을 상징하는 황소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안에 작은 카페가 있어 향긋한 커피향이 관람객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아픈 다리도 쉴 겸 해서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몇몇 젊은이들은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박물관이 주는 딱딱함을 없애고 미술관같이 아늑한 분위기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히타이트유물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을 ‘히타이트박물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히타이트인들이 살았던 지역은 오늘날 인류 문명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터키가 자리하고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이다.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아나톨리아반도는 고대의 다양한 인류 문명이 발생한 곳으로 소아시아라고도 불린다. 아나톨리아 지역은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다양한 인류 문명의 역사가 남아 있어 전국이 문명박물관 같은 곳이다. 이 땅은 고대 히타이트제국으로부터 시작하여 비잔틴제국, 오스만 터제국 등 3대 제국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아나톨리아를 ‘제국의 땅’이라고 부른다.
카페 바로 옆 공간엔 차탈회웍의 신전을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신전의 한 벽면에는 커다란 뿔이 달린 황소머리 3개가 달려있으며, 다른 벽면에도 황소머리를 달아놓았다. 황소는 하늘의 신을 상징한다. 신전 앞에서 제의를 올리기 전의 한 풍광을 상상해보았다. ‘왕과 왕비는 숭배하는 황소상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서있으며, 그 앞에 제물로 바칠 동물들이 놓여있다. 제의를 집도하는 제사장은 한 쪽에서 불을 피우고 있으며,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도 대기상태에 있다.’ 차탈회웍의 신전 앞에 서니 절로 경건해 진다. 이것이 신전 혹은 사원이 주는 의미인가 보다.
히타이트인들이 숭배하는 신은 태양, 달, 산, 지하의 남자신들과 여자신들은 기본이고 심지어 각종 병의 신들도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신으로 삼아야했을 만큼 그들의 삶은 불안했을까? 아니면 영원히 잘 살겠다는 그들의 욕망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믿는 신들이 너무나 많아서 히타이트인들을 ‘천의 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도 부른다. 수많은 신들을 숭배한 만큼 제사의식을 위한 도구들도 다양했을 것이며, 특히 동물형상이 있는 도기를 많이 남겼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뿔 달린 황소 두 마리가 있다. 황소 형상의 붉은색 도기는 높이가 90센티미터로 머리에 있는 뿔은 풍우신 ‘테슙’을 상징한다.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뻗어있는 뿔이 바람과 비를 관장하는 신을 상징하고 있다니, 멋진 발상이다.
알라자회웍에 있는 왕묘에서 발굴된 ‘사슴과 황소상이 있는 태양원반’은 아나톨리아 청동기 문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사슴뿔은 태양을 상징하는 원반보다 더 높게 솟아있고, 사슴상 양옆에는 황소상이 새겨져 있다. ‘사슴과 황소상이 있는 태양원반’은 종교적인 재사를 지낼 때 사제가 제단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지금은 박물관의 진열관에 있지만, 고대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조각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면서 기원을 했을까? 다행히도 이 조각상은 앙카라 시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히타이트인은 기록의 달인
히타이트인들은 자신들의 말을 글로 적기 위해 먼저 쐐기같이 생긴 설형문자를 사용하였다. 설형문자를 처음으로 쓴 종족은 수메르인이지만 기원전 3000년경 후반에는 다른 중근동 종족들도 자신들의 언어와 함께 수메르인들이 남긴 설형문자를 사용했다. 설형문자는 갈대나 금속으로 만든 펜으로 점토 위에 썼고 필체가 딱딱한 쐐기 모양으로 되어 있어 쐐기문자라고도 한다.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에는 크고 작은 여러 점토판들이 전시되어 있다. 점토판은 사각형으로 앞과 뒤가 있고 쐐기문자로 빽빽하고 정교하게 기록되어 있다. 히타이트인들이 남긴 역사 자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점토판이다. 히타이트 점토판은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쪽수가 다 갖춰진 책이 아니라 쪽수가 여기저기 찢겨나간 책과 같은 형태로 남아있다.
왕실에는 서기관이나 필경사가 있어 많은 부분들이 글로 남겨지게 된다. 필경사는 조약문이나 외국의 왕과 속국의 왕에게 보내는 히타이트 대왕의 편지를 새기고 대왕의 중요한 공적을 기록하고 종교적이고 법률적인 문서들의 기록을 남겼다. 점토판의 대부분은 주로 하투샤의 페허에서 발굴되었고 특히 신전에서 3만 개가 발굴되었다.
히타이트인들은 마치 도서목록처럼 점토판의 내용은 무엇이며 몇 개의 점토판으로 구성되었는지 분실되었을 경우 몇 번째 점토판이 분실되었는지를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원본이 파괴되거나 분실되는 상황에 대비하여 복사본도 여러 개 만들어주었다. 지금부터 수천 년 전에 복사본을 만들어놓을 생각을 한 히타이트인들의 높은 식견과 철저함에 놀랐다. 컴퓨터에 저장되어있는 파일을 복사해 놓거나 외장하드에 저장해놓으면 되는데 그것도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그러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파일을 날려버린 적이 몇 번 있는 터라 복사본을 만들어놓은 그네들의 세심함에 감탄한다.
몇 해 전에 ‘메모의 기술’에 관한 책이 열풍처럼 번졌다. ‘메모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등의 선전 문구가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다. 메모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듯이 이상한 열풍으로 몰아갔는데, 이미 히타이트인들이 메모의 달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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