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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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야기>는 <성서>와 함께 서양 문화의 두 축을 이루는, 천지창조에 관한 대서사시입니다. 서양 중세 문화는 기독교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그 만큼 이 책은 아직 기독교에 물들지 않은 서양 고대의 인식 체계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작가와 시인과 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 창조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우리 일상에서도 신화의 모습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물과 자연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상상력으로 신격화하고 의인화하여,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변신이야기>를 읽으면서 주변의 모든 자연현상들이 신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신화의 세계는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찾으려고 노력하면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모든 모순과 선악을 품고 있어 자신의 기준대로 세상을 왜곡되게 바라보며, 그 기준 안에 갇힌 채 살아갑니다. 하지만, 신화는 선악을 넘어선 자연과 우주를 담아내고, 왜곡되기 전 인류의 원형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던 아득한 때와 사람이 살게 된 시대 사이에 가로놓인 긴긴 세월을 일시에 뛰어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신화의 세계를 발견한 곳은 나의 첫 직장이었던 폐수처리장이었습니다. 인간 욕망의 찌꺼기들. 먹고 마시면서 배설되는 모든 것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똥 1g 속에 1조에 달하는 미생물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한 미생물을 분해하기 위해서 저는 또 다른 미생물을 키웠습니다. 그들은 서로 먹고 먹히면서 덩어리가 되고, 물 속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아래로 내려온 찌꺼기를 빼내면 윗물이 깨끗해지는데, 이것이 똥이 물이 되는 원리입니다.
그리스의 전설에 따르면, ‘듀칼리온(프로메테우스의 아들)과 ‘피라’는 그들의 뒤에 자갈을 던져 인류를 퍼뜨렸다고 하는데, 이는 똥누는 과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폴리네시아의 사모아인들은 “우리는 신이 싼 똥이다.” 라고 스스로를 신의 똥에서 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천지창조에 대한 똥에 대한 이야기는 수 많은 민족들에게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게오르크 그로데크의 <그것에 관한 책>에서는 인류탄생의 비밀이 똥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아담은 여호와가 그의 코 안에 불어넣어준 입김으로 생명을 얻었다. 무언가 냄새 나는 것이 아담에게 생명을 얻었다. 무언가 냄새 나는 것이 아담에게 생명을 준 것이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 수 있다. 태고의 신은 인간을 자신의 ‘똥덩이로’ 만들었고, 흙이란 말은 똥덩어리 대신 품위를 지켜 쓴 것이다. 생명을 불어넣은 창조자의 입김은, 바로 똥덩어리가 나오는 그곳에서 나온 바람이다.”
똥 속의 미생물들은 인류와 신화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극미의 세계에서 존재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 현실과 정반대의 세계입니다. 아마도 인류는 보이지 않은 그들의 존재를 자연 현상, 생명순환을 통해서 의식했을 것입니다. 분명 보이지 않는 세계의 생명체들이 인류를 움직이고 있다고 말입니다.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은 ‘이 시간의 장(場)에 있는 모든 것은 이원적이다. 대극이 있는 곳이다. 과거와 미래가 그러하고,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가 그러하다.’ 라고 말했습니다.
현미경 렌즈 뒤에 눈을 대고 아래로 내려다 봅니다. 한 손으로 초점을 맞추면 희미한 움직임이 보이면서 조금씩 선명해 집니다. 불빛을 환하게 비추면 유리판 위의 미생물들을 투명하게 속까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제가 신이 된 것 같습니다. 신 또한 광활한 우주 너머에서 나를 보고 있을 않을까? 누군가 저를 투명하게 훤히 들여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깐 나 또한 미생물처럼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 많은 고민들과 아옹다옹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갑자기 우스꽝스러워 보입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태어나기 이전, 의식이 존재하기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가 원형 속의 나를 발견합니다.
지금 제가 현미경을 통해 미생물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은 보이지 않은 세계까지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것입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창조하고 자신의 시(時) 속에 그리스 신화를 보여준 ‘호메로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장님이라고 합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꿰뚫어보고 말 한마디의 표현으로도 한 인간을 살아 움직이게 했습니다. 보이지 않은 세계를 시적 이미지로 승화시켜 신화의 세계를 창조해냈습니다. 17세기 프랑스 수학자이자 사상가인 파스칼은 ‘오직 보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충분한 빛이 있고, 이와 반대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충분한 어둠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유기물과 세균들을 순식간에 집어 삼켜버리는 그들의 원시적 움직임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최초 혼돈의 생존경쟁에서 자신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인간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내 몸 속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며, 다시 세상으로 배설되는 것은 우리에게 ‘살아 있음’의 증거입니다. 자 그럼, 똥 속 미생물 세상이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와 얼마나 닮았는지, 그들의 삶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2.
그리스 신화에는 혼돈시기의 생명 창조를 ‘물과 불’ 두 가지 요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홍수가 지나간 뒤 대지에 덮었던 진흙이 하늘에서 비치는 태양의 그윽한 열기로 다시 더워지자 이루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생명을 지어내었다. 대지(가이야)가 산 것 중에서 크기로 치면 으뜸이 될만한 ‘왕뱀퓌톤’을 지어낸 것도 이때였다”(변신이야기, 이윤기 옮김)
폐수처리장에 들어오는 똥 덩어리 속에는 수 많은 미생물이 존재합니다. 산소와 먹이(유기물)가 공급되는 양에 따라서 그들은 매 순간 죽고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처음에는 Aeolosoma 같은 거대한 몸집의 미생물들이 활동합니다. 신화 속 혼돈 시기에 태어난 ‘왕뱀 퓌톤’처럼 주변의 생명들을 순식간에 먹어 치웁니다. 삼킨 유기물과 세균들이 분해되는 모습을 현미경에서 투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왕뱀보다 몸집이 작은 Macrobiotus 가 나타납니다.
Macrobiotus 은 수십 개의 알을 품고 다닙니다. 이 모습은 그리스 신화에서 자식을 잡아먹는 아버지 ‘크로노스’과 닮았습니다. 크로노스가 자식을 삼킨다는 것은 ‘시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것을 소멸시켜 버리는 잔혹한 자연의 진리’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크로노스는 ‘시간’, 즉 세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아들인 제우스의 꾀임에 넘어가 삼킨 자식들을 모두 토해내고 크로노스는 무한지옥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지만, 또 모든 것을 삼켜버립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해 고속철처럼 거침없이 질주해간다. 과거는 사라져갈 뿐이고, 미래는 낯설고 먼 것이다. 현재는 끔찍하리만큼 단명하다’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좀 더 주변 환경이 안정이 되면 고착형 미생물인 Opercularia 이 출현합니다. 그들은 유기물 덩어리에 붙어서 자랍니다. 한 곳에 몸을 고정시키고 지나가는 먹이를 끊임없이 빨아 들이고, 시간이 지나면 수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 모양이 됩니다. 마치 신화 속에 암소로 변한 이오를 지키는 눈이 백 개 달린 아르고스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이오를 감시하던 헤라 여신의 망꾼 아르고스는 메르쿠리우스의 피리 소리에 잠이 들고 백 개의 눈은 모두 감겨버립니다. 메르쿠리우스가 초승달 모양의 칼을 뽑아 목을 베어내자, 백 개의 눈은 빛을 잃고 어둠에 묻혀버립니다. 헤라 여신은 이 눈을 수습하여 자기 신조(神鳥)인 공작의 깃과 꼬리에다 달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공작의 깃과 꼬리는 지금도 별같이 빛나는 보석이 잔뜩 박힌 듯합니다.
아르고스의 수 많은 눈들을 그저 공작의 꼬리깃털 장식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많은 눈이 있어도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다면 소용없습니다. 현미경 너머의 저의 눈을 어떨까요? 보여지는 것에 쉽게 현혹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합니다. 저의 마음 또한 외적인 이미지에 갇혀 살았던 것입니다. 잠시 두 눈을 감아 봅니다. 가슴을 열고 내 안으로 들어가 나의 존재를 느낍니다. 그 때 비로서 마주하고 있는 Opercularia 와 저는 사실은 하나인 둘의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먹이와 산소가 균형이 이루어지는 시기에는 Aspidisca가 나타납니다. 폐수처리가 정점에 다다른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의 존재는 곧 깨끗한 물을 볼 수 있는 신호이며, 상징입니다. 그 동안 온갖 욕망의 영혼들과 싸워서 이긴 승리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롭게 유영하며 먹이를 찾아 다닙니다. 그는 혼돈과 고난의 시간을 이겨낸 영웅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그의 모습을 기다렸습니다. 저는 그와 무언가 통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혹여 아프거나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그의 존재는 나의 광휘이고 에피파니(환희)였습니다.
자유롭게 유영하는 Aspidisca
현미경 유리판 위의 미생물은 뜨거운 빛으로 서서히 수분이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립니다. 그들의 삶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순간의 단편들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순간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현미경을 보고 있는 저는 원초적인 존재들의 광대무변한 힘을 느낄 뿐입니다. 비록 필멸(必滅)의 운명이지만 혼돈 속의 탄생, 존재의 몸부림, 고난을 이겨낸 영웅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매 순간 신화를 만들어 내고, 우리에게 신화는 언제나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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