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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1일 00시 34분 등록
안녕하세요.
그동안 많은 글들을 통해서 함께 공감하며 느끼기만 하다가 직접 글을 올리기는 처음인것 같습니다. 조금은 떨리고 집안의 가정사를 속속들이 올린다는것이조금은 부담스럽지만 도움을 받고자 글을 올립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조금은 긴글이 될것같으며,많이 말주변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도 많은 조언해주신다면 삼가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인천에서 살고있는 30살의 직장인 남성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서 부터 집안사정이 편안하지 않고 어려운 형편이였던지라 생활력은 스스로 습득하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현재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고 있으며 회사 출근뒤 저녁에는 어학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우유배달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위함은 두번째이고 저 자신의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 채찍질하기 위해서 입니다.

저의 집안의 가족관계는 아버지,어머니,저,여동생이며 어머니와 여동생은 따로나가 산지가 10년정도 되었습니다. 현재,아버지와 제가 함께살고 있었지만 저역시 아버지로 부터 분가 한지가 올해 2월 입니다.

아버지께서는 42년생으로써 올해 65살 되십니다. 장남인 저를 늦게 보신편이지요.
어머니를 만나기 이전에 어버지께서는 이미 결혼하여 자녀를 둔 가정이 있는 분이십니다. 어버지 말씀으로는 당시의 풍습으로는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만나면서는 이런부분들을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후에 이런 사실을 알고나서는 어머니는 굉장히 마음 깊숙히 상처로 담아놓으셨고 어머니는 동생과 따로 나가살기 직전까지도 동거인으로 호적에 남아있어야 했습니다.

저역시 초등학교때 학교에서 호적조사를 위해 등본을 떼어오라고 하면 동거인으로 올라있는 어머니의 이름을 굉장히 창피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호적관계를 부인의 이름으로 올라가게끔 어머니 께서는 요구하셨으나 아버지께서는 어쩐이유인지 깔끔하게 처리하시질 못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도 이런부분들이 마음속 깊이 앙금이 되었던듯 합니다.

어쨋든 어머니와 함께사는 생활사이에서도 호적상의 부인과의 관계도 계속되었고 어머니는 3번의 유산끝에 저를 첫재아이로 낳으셨고 아버지와 본처와의 사이에서도 저와 동갑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거인으로 계속 지내왔으나, 어머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같은 것을 마음속에 담아놓으며 생활해 오고 계셨습니다.

부모님 젊은날엔 강원도에서 작은슈퍼를 운영하셨는데,말이 슈퍼지 작은 구멍가게 같은 규모였습니다.
아버지는 젊으날 술과여자를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여동생을 임신한 만삭의 어머니가 가게를 보시다가 나에게 아버지 데리고 오라고 하면 언제나 술집에서 거나하게 취하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곤 술집의 아줌마들에게 작은엄마라고 부르라고 시키던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있습니다. 아무튼 저에게 아버지의 젊은날의 모습은 그런 기억들입니다. 물론생활력면에서는 어머님은 상대적으로 필사적이였던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에 와서도 어머니에게 연민을, 반대로 아버지에게는 반항과도 같은 적개심을 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활의 개선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머니는 여동생을 데리고 제가 8살무렵에 서울로 떠나셨고 아버지와 저도 여러 수소문 끝에 어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와서 터전을 잡고 있자 어린아들을 떼어놓는 것에 마음이 여려져 다시 합치셨고 생활을 해왔습니다.

서울생활동안은 아버지는 경제력있는 아버지는 아니셨으나 강원도의 삶같은것은 아니였습니다. 아파트 경비직을 하고 계셨는데,문제는 제가 10대후반무렵에 들어간 아파트에서 경비원들 사이에 그 아파트의 어느 여자분과 정분이 나고 있다는 소문이였습니다. 어머니의 귀에까지도 돌고돌아 들어갔고 그 여자분은 부녀회장을 맡고있는 과부녀였던가 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간직되던 폭탄같은 것이 이로인하여 도화선이 되었는지, 여동생을 데리고 다시금 나오셨고 당시 20살이 되었던 저는 여러모로 할수 있는만큼의 노력을 하였으나, 돌아선 어머니의 마음을 돌이킬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부모님 두분이서 서울로 이전하여 다시 합친뒤 작은 소득을 아끼고 아께서 인천에 작은 빌라를 아버님 명의로 장만하였으나 어머니께서는 여동생을 데리고 옷가지만 가지고 나간 상태였습니다. 20살의나이에 다시금 이런일을 겪는다는게 아직 10대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채 가시지 않은 만큼 힘들고 여려운 시기였습니다.

과부녀에 대한 부분은 소문인 것으로 믿고싶으나 개인적으로 어머니가 나가고 난 다음날 갑자기 그 과부녀가 집에 들이닥쳐서는 집안일들을 걱정하며 집안에들르는 일들이 많아지며 저는 굉장히 마음적으로 불편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릴때부터 아버지께서 굉장히 엄하게 대했기 때문에 감히 자초지종이며 따지는 방법을 몰랐습니다.그리고 그 이후로는 아버지께는 존경의 마음을 가져본적이 없는것 같습니다. 대학졸업후 병역특례업체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며 독립할 기회가 있었으나, 아무리 잘라도 못나도 내 아버지라는 생각에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였습니다.

나름대로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사막에 떨어뜨려도 살아남는다는 말을 들을정도로 악착같이 살아오게 된 계기가 된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최근까지도 제게 항상 말합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서 뭐에 쓸려고 그러냐고...그렇지만 저는 속으로 말합니다. 이게 다 아버지 덕인걸요...라고

과부녀와의 사이도 10년이 지나다 보니 이젠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왕래도 집안에 머무르는 것도 예전같지 않다는걸 느껐습니다.

최근에는 아버지의 나이도 나이인지라 이래저래 잔병으로 아픈곳이 생기다 보니 노파심에 저와 작은 부분으로 사소하게 싸우게 되고 가정사의 과거일들을
일일이 들추다 보면 언성을 높이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서로 따로사는게 좋겠다는등의 얘기들의 언성이 오고가는 일들이 잦았습니다.

정말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우유배달에 회사일의 스트레스에 저녁학원같다와서 집안에서는 아버지와의 잦은 언성....

어버지의 나가살라는 말이 진심이였는지 울화통이였는지 어느순간 진심으로 다가왔습니다. 나의존재를 내내 불편해 하던 과부녀와의 관계도 내가 분가하면 편안하게 진전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나이도 나이인지라 좋은여자를 만나서 독립을 하게되는 것이 조금빨라졌을분이라고 위로하며, 아버지의 울화섞인 나가라는 잦은소리에 분가할것을 결심하고 올해 2월에 분가하였습니다.

물론 그동안 악착같이 생활하며 모아온 자금중 일부를 아버님께 도움이라도 되시라고 드리고 나왔습니다.

아버지께 드는 섭섭한점 또 한가지는 여동생에 대한 부분입니다.
여동생은 부모님의 분가당시 중학생이였고 10대 사춘기의 시기에서 정신적인 충격이 컸던것 같습니다.
현재, 20대 중반의 나이 입니다만 고교졸업후 직장을 가지지 못한채 집안에서만 칩거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하는 니트족이 꼭 동생을 지칭하고 있는 것만 같아 내내 마음이 불편하게 합니다. 아버지도 여동생도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는 모두 손서래를 칠 정도입니다. 어릴적 아버지가 여동생에게 또는그 반대로든
준 정신적인 충격들이 상당했던것 같습니다.
특히 여동생의 경우는 아버지의 얘기도 꺼내지 못하게 할 정도입니다.
상대적으로 어머니는 다 큰 딸을 부양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현재도 힘든 막노동일을 나가십니다. 그래도 생활력은 강인하신지라 옷가지만 가지고 나가서 10년이 지난 지금 제가 들어도 놀랄정도의 경제적 자립을 이루셨습니다. 여동생은 스스로와 주위를 자학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내가 이 집안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지금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탄식하며 집안에서만 지낸지 5년이 넘어가고 있내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아버님과 분가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편하지 못한 구석도 있었느나 또 한편으로는 정말 풀리지 않았던 부분이 풀린듯한 느낌이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는게 나쁜지 모르겠으나, 가끔씩 찿아뵙겠노라고 했고 매일저녁 기진맥진하여 집에와서는 시시콜콜한 문제로 언성을 높이지 않을수 있는것도 좋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나의 안식처였어야 했으나 전에는 오히려 들어가기 어려운 무거운 발걸음이였으면 지금은 혼자 였으나 정말 안식처
같았습니다.

이사하였어도 여전히 우유배달을 하고 있고 직장생활을 하며 어학공부를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생각을 가지는게 나쁘지만 안식처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께는 제가 드린 자금도 상당하였고 가지고 있는 인천의 빌라도 있는터라처분한다면 혼자사시기에도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올해6월에 만료되는 전세집에서 저와 다시 합쳐서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과부녀와 같이 사기기를 원했으나 시간은 좋았던 사이도 소원하게 만드는 것인지 왠지 서로 만나는 시간도 뜸해진것 같습니다.

정말 모든것이 풀리지 않는 실타래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선택의 방법이 현명한 처사인지 어렵습니다.

두서없이 집안서정을 읊은것 같습니다. 여러가지로 말주변이 없는지라 십분 가만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인천에서 30살 청년드림.





IP *.43.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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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3.11 07:33:15 *.166.16.58
현재 당신이 가져야 할 것은 강렬한 자기 중심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잘못하는데도 나의 아버지 이니까. 어머니이기 때문에 하는 주종적인 관념은 버려야 합니다. 나의 길을 간다. 아버지의 잘못된 인생은 절대로 답습하지 않을 것이다. 하는 냉정함을 가지세요. 아버지가 살아온 삶중에 여자관계는 그의 인생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아야 이해하겠지만 아버지가 자식앞에 보이는 부적절한 여자관계는 참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또 무서운 사람은 자녀들 입니다. 모든이는 자식앞에서 참되고 진실된 자기를 보이려고 하는 것이 부모의 맘입니다.

지금부터 아래의 따라 실천해보세요.
1. 아버지의 영상을 잊어 버린다. 아버지의 과거 행적, 성품, 음성까지 지워 버립니다.
2. 경제적인 분리를 합니다. 절대로 돈을 아버지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와 주지도 아니합니다.
3. 아버지와 합쳐 살지 아니합니다. 그건 장차 큰 짐이 될 것입니다.
원래 자식과 부모는 내리 사랑이라고 하여 부모는 자녀를 낳아도 자식이 부모를 생(生)할수는 없는 법입니다. 다들 자식자랑 일색이지만 깊이보면 효자효녀는 없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기에 부모가 스스로 미화 할 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인생에 관여하지 마세요. 그가 스스로 살아 갈수 있도록 냉정함이 남은 여생에서 자립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자립이란 꼭 경제적인 부분만은 아닙니다.

* 아버지와 적절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나의 사랑, 나의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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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tour
2007.03.11 13:36:07 *.55.214.10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에 심한 고생을 하셨군요.
저도 아버지로 인하여 가정과 제 자신에 많은 고민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님의 글을 보면서 많은 감정적 공감을 하게 되네요.
그러나 당신께서 걸어온 삶에 대해서는 당신만의 책임을 지셔야할지 모르겠네요.
자식으로서 고뇌를 겪고있는 님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님만의 인생을 살도록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것이 결코 쉬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님의 전체 일생을 생각하셔서 반드시 결정을 하셔야만 할 것입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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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3.14 04:28:29 *.70.72.121
당신은 누구로 인해서 이 땅에 왔습니까? 왜? 무엇 때문에 우유배달을 한다는 것입니까? 당신이 배우는 어학은 무엇을 위해서 입니까? 무엇을 어떻게 왜 살고 싶은 것입니까? 당신은 세상에 오직 하나 당신 입니다. 당신은 효자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까? 아버지가 계시지 않기를 원합니까?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분의 아들이고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당신일 뿐입니다. 어떻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까? 다 부정하건 다 인정 하건 당신 뜻대로 일 뿐입니다. 왜냐고요? 당신이 내가 될 수 있습니까? 저에게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나도 한때는 신데렐라 이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도 떳떳하게 살고 싶습니다. 당신이 왜 여기에 묻는 것입니까? 세상 누가 당신의 삶을 당신의 운명을 대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뜻 가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사시라고요. 당신은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다만 당신을 살 뿐 입니다. 우유배달 하기 싫으면 하지 마십시오. 어학 하기 싫으면 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당신 스스로의 인생은 책임지시길 바랍니다. 왜냐고요? 그게 당신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꿈이 있다면 그걸 이야기 해 보자고요. 당신 바람이 무엇입니까? 아버지는 아버지 어머니는 어머니 당신은 당신인 것을 어쩌란 말입니까? 고맙습니다 당신을 털어놔줘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래서 친구가 되었는 걸요. 안녕?꿈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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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2007.03.14 20:13:29 *.122.106.126
가만히 저의 아버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할머니 나이 40에 본 늦둥이라 어려서부터 병치레도 많았고..
어쩌다 학교 땡땡이 치다 큰아버지한테 들켜
그길로 학교를 못다니게 되셨던 아버지
그것 때문에 하고 싶던 일도 못하고...
시골로 낙향할 수 밖에 없었다지요...
그리고 도박에 빠지셨고...그것으로 인한
정신적인 피폐는 어머나와 저희들에 대한
매질이었습니다... 어릴적 아버지는 참으로
미웠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듯 철이 들고 저도 부모되었을 때...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본심이 아니었음을..
때로... 몰라서 못하고.... 안되서 못하는..
아버지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이었음을....
그리고 지금은 이세상에 계시지 않은 그분이
그립습니다...

마이웨이님의 아버님 나름의 이유가 있을 줄 압니다.
아버님 안에 치유되지 않고 남아 있는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상처가 마이웨이님나, 동생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깁니다..
아버지의 그 상처가 지금이라도 치유되길...
그리고, 동생과 마이웨이님도 그 상처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할 때인 것 같습니다...

" 하나님, 오늘 이곳에서 육신의 아버지로 인해 아파하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하나님의 위로가 누구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은 저희들을 다 계획과 목적을 두고 지어셨다 하셨습니다.. 저희 부모님들의 태중에서 조성되지 전에 이미 우리를 아시고 당신의 자녀로 지명하셨다 하셨습니다... 이 청년이 육신의 부모 너머 계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오늘 그와 함께 하여 주세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상황을 보지 말게 하시고,
희망을 바라보게 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마이웨이님, 용기 잃지 마시고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구본형선생님의 말처럼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달려가 보세요... 여건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극복할 수 있는 만큼의 고난을 주신다고
합니다... 지금 마이웨이님 앞에 고난이 있다면
그것 마이웨이님이 그것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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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2007.03.16 12:52:49 *.100.159.48
진심어린 많은 답변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사실 어느정도 판단의 결정은 이미 저의 마음속에 내리고 있었던 듯 합니다. 나의 꿈 나의 길에 촛점을 맞추고 미래를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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