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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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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5일 11시 03분 등록

비교적 운이 좋았나 봅니다. 첫사랑 아프게 보낸 이후 내 삶에 큰 이별 없었으니까요. 첫사랑과 이별하고 나는 콱 죽으려 했습니다. 너무 아파서... 그러다가 중년의 길목에서 또 사랑과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상실감을 주는 이별이 다시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스승을 떠나보내고 얼마 뒤 숲으로 찾아오신 스승님이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온전히 하루를 비우고 스승님과 낚시를 하고 싶었다. 스승님과 낚시를 하며 그 하루를 잘 놀아드리고 싶었다. 그 시간을 아직 갖지 못했는데 나는 나의 스승님을 보냈다.’ 여우숲 근처 달천 물줄기와 갈대숲을 가만히 응시하며 그렇게 말씀하시던 스승님의 애달픈 눈빛을 기억합니다.

 

내 삶의 가장 큰 스승이신 구본형 선생님이 당신의 스승님을 영영 만날 수 없게 된 이후 가졌던 그 깊은 상실감의 어느 날을 나는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나는 비슷한 슬픔에 갇혀 지냈습니다. 스승님 떠나시고 나는 한동안 숲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내 새로운 삶의 베이스 캠프인 오두막 구석구석에 녹아있는 스승님과의 기억을 담담히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운전을 하고 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눈물에 차를 세워야 한 적 여러 번 있었고, 겨우 돌아와 스승님이 산방 마당과 여우숲 언저리에 심어주신 나무 곁을 지나면서 또 먹먹해져 우두커니 서 있은 시간도 많았습니다. 위로를 건네는 많은 사람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답장 한 자 쓰지 못한 채 또 슬픔에 갇혔습니다. 당신 스승님과 온전히 함께 보내고 싶었던 강가에서의 하루를 함께 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내 스승님의 그 아쉬움이 내게도 똑같이 남았고, 그것이 사무치게 아쉽고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여우숲 왕벚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해 심은 나무에 피어난 꽃은 햇살을 받자 마치 낮을 밝히는 별처럼 빛났습니다. 중년에 큰 사랑을 잃은 내 어두운 마음에 별을 닮은 꽃들이 큰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자 어느새 땅 색은 짙어졌고 이내 그 빛나던 꽃송이들도 비에 젖어버렸습니다. 꽃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꽃잎으로 처마를 만들며 비를 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비가 그치자 꽃잎으로 만든 처마에 대롱대롱 빗방울이 맺혔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눈물 같기도 하고 보석 같기도 했습니다.

 

이제 삶의 스승을 더는 뵐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던 날, 꽃은 그렇게 모두 눈물을 머금고 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슬픔에서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나의 스승이 그러하셨듯, 저 왕벚나무 꽃들이 그러하듯, 눈물이 꽃으로 피어나게 하기로 했습니다. 애달픔과 그리움을 견딜 수 없는 날에는 눈물을 짓되 그 눈물에 갇히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왕벚나무에 꽃잎 흩날리자 이제 산벚나무에 꽃이 피고 있습니다. 그 꽃들 위로 다시 빗방울 떨어지고 있습니다. 빗방울에 젖지 않고 피어나는 꽃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듯, 눈물 머금고 네 삶도 일으켜 세우고 꽃으로 피어나라 일깨우고 있습니다. 여우숲에는 지금 지천사방이 꽃, 마치 스승님이 일깨우는 슬픔에 대한 가르침 같습니다. ‘눈물마저 삼키고 피는 향기로운 꽃 되라이르는 듯합니다. 이 풍경 보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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