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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님께서 2013512229분에 등록한 글에 댓글을 답니다.

예전의 글들을 찾아보니 시축제를 시작하면서 사부님이 올리고 사부님의 감상이 있군요. 사부님이 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날 같이 공유했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어, 말도
아니었고,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밥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두드렸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 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진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시 전문, 파블로 네루다,
정현종 번역, 시집 ‘이슬라 네그라 비망록’ (196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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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시를 만년필로 옮겨 적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 내가 소년이었던 그때로. 문명 이전으로, 알지 못하는 세계, 그러나 꿈으로 가득했던 내 인생의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되돌아갔다. 아무 것도 나를 막지 못했다. 그저 한 순간에 단 한걸음으로 그렇게 왔으니까.

시는 놀라운 기쁨으로 내 의식을 나르는 타임머신이다. 알지 못하는 모든 것으로 가득한 곳에, 마치 되 돌아오듯, 그때 그곳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휘휘 둘러 본 다음 다시 지구로 돌아오듯, 가기 전의 지구와 다시 돌아 왔을 때의 지구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땅 그 하늘이 전과 달랐다. 나는 이 봄 도화꽃잎 떠가는 강물이 되어 흐르는구나.


네루다는 나를 남미처럼 뜨겁게 달구어 줍니다. 가장 처음 만난 그의 시가 바로 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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