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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eiw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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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4일 11시 35분 등록

아들은 어릴 때부터 내가 갖지 못한 재주가 있었다. 보기에도 복잡한 조립 장난감을 손쉽게 맞추었다(또래의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수백 개 조각의 직소(Jigsaw) 퍼즐도 똘망똘망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맞추곤 했다. 내가 조립식 가구나 제품을 사와 설명서를 보고도 낑낑거리면 녀석이 어느 틈에 와서는 옆에서 일일이 훈수를 두었다. 나중에는 답답한지 나를 제치고 녀석이 다했다. 그 분주한 손놀림과 몸짓, 그리고 그것에 몰입하는 초롱초롱한 눈빛이 너무 보기 좋았다. 

 

그런 재주(?) 때문인지 아들은 고 3, 일찌감치 항공기나 대형선박을 조종하는 특성학과로 진로를 결정했다. 자신은 아빠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지시와 통제로 틀에 박힌 회사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며 자유롭게 전 세계를 돌아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첫해에 고배를 마셨다. 항공 운항과 1차 합격의 기쁨도 잠시, 시력이 나빠 떨어졌고 항해학과에는 점수가 미치지 못해 낙방했다. 한 해를 재수하여 올해는 마침내 아들이 원하는 학교의 항해학과에 들어갔다. 그런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자신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일을 일찍이 찾아 주저 없이 나아가는 아들의 자신에 찬 모습이 기특했고, 반면에 특별한 기술 없이 40대 후반에 회사에서 퇴출된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전공이나 미래의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대학에 들어갔고 때가 되어 취직해 20년 넘게 매일 비슷한 일을 반복한 대가라고 생각하니 구차하게 변명하고 싶지 않다.  

 

이 땅의 40대 후반/50대 중년의 남성들은 성실과 근면을 미덕으로 쉼 없이 달려왔다. 회사에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의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그것이 회사에 대한 충성이든 상사 눈치를 보든 어쨌든 조직 생리상 정시에 퇴근할 간 큰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생업으로 한다는 것은 생계를 책임진 가장에게는 사치스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동시에 남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전문성을 갖춘 일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몸과 시간을 회사를 위해 희생했건만 어느새 피할 수 없는 퇴직 또는 퇴출의 칼날이 자기를 겨누고 있음에 씁쓸해 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생리상, 비용 대비,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일정한 유예기간을 거쳐 폐기처분되는 것이 직장인의 비애지만 말이다. 사용자와 근로자간 쌍방 노동계약 하에 근로자는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어느 한쪽이 계약을 종료시킬 수 있다(물론 공정한 계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자신이 맞지 않으면 그만두면 되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퇴사 또는 퇴출을 당했건 마냥 신세 한탄하고 회사를 원망하며 무기력하게 남은 인생을 살아 갈 수 없는 일이다. 자신도 회사에서 매월 임금을 받았고 일정 부분 회사로부터 혜택을 받았음을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조기 퇴직이 과거, 현재, 미래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 없이 성실과 근면으로 우직하게 달려왔던 자신의 미련함과 안일함에 대한 대가라고 하면 너무 심한 자기비하일까?  성실과 근면의 자세로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성실과 근면이라는 이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단어는 왠지 융통성 없고 무능한 사람이 복종과 자기 색깔 없이 그저 무리를 따라가기만 하는 노예적인 근성이 느껴져 더 이상 사용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나도 일정 부분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중의 하나다.

 

퇴직에 따른 자기비하, 무기력, 분노,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해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자기 파괴적인 감정에 굴복해 남은 삶을 낭비할 순 없다. 지난 세월, 회사와 함께한 기간 동안 수고한 자신을 위로해주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것에도 자기한테 힘껏 박수를 보내자. 그리고 늦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보자. 나 또한 그 길을 갈 것이다. 그 길은 험하고 고통이 따를 것임을 안다. 삶의 냉혹한 현실에도 맞닥뜨리게도 될 것이다. 언제 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규칙적인 수입은 없고 지출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 비용이 자신을 압박하고 심리적으로 위축될 때도 있을 것이다. 넘어서야 한다. 이것은 모험이다. 그 모험에서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다. 도중에 그 모험을 감당할 수 없어 주저앉을 수도 있다. 승리한다고 해도 전리품이 남은 인생의 화수분이 될 가능성도 많지 않다. 그러나 한번 그 끝을 보고 싶다. ‘를 넘어서기 위해. 절실함과 용기로 그 모험을 뚫고 나가련다. 그 모험의 여정에 누군가는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간절히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을 매몰차게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만물이 내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용기와 그리고 희망을 줄 것이다. 끝으로 나를 먼저 사랑해야겠다.

 

IP *.18.25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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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12:32:14 *.6.134.119

^^ 첫번째 칼럼을 우리 웨버님이 장식해주시는 군요. 

앞으로 있을, 결코 쉽지 않은 100주간의 여정에 대한 비장함이 뭍어납니다. 

알게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웨버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리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리 일곱빛깔 구스피릿의 시작이 험난했던만큼, 그 여정과 마지막은 아마도 

즐거움으로 가득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이 있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어차피 변화에 대한 열망과 '나'를 찾는 여행은 

2년이란 짧은 시간으로 끝나지는 않을꺼니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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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15:16:35 *.18.255.253

고맙습니다. 많이 도와 주십시요.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외부에 내부에 '적'들이 가득하네요, 물론 아군도 많이 보입니다. 하나씩 까부시고 나아가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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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12:43:55 *.94.41.89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만물이 내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용기와 그리고 희망을 줄 것이다.

이 표현 참 좋은 것 같어요. 온 우주만물이 자신을 도와주는 기이한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사방이 적이라서 -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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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15:29:38 *.18.255.253

감사합니다. 항상 어디선가에서 어떤 형태로든 변신을 해서 도와 줄 거라고 믿어요. 물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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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13:51:41 *.185.21.47

웨버님이 독수리 타법으로 일빠로 장식해주셨네요.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스승이 되어주는 사우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변화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진 불행한 자들, 또는 불행을 인식하는 자들의 과제였다.

'결핍이 꽃을 아름다운 꿈 안으로 몰아넣어 준 것>'이다. 라는 사부님의 말씀을 적어봅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에 우리 모두 이곳에 모이지 않았을까요?

삶의 적극적인 해석을 하기 위해서요. 

 노랑의 희망을 품고 빨강의 열정으로 나아가시길.... 웨버님을 힘껏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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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4 15:21:04 *.18.255.253

그러고 보니,내가 많이 결핍한 것 맞아요 ㅎㅎ. 삶의 여정을 끝날때가지 결핍상태가 지속될 것 같아요. 그래야 계속 변화하고 진화할 수 있을 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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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5 07:35:44 *.229.239.39

진솔하기 까지는 적지 않은 번민이 그림자 처럼 따라 다니지요.

마침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용기'인 것 같네요.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용기 있는 결단이 이미 반은 성취 된 겁니다.

물론 나머지 반이 생을 바꿔 주는 결정적인 부분인 것도 알고 있지요.

함게 가면 멀리 갈수 있다고 합니다. 이 곳이 멀리 가는 지름길 임을 소망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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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6 20:55:12 *.50.96.158

따뜻한 말씀 고맙습니다.  " 많이 읽고 ,많이 쓰고, 그리고 많이 생각하는 기본을 지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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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6 12:58:46 *.182.82.40

ㅋㅋ  웨버  독수리 타법이랍니까?^^

지옥의 레이스를 거치며 거의 신공을 발휘했겠네요.


선생님께서도 늘, 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살 수 없는지, 조직

에 매여 낙타처럼 고달픈 직장인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대안을 


마련하고 싶어 하셨지요.  조기 퇴직의 시대,우선 나 자신을 구원하는 경로를 개발할수있다면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열리리라 믿어요.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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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6 20:51:01 *.50.96.158

ㅎㅎ 선생님 , 이제는 조금 속도가 빨라 졌지만.  그래도 손놀림이 아직 서툴러요.

열심히 정진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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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09:06:55 *.30.254.29

웨버님..반갑습니다.

나중에 술한잔 할 기회가 있겠지요.

 

끝으로 나를 먼저 사랑해야겠다..

그렇지요...

그렇구 말구요... 

 

첫 컬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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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23:43:28 *.50.96.158

감사합니다, 선배님. 오늘은 좀 더웠습니다. 시원한 막걸리에 파전이 생각나더군요.  막걸리 한잔에  사랑을 가득담아 올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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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18:35:53 *.1.160.49

그러나 한번 그 끝을 보고 싶다.

 

힘껏 응원합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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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22:28:09 *.58.97.136

웨버님..

오늘은 빨강색, 내일은 노랑색.......  일.곱.빛.깔. 구.스.피.릿~! 

매일매일 기분따라 입맛따라  색 하나씩 뽑아 쓰시길^^

 

                           --서로의 글에, 삶에 영감을 주는 일곱빛깔  옥남매, 동상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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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7 23:35:39 *.50.96.158

매일 일곱 빛깔을 다 사용해야 할 것 같아.  저마다  선명한 색깔이 마음에 들어 .

매순간 정열적이고, 맑고, 밝게, 따뜻하게, 상큼하게, 그리고 진중하게 살고 싶어.  동상도 그렇게 살자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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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8 08:38:32 *.216.38.13

첫번째 칼럼을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분신과도 같은 아드님을 통해 자신의 삶을 유추해보는 것...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구 선생님께서도 늘 말씀하셨지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첫번째 칼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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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8 15:10:38 *.18.255.253

선배님,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어느 조간 신문에 죽으면 모든 기회가 사라진다고 하는 군요.

살아 있을때 그동안 가져보지 못한 기회를 많이 가져보고 ,하고 싶은 것 마음 껏 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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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0 21:28:28 *.65.153.171
이번주 계속 야근이었습니다. 금요일 저녁 드디어 마음 편히 집에 와서 웨버형님 칼럼 읽었습니다.
형님하고 낮술 한번 마시고 싶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말입니다. ^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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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0 22:55:25 *.18.255.253

형선, 좋지, 그런데 한참 무르익을 즈음에 바로 '팍'  쓰러져 자면 어떡하지? 지난번 MT때 그랬던 것 처럼.. ㅎㅎ.

그나저나 고생이 많네. 일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많아 일에 치이면 곤란한데 ..., 일에 끌려다니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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