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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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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7일 07시 32분 등록

내 서재의 책장에는 인물의 이름이 붙은 칸들이 있습니다. 가령 ‘이윤기’ 칸은 그가 쓴 책과 그에 관한 책만 꽂혀 있습니다. 도서의 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시작으로 산문집과 소설, 추모집까지 스무 권에 이릅니다. 이윤기 선생의 모든 책을 구비하지는 못했지만 절판된 책도 헌책방에서 여러 권 구해 두었습니다. 그가 그리울 때마다 한 권씩 꺼내 읽을 생각입니다. 이 정도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임에도 인연(因緣)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칸을 보며 “작가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 10년 뒤에 온다”는 프랑스 속담을 실감합니다. 작가의 육신이 죽어도 그가 쓴 책은 남습니다. 그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을 때가 작가의 죽음이라고 이 속담은 말합니다. 글에는 글쓴이의 마음결이 각인되고 삶의 무늬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작가의 육신이 떠나도 책이 남아 있으면 그의 정신과 삶도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의 책이 오래오래 남아 읽힌다면 그의 마음과 삶도 살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프랑스 속담은 옳습니다.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 나는 이윤기 선생의 책을 읽을 것이고 내 기억에서 그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을테니까요. 이윤기 선생은 유고 산문집 <위대한 침묵>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작가나 시인의 생물학적 죽음과 함께 그들에 대한 기억까지 깡그리 사라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지만, 10년 뒤에도 책이 살아남아 있다면 그것도 근사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생물학적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 사람은 작가나 예술가뿐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가족, 존경하는 스승, 사랑하는 연인처럼 깊은 정을 나눈 사람들은 주검과 함께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과의 인연은 기억으로, 함께한 시간은 이야기로 남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 10년 뒤가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의 끝, 그에 관한 이야기의 종말 뒤에 옵니다. 기억이 지속되는 한 인연은 끊긴 것이 아니며, 기억이 사라지지 않으면 기억 속 그 사람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누군가 떠올리고 되새기는 한, 그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계속 전해지면 그 이야기는 죽지 않습니다. 이것이 모든 불멸하는 이야기가 살아 온 방식입니다.

 

잊히는 게 좋은 책이 있고 사람과의 인연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망각의 강으로 흘러야 마땅한 기억도 있습니다. 반대로 평생 잊지 않아야 할, 아니 잊을 수 없는 인연과 기억도 있습니다. 얼마 전 타계한 나의 스승을 생각합니다. 스승과의 첫 만남을 떠올려 봅니다. 스승의 책이 남아 있고, 함께한 기억이 남아 있으며, 가르침도 살아 있습니다. 이윤기 선생은 힘든 시절을 함께 하며 도움을 받았던 지인의 떠남을 기리며 “죽음은 죽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렇듯 잊히지 않고 있으니, 그 떠난 자리가 참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스승 떠나고 이 말이 진실임을 알았습니다. 부재로 인해 더 커지는 존재감이 있습니다. 그 떠난 자리에서 더 생생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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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저, 위대한 침묵, 민음사,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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