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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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의 손이 마이더스의 손이 된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매매를 위하여 통화를 하던 고객의 말이다. 이 말을 칭찬으로 들어야 하나, 조롱으로 받아야 하나, 농담으로 알아야 하나 아마 세가지 모두 일 게다. "이럴 때도 있어야지요" 라고 답한다. 나쁘지 않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이 유독 이 남자에게 잘 맞고 있다는 말이다. 가끔 “귀신도 모른다”는 그 신통력이 발휘되는 순간이 있다. 당일 매수한 종목이 상한가(당일 상승할 수 있는 최대폭)를 가는 경우이다. 이럴 때는 미련 없이 매도한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기”란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이렇게 찾아온 행운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식매매를 업으로 하다 보면 가끔 느낌이 잘 맞을 때가 있다. 가끔은 잘 맞고 대부분은 나의 선택에 아쉬움을 남기게 된다. '조금 늦게 살 껄...좀 빨리 움직였어야 하는데...좀더 많이 살 껄....' 껄껄껄의 연속이다.
내가 사면 빠지고 팔면 오르는 머피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터에서 흔히 듣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내가 손절(손해보고 파는 것)했으니 이제 오를 거야." 이런 경우 거짓말같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 "내가 파는 걸 누가 옆에서 보고 있는 느낌이야. 어쩌면 팔자마자 그때부터 오르는지 몰라" 이런 일들이 왜 발생하는지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기다리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도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기 쉽지 않다.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에 동조하여 따라 하는 편이 안정감을 준다. 기다림에 지쳐서 내가 파는 그 순간이 이제 막 오르기 직전일 확률이 높다는 말이기도 하다.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순간이다. 수많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 주식을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는 귀신이 존재한다. 누군가 실망하여 팔기 시작하는 낌새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는 귀신 말이다. 주식을 살 때는 나름 이유가 있어서 산다. 자신이 사는 순간부터 올라가기를 바란다.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 동안 그 이유에 대한 확신이 서서히 사라진다. 내가 잘 못 생각한 걸까? 그 정보가 언제 시세에 반영될지도 모르는데 마냥 기다리는 것이 잘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살 때의 이유와 다른 이유로 팔게 된다.
내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는 소의 행운을 누리는 날, 누군가는 소 뒷걸음에 죽은 쥐가 되는 날이다. 한번의 Enter키에 작게는 몇 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이 공중 분해되는 상황을 우리는 경험한다. 반복되는 수익과 손실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일의 내공이 쌓여간다.
투자자들은 말한다. "실적이 좋다면서 주가는 왜 빠지나요?" "그 회사에 좋은 정보가 있는데 사는 건 어떤가요?" 사상최고의 실적을 발표하는 날 하락하는 주가. 애널리스트 리포트에 매도사인이 나오는 날 바닥을 치고 오르는 주가. 일반적인 경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전 후 사정을 끼워 맞춰서 억지로 이해를 한다. 주식투자에 관한 방법론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것도 정해진 공식이 없는 수수께끼 같은 시장. 오죽하면 개구리 뛰는 방향은 알아도 주식시장의 방향은 모른다는 말이 있을까? 반면 실적이 실적이 좋지 않게 발표되어도 더 이상 나빠질 확률이 없다는 공감대만 형성되면 주가는 오른다. 세상에 발표되는 다양한 정보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늘 같지 않다. 시차도 발생하고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고 수급(매도 매수 규모나 주체)에 따라서도 다르다. 한마디로 어떤 공식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일한 정보가 동일한 결과를 나타내지 않는 주식시장은 시장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녹아있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큰손(외국인, 기관, 연,기금 등)들이 시장을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같은 정보가 시장에 흘러 들어도 반응하는 시세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내 생각과 시장의 반응이 같지 않다는 것은 주식시장의 룰을 자신이 잘 모르고 있다는 말과도 통한다.
몇 년 전 감정평가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외근 중이었고 시간은
투자자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수량만큼 사준다. 투자하고자 하는 금액이 무모하다 싶을 때는 상황설명을 하고 분할투자를 권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고객의 마음이 동하는 대로 하라고 권하는 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은 스스로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늘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해석하지도 않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시세가 흐를 수도 있다. 흐름의 강도가 얼마나 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해라" "하지 마라"를 말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다행히 고객이 물어오면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두말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행해주는 것이 내 경험상 현명한 판단이었다. 고객이 원하는 주식을 샀다. 다음날 우리가 매수한 주식의 공시가 하나 올라온다. 주식은 공시가 올라오자 마자 하한가로 꽂혔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가격. 어제의 종가(마지막 가격)에서 -15%가 되었다는 말이다. 천 만원을 투자했다면 팔백오십만 원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정보를 어떻게 들었길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참...참...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진작 말을 했으면 주식을 사주지 않았을 텐데 무슨 대단한 정보라도 된다고 말을 하지 않아서 이런 사태를 만드나 싶었다. 정보해석능력의 부재. 그가 들었다는 정보라는 것이 주식을 사면 실패할 확률이 90%정도 되는 것이었는데…아쉽다. 시장의 메커니즘을 모르는 그에게 더 이상 말해 뭣하겠는가. 그 회사 사장이 말했다는 정보는 바로 주식을 사면 안 되는 정보였다. 정보를 제공한 사장도 주식시장의 메커니즘을 잘 모르고 한 말일 수 있다. 이런 정보는 제공하면 안 되는 것이다. 불법이란 말이다. 공시하기 전에 지인에게 알리는 행위는 엄연한 불법이다.제대로 된 정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다시 정리해보자. 나의 지인은 리츠펀드 하나를 소개받았고 그 펀드에 깊숙이 관계되는 사람으로부터 향후 운용계획의 청사진을 들었다. 지인도 감정평가를 하는 사람이라 펀드를 소개하는 사람의 말은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이고 또 그의 말대로 투자가 이루어지면 수익구조가 괜챦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다만 중간과정에 자금조달계획이 있었고 그 후에 회사는 탄탄대로를 갈수 있다는 계획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긴 그림을 그리고 큰 그림을 그린다. 같은 그림 안에서도 우리가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 회사의 CEO를 할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투자를 하여 수익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그 회사 주식을 언제 매수하여 언제 매도할 것인지가 우리의 관심사다. 매매타이밍만이 관심사이다. 자신이 들었다는 전체 스토리도 당연 중요하다. 전체 그림이 좋다고 하면 이제는 세부그림을 잘 보는 것이 중요해진다.
구체적인 정보는 이렇다. 리츠펀드는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서 부동산에 투자를 하고 그 원리금을 투자자에게 분배하는 구조이다. 운용에 필요한 자금을 모집해야 하는데 모집이 잘 이루어지면 계획대로 투자를 할 수 있다. 투자수익이 발생하기 위하여 당연히 거쳐야 하는 수순이다. 그 자금 모집을 위한 내용이 며칠 내로 공시될 거다. 그러니 주식을 사라.
"진작 말씀을 하시지...무슨 대단한 뉴스라고 말을 하지 않고..." 지나간 일이라 뭐라 더 할 수는 없었다. 해법이 없는 사안을 가지고 고객에게 핀잔을 줘 봤자 기분만 상한다.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선(先)은 이렇구요, 후(後)는 이렇습니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는 이럴 확률이 더 많구요. 이렇지 않을 확률을 얼마나 됩니다. 향후에는 자신이 들은 정보를 적어도 저희 같은 사람에게는 말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경우에는 공시 전에 주식을 살지 공시 후에 살지 살펴봐야 한다. 공시 내용에 따라 확률이 달라진다.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정보를 해석하는 코드를 숙지하고 있어야 높은 확률에 배팅할 수 있게
된다.
주식과 관련한 정보를 알게 된 후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여러 부류이다. 주식투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어떤 정보를 접해도 그냥 흘려 보낸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보이니 당연하다. 이런 사람은 괜챦다. 손해도 이익도 없을 테고 또 그 정보가 주식투자로 돈을 벌 수 있었던 정보인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자신과는 무관한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나쁘지 않다.
주식투자에 경험이 있어 정보해석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투자와 연결하는 습성이 있다. 스스로 판단이 가능하면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해당주식을 산다. 그리고 그 정보를 준 사람에게 묻게 된다. 어느 정도의 시세에 팔면 좋은지를...
스스로 자신의 판단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나 같은 사람에게 전화를 하여 묻는다. 이런 정보를 알았는데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을 의뢰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자세히 말을 하는 편이다. 누구한테 들었고 내용은 어떤 것인데 이것이 정보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고객이 들은 정보가 이미 시장에 널리 퍼져 있는 정보일수도 있고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정보일수도 있으니까. 또한 유심히 관찰하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은 정보를 파악하기가 쉽다.
리츠펀드를 매수한 고객은 사자마자 두 번의 하한가를 맞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주가는 회복하였다. 한참을 기다리는 수고를 했지만 결과는 나쁘지는 않았다. 정기예금 금리보다는 좋은 수익을 거두었다. 나름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라고 하는 고객은 기세 좋게 시작한 주식투자에서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마이더스의 손을 말하는 이 고객.
우리의 인연은 십 년 정도 되었다. 자기계발시장이 꽃을 피우던 시기이다. 나는 당시 유행하던 플래너를 한 권 구입했는데 플래너라고 하기에는 구성품목이 다양했다. 월 단위로 속지를 갈아 끼워야 하고 매일매일 그날 할 일 중에 우선순위를 정하여 체크를 하며 하루 일과를 보내는 방식의 플래너였다. 복잡한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친절하게도 플래너를 수입판매 한 회사는 사용법을 교육했다. 처음이었다. 다이어리는 사서 쓰면 되는 것이었던 시기에 사용법을 강의를 한다?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를 알려준다고 하니 수강신청을 하고 해당일에 참석을 했다. 한 테이블에 7-8명의 사람이 앉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인연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교육을 들었다. 한창 영업에 물이 올라있던 시절이라 그날 함께한 테이블에서 받아 온 명함을 나의 이메일 발송대상자 명단에 올렸다.
일년쯤이 흐른 후에 전화한 통을 받게 되었다. 전화기 건너편의 사람은 자신을 소개한다. 언제 어디서 만났던 사람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플래너 교육을 함께 받았던 사람이다. 그 동안 이메일 잘 받아보았다. 자신이 투자를 조금 하고 싶은데 상담을 하러 와도 괜챦은 지를 묻는 전화였다. 금액은 크지 않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투자금액을 가려가며 상담을 하지 않는 내게 고객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내 메일을 꾸준히 받아보고 전화를 준 건이니 반가웠다. 나의 사무실로 고객이 찾아왔다. 간단한 인사와 상담. 그리고 그 고객은 계좌를 하나 만들고 갔다. 다음날 계좌에는 천 만원이 입금되었다. 그로부터 십 여 년이 되어간다. 몇 시간의 교육을 함께한 인연으로 나의 고객이 된 사람이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 연배이고 대한민국의 잘 나가는 대기업에 종사하는 부장급이다.
우리의 투자이야기는 상처로 얼룩지어있다. 성공한 투자도 있었고 실패한 투자도 있었다. 지금까지의 결과로 보면 실패한 투자이다. 작은 성공으로 시작하여 여러 번의 성공이 있었지만 커다란 실패로 결과는 실패작이다. 물론 아직 진행형이니 나중에는 어떻지 모르겠다. 천 만원으로 시작한 투자는 서서히 그 투자금액이 늘어났다. 과정이 나쁘지 않았던 탓에 그가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금융자산이 나에게로 왔다. 무엇보다 이 고객은 자신의 인생을 계획적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상담을 하고 투자상품을 선택하고 그리고 실행을 하는 고객이다. 투자상품의 결과는 예상과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무난한 투자성과를 보였다. 몇 년이 흐르는 사이 고객과 나의 신뢰도 쌓여갔다. 고객의 인생관도 알게 되고 투자스타일도 알게 되었다. 고객마다 자신에게 맞는 투자상품이 있고 투자 타이밍도 있다. 그것을 알아내고 알아낸 정보에 최대한 적합한 상품을 골라서 제안하는 일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제안까지가 나의 몫이고 선택은 고객은 몫이다.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의 몫이라고 금융기관은 누누히 강조하지만 실은 제안하기 전에 고객을 잘 알게 되면 선택이 무난할 만한 상품을 제안하게 된다. 고객의 삶과 철학을 잘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하루가 쌓여 일년이 되고 십 년이 된다. 고객의 하루 하루를 알게 되면 그가 가지는 기질도 알게 되고 그가 벌어들일 가능성이 있는 돈의 양도 알게 된다. 고객의 기질을 파악하고 그가 벌어들일 돈의 양을 가늠해 보는 일은 의외로 쉽다.
고객도 마찬가지일 게다. 여러 금융기관을 거래하다 보면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 지를 알게 되면 자신의 자산을 믿고 맏겨도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게 된다. 무형의 상품을 파는 곳이니 금융기관은 신용이 최우선이다. 다음은 내가 구매하는 금융상품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는 금융상품을 고객들이 일일이 다 알기는 어렵다. 복잡한 구조 안에 도사리고 있는 리스크를 감지하는 일. 스스로 하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자신의 본업을 하기에도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누군가 대신 해 주면 좋은 일이기도 하다. 나를 대신하여 꼼꼼히 점검하고 좋은 투자대안을 선택해주기를 투자자들은 바란다. 어떤 사람은 투자수익율이 좋으면 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투자수익과 함께 언제라도 상담이 가능하며 안정감을 주는 사람을 좋아하기도 한다. 철저하게 결과만을 보면서 거래 금융기관을 옮겨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한번 거래를 시작하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돈을 관리하는 일은 서로의 신뢰와 적절한 타이밍과 자신에게 맞는 투자방법을 찾아가는 일이다.
나의 표현을 빌자면 나에게 맞는 고객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고객이 있다. 잘 맞지 않는 고객에게 미련을 갖지 않는 것도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하다.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은 투자결정을 하는 과정도 쉽지 않고 그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궁극적으로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고 하지만 그 과정이 심플하지 않으면 서로가 에너지만 쓰고 좋지 않은 사이로 멀어 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사람을 고객으로 모시기를 즐겨 하지 않는다. 서로 하고픈 말을 다 하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돈이 개입되어서도 쿨한 사람이 좋은 사람의 판단기준이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이 많지는 않다.
나의 대형사고를 무던히 견뎌 내고 다시 투자를 시작한 고객을 생각하면 고마움이 앞선다. 이제는 고객이라기 보다는 친구에 가깝다. 이런 사이에서 투자결정은 더욱 신중해진다. 다행히 교육을 함께한 인연으로 만난 이 고객은 심플, 쿨하다. 그는 가끔 말한다. "나는 말 잘 듣는 고객이지요?" 그렇다. 그는 내 의견을 거의 존중한다. 물론 제안을 하기 전 나의 고민의 깊이도 얇지 않다. 다만 너무 잘 할려고 하는 마음은 버렸다. 잘 하고 싶은 만큼 결과가 만족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통찰이 있어서다. 부담을 많이 느끼는 고객이나 잘 하고 싶은 고객의 결과는 늘 만족하지 못한 수준으로 끝나버리곤 한다. 고려사항이 많아서 그런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행히 요즘 몇 달은 마이더스의 손이 된 느낌이다. 이 약발이 조만간 떨어질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다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의 무던함에는 다른 고객과 다르게 나를 보는 시선이 있을 것이다. 그가 사람을 보는 철학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형투자실패로 좋은 고객을 많이 떠나 보낸 나로서는 지금까지 인연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에게 무한책임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 묻는다. "당신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떤 의미입니까?"
나는 답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관뚜껑 닫는 그 순간까지 돈과 함께합니다. 지금은 자연에서 먹을 꺼리를 취하던 원시시대가 아니라 돈이 자연이 주던 먹을 꺼리를 대체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돈을 가리켜 "피 같은 내 돈"이란 표현을 하기도 하는 겁니다. 돈이 관련되면 인간이 보일 수 있는 희노애락, 오욕칠정이 다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고민꺼리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투자 판단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결과의 좋고 나쁨은 나중 문제이고, 일단은 상대를 믿지 못하면 하기 힘든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나에게 와서 한다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내가 일을 하는 보람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사람에게 애정을 갖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사람들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나에게 잘 맞는 일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나의 경험을 높이 산다는 것 또한 일을 하는 보람이기도 하지요. 믿음 속에서 관계를 지속하고 고객은 자신에게 맞는 투자스타일을 알아갑니다. 나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고 더불어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일은 욕심을 내지 않으면 경험이 쌓일수록 지혜로운 판단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투자에 임하는 나의 철학과 고객이 원하는 눈높이와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쉽지 않지만 말이다. 그 절묘함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불가에서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때가 되어 인연이 합한다는 의미이다. 투자에도 이 말은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투자는 우연의 산물이다. 그 우연은 때론 계획되어 오기도하고 우리가 모르는 어떤 순간에 다가오기도 한다.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인간인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작용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대목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알아가는 것. 나의 눈높이와 타인의 눈높이가 다름을 알고 괴리를 좁히는 일. 내 눈에는 예쁜데 타인도 예쁘다고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일. 그 모든 것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무엇인가와 특별한 마주침을 하게 된다. 때를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마주침이 일어나는 순간에 우리의 삶은 방향을 튼다. 그리고 다시 특별한 마주침을 하게 된다. 시절인연을 만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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