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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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양양한 한 생물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스승에게 사사 받고 삼십대 초반에 박사학위를 받아 한 국립대학 전임교수에 내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벽 두 시에 걸려온 스승의 전화가 그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잘 갖춰진 곳에서 학자의 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새로 설립되는 대학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것도 의미 있는 길일 테니 저 남쪽에 새로 생기는 대학의 생명과학부를 맡으라는 스승의 권유였습니다.
그는 스승의 권유를 따라 그곳으로 내려갔습니다. 신입생을 받아놓고 실험실 1,2,3의 방문을 차례로 열었을 때 그는 암담했습니다. 어떠한 실험기자재도 없는 텅 빈 실험실!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려고 기자재를 빌려다가 쓰면서 가르쳤습니다. 더 큰 문제는 생물학자로서 연구논문을 발표하기 위한 실험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연구논문을 발표하지 못하는 학자, 그것은 학자의 생명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창창한 꿈을 위해 인연을 버릴 만도 했을 텐데, 그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학생들을 버리고 떠난다면 다른 누가 저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는 스승을 찾아 뵀습니다. 원망을 토할 만도 할 텐데 그는 한 마디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자에 미쳐서 스승 내놓으신 길에 디딤돌 더 놓지 못하는 못난 제자 한 놈 있다고 여겨주십시오’ 말했습니다.
그 외로움과 허전함 얼마나 컸을까요? 절망이 못이 되어 그의 걸음을 꺾어오는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틈날 때마다 교정 뒷 숲을 거닐었습니다. 글쓰기와 함께 숲 산책은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그는 새로운 빛을 만났습니다. 아주 우연히 자유롭게 나는 새를 만난 것입니다. 그는 큰오색딱따구리의 사랑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시간을 지독한 자세로 관찰하고 촬영하고 기록했습니다. 그의 첫 책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는 감동 그 자체입니다. 나는 그 책을 통해 그를 먼저 만났는데 책을 덮으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첫 책에 한 꼭지 그의 연구 성과를 허락 없이 담은 바 있습니다. 이후 우리는 만나게 되었습니다. 같은 자리 다른 시간에 강의를 하는 경험이 생기고 점차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한 방을 쓰며 동침하고 밤을 새워 생명과 교육, 그리고 삶의 자세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새 전공자가 아니지만, 이제 우리나라 최고의 새 선생님으로 존경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학교는 설립자의 비리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이제 절망의 못에 찔려 주저앉을 만도 한데, 그는 이번에도 그 위기를 비켜 도망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외면하는 교수는 스승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는 정말 멋진 선생님입니다. 희망이 절망의 못이 되어 자신의 길을 꺾으려 들 때 그는 피를 뚝뚝 흘리며 그 절망의 못을 밟고 길을 걷고 있는 선생님!
절망, 못이 되어 걸음을 꺾을 듯 덤벼드는 경험과 마주하는 날 있거든 그 멋진 선생님, 김성호 교수를 모셔서 생명 강의도 듣고 소줏잔도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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